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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Oct 25. 2020

'드라이브 스루',
[음주단속방식] 으로 바꿔 부르면

이따위로 말하면 우리말 오백 년도 못 간다


지난 대선 때 어느 후보가 3D 프린터를 ('쓰리디'가 아니고) '삼디' 프린터라고 했다고 경쟁 후보들이 흉을 봤다. 대통령 선거판의 논쟁 거리 치고는 참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주몽이 고구려를 BC 써티 세븐 이어에 건국했다고 해야 하며 4H 클럽은 포 에이치 클럽이고 시속 60 kM는 식스티 킬로미터라고 읽어야 되나? '쓰리디' 나 '삼디' 나 어차피 적절한 어법은 아니다.






어려운 언어를 획득하여 두뇌를 훈련하고 인문학적인 교양을 함양하는 전통은 수천 년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 '언어'는 지배 계급의 배타적 전유물로서 신분 계급의 울타리 역할을 좋이 해왔다. 이제 한문은 그 자리를 요즘 좀 '있어 보이는' 영어에 넘겨주었다. 한문으로부터 자리를 이어받은 영어는 못지않은 왕성한 식욕으로 그나마 남은 우리말을 먹어치우며 동일한 문제를 확대해서 이어가고 있다. 정신 나간 언론이 거기 앞장을 서고 있다.



영어 같은 유럽 언어는 우리말과 문법이 서로 많이 달라서 배우기가 까다롭고 진도도 더디다. 투자 가치는 분명히 있으나 시간과 인내가 요구되며 종종 '원금'을 날리기도 한다. 이 까다로운 과목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들볶는다. 이르면 유아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해외 연수다 뭐다 해서 사후관리에 학부형의 등골을 마저 빼 먹는다. 졸업 후에도 고시, 취직, 진급 등 인생의 주요 갈림길에서 영어가 눈을 부라리고 지켜 서서 신호등을 조작한다. 이러다 보니 영어가 '인격'이 되고, (언제나 인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온 국민이 영어에 대한 열등감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길에서 외국인이 영어로 물어봤을 때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은 이런 집단 중독을 이해해야 설명이 가능하다. 낯선 사람이 나의 '인격'을 물어보는데 도가 통한 사람이 아닌 바에야 어떻게 흔들리지 않겠는가. 지나친 영어 섞어 쓰기의 근저엔 적인 문화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다.



'외래어'는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국의 사물이나 개념을 '불가피하게' 우리말에 편입시킨 말이다. 다음 백과에서는 '고유 한국어와 한자어 외 다른 언어로부터 빌려 쓰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커피나 컴퓨터가 그 예다. 그렇지만 '3D 프린터',' 테크노파크', '데이케어'는 어느 한 나라에 속한 사물이나 개념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하면서 필요해서 새로 만들어낸 말들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언어에도 없었던 어휘이므로 삼차원 인쇄기, 오세대 통신 처럼 각각의 언어로 조립해 쓰면 될 터인 데 분별없이 빌려 쓰고 있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 남에게 구걸하는 격이다. 외래어가 아니고 '외국어'다. 이러다가 ‘컴퓨터’처럼 외래어로 굳어지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말에 이런 예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5세대 통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한국에서 혀도 잘 안 돌아가는 '파이브지'(5G)를 민, 관, 언론이 합창하고 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파이브지 일 것 같다.




올 초 언론에서 코호트 ( 동일 집단격리 ) 라는 표현을 쓰더니 그다음에 '이른바' 코호트 --> 코호트 순서로 또 하나의 불필요한 외국어가 들어앉는 과정을 보았다. 그 뒤를 이어서 팬데믹, 백신, 포스트 코로나등 홍수처럼 코로나 외국어가 우리말까지 감염시키고 급기야는 국적도 없는 '언택트'까지 발명하고 말았다. 드라이브스루, 워크 스루는 우리 의료진이 창발적으로 고안해 낸 진단 절차인데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발음도 어려운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입에 올리고 있다( 재미있어 하면서). 그냥 통째 격리( 코호트 ) , 음주운전 단속식 ( 드라이브스루) 진단이라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저열해 보여서 그럴까? 국가 재난 상황에서 보편적인 언어에 의한 통신이 중요한데도 굳이 혀도 안 돌아가는 남의 나라말을 쓰느라고 애들 쓴다. 더 한심한 건 한 쪽 구석에서 '코로나 블루'를 코로나 우울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는 공적 기관이나 단체다. (외국어에 환장한) 언론에서 쓰기 전에 막든지 아니면 강제로 바꿔쓰게 하든지 해야 하는데, 둘 다 아니다.







우리말에 버젓이 있는 단어 ( 예, 닭- 치킨) 나 개념 ( 예, 지역식품-로컬푸드 )들 마저 영어 명칭에 밀리더니 급기야는 우리 고유 상표까지 영어에 겁탈 당하고 있다. 관공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 나는 'KT&G'가 담배인삼 공사인 것을 아는 데 한참 걸렸다.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멀쩡한 수자원공사를 'K WATER'라고 바꾸어 부르게 했는지 궁금하다. 농협이 생뚱맞게 'NH'를 앞에다 붙이니 수협이 이에 질세라 'SH'를 내건다. 우리말을 모르는 사람이 올 확률이 매우 낮은 동네 도서관의 안내판엔 ‘INFORMATION’이 붙어있다. 이런 행태에 있어 언론은 항상 앞서간다. 테레비 프로 이름은 모닝, 와이드, 투데이…등 영명이 일색이다. 그 프로그램들은 한국어를 아는 사람만 본다.







잘못된 외국어 사용도 문제다. 발표 presentation을 줄여 말하는 피티 pt를 영어 원어민은 체조 physical training의 약자로 받아들일 거다. 이렇게 잘못 사용하는 우스꽝스러운 영어는 이루 셀 수도 없이 널려있다. 원샷, 디시, 스킨십, 애프터서비스, SNS...



게다가 요즘은 써오던 말도 다르게 표기하는 걸 본다. 지G 선상의 아리아를 작곡한 Johann Sebastian Bach는 우리 어려서 '바하'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어떤 연유가 있겠지만 요즘은 '바흐' 다. 원어 발음에 근접하려고 외래어 표기법을 계속 뜯어고치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어차피 Bach의 'B'부터 무성음 'P'로 읽고 들어가는 우리 발음 체계로는 50보 100 보다. 바하도 바흐도 바크도 아니다. 애써 고치는 노력 대비 효과는 적다. 디지탈이든 디지틀이든 디지털이든 우리말화 한 말이다. 테레비나 텔레비전이나 원어 발음과의 비교하면 거기서 거기다. 우리끼리의 소통이 중요하다. 공연히 이랬다 저랬다 하며 헷갈리게 하는 한편 정작 바로잡아야 할 언어적 정체성은 후진하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이해하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영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외국 사람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우리말엔 짐이 된다. 우리 발음 '쓰리디 프린터' '물티슈'를 제대로 알아듣는 영어 원어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고와 이해는 모국어로 한다. 기존의 낱말 가운데서 그래도 가까운 말을 골라서 새로운 뜻을 추가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신조어를 사용해서라도 모국어를 키워가야지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영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다. 헷갈리게 하는 불규칙한 문법, 제멋대로의 발음도 극복의 대상일망정 불평은 없다. 결점까지도 끌어안는 숭고한 구도적 사랑의 실천인지 아니면 권위에 대한 자발적 복종인지? 이 현상은 이다. 병으로 인정해야지 치료할 수 있다. 역사적, 환경적 병인을 추적 발견하고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 식탁에서 치킨이 모든 닭을 몰아내기 전에.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병의 원인을 찾으면 치료 약을 처방하거나 수술을 고려한다. 특효약이 없는 만성 고질병의 치료는 더 이상의 진행을 막는 것이다. 현 상태에서는, 마구 밀고 들어오는 영어에 의한 우리말의 잠식을 멈추게 할 방어전략이 우선이다. '패션 뷰티업계 젠더리스 전성시대' 같은 쓰레기 (= 내다 버릴 물건 ) 말이 더 이상 퍼져 나가지 않게 잡아보자. 일단 둑을 막은 다음 '동주민센터'를 설득해서 '동사무소'로 돌려놓는 것도 해 볼 만하다. 쿨비즈같은 정신 나간 낱말을 더 이상 못 만들지도 쓰지도 못하게 하자.



효과는 느리지만 교육이 근본 대책이다.


우리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못 가질망정 열등감을 버려야 한다. 베트남어를 모른다고 창피하지 않듯이 영어가 서투른 것에 안달하지 말자. 언어적 자부심이 강하다고 하는 프랑스도 요즘 영어를 배운다고 난리지만 우리하고는 접근하는 태도가 다르다. 전에 나의 프랑스 동료들은 영어로 회의하다 막히면 자기네 말 프랑스어로 내뱉어 버리고 피식 웃었다. 몰라도 당당하다. 우리 아이들이 영어 등 서양 언어를 외국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중요한 교과목으로 익히되 영어로 교육수준을 가늠하지는 말자. 관성적인 문화 후진국 의식에서 벗어나서 세계의 문화를 주도하는 한민족의 긍지를 살리자.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 앞 도로에 '스쿨존'이라고 표시한 어른들을 꼰대스럽다고 여기는 순간 이 문제는 그대로 해결된다.



가장 빠른 길은 언론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그냥은 안 움직인다. 언론은 우리말을 사용해서 먹고산다, 그것도 공짜로. 그럴수록 우리말 사용의 모범을 보이고 국민의 언어생활을 계도해야 할 언론이 분별없이 외국어 오남용에 앞장서고 있다. 정부가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같은 걸 소개하지 못하게 견제 감시해야 할 기관이 한술 더 떠 '이른바'라는 부사 뒤에 숨어서 모빌리티 서비스, 정의당 데스 노트( = 이거 영어 아님) 운운하며 말을 오염시키고 있다. 외국 문화나 개념 하고 무관한 '먹방'에서 왜 굳이 셰프, 레시피라는 말을 쓰냐고 시청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법 규제가 따라 줘야 한다.



위정자들이 이런 현상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식하고 있다면, 국회에서 '신속 처리제'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입법 절차를, 마치 '패스트 트랙' 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대단히 복잡한 개념이나 되는 것처럼 여야가 합창하지는 않을 것이다. 걸핏하면 로드맵이니 아젠다등 용어를 정책 과정에서 남발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더치페이를 각추렴, 각자 내기로 하자고 백날 얘기하면 뭐 하나, 실천의 방법도 없고 강제하지도 못하는데... 이미 들어온 외국어의 순화보다는 새로 말을 들여오는 걸 통제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어문 정책이 절실하다.


한 나라의 무역수지가 악화되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을 제한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쓴다. 우리나라는 수천 년간 언어 순수입 국가로서 수입 의존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제 언어에 있어서도 강력한 수입 규제를 실시하는 보호무역이 불가피하다. 외국어의 진입장벽을 높여놓고 언어의 자급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권한을 가진 집행기관이 일반 대중의 신규 어휘 수요를 적시에 파악, 어휘의 자체 생산 또는 수입 여부를 심사 판단하고 언어의 유통을 기획 통제하는 '문화 독재'가 필요하다. 외국어를 외래어로 인정하는 절차를 이민 심사처럼 까다롭게 수립해야 한다. 우리말이 어느 정도 국제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만이라도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낱말 생산 능력을 키우자


컴퓨터의 자판을 미국에서는 computer keyboard라고 하고 프랑스에서는 clavier d'ordinateur, 중국은 计算机键盘, 일본은 영어를 따라 발음한다. 다른 나라에서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기도 하고 자기네 나라말로 바꾸어 짓기도 한다. 언어 정체성을 회복하는 의식 변화도 필요하지만 우리도 기술적으로 낱말 생산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덮밥' ,'먹거리' 같은 비통사적 합성어도 초문법적으로 받아들이고 장려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지 '탁월'하다는 한자의 조어 능력과 영어의 환상에 더 이상 안 밀리고 낱말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고, '댓글러' 같이 새로 생기는 쓰레기 말도 퇴치할 수 있다. 자꾸 쓰다 보면 우리말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잊었던 우리말도 발굴해 활용할 거고 창조적으로 말을 만드는 단계에까지 이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자가 위에서 사용한 '비통사적'이나 '초문법적'같이 한자 접두어와 접미어로 범벅이 된 불편한 단어들도 좀 더 아름다운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도 잘 달래 가며 써야 한다.



용불용설은 언어에도 적용된다.


이러다 우리말 다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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