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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MD Nov 30. 2020

[주간300] 중고책을 읽는 재미

돈이 덜 든다

저는 요즘 중고서적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일단 돈이 적게 듭니다.(좋은 책을 저렴하게 사면 아주 짜릿합니다.) 전에는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슬금슬금 책값이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사는 값으로는 아주 저렴한 가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가끔 형편없는 책을 형편없는 가격에 사고 나면 분하지만, 보는 눈이 없는 제 탓이므로 누구를 뭐라 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사는 책을 모두 보지는 않기 때문에, 책을 많이 사면 그것도 부담이 됩니다. (한 달에 2~3권 정도를 읽지만 실제로 사는 건 열 권 정도입니다. 산 책의 10%만 읽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헤아려보니 생각보다 많이 읽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네요.) 중고책은 보통 30-40% 낮은 가격에, 오래된 책은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어서 훨씬 부담이 적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사게 되긴 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팔면 되고, 같은 값에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이득 아닙니까.)


지금은 절간 된 좋은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어떤 책이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과거 다른 책을 찾아보곤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절간 된 책들이 꽤 있습니다. 그럴 때 중고책을 찾아보면 아주 저렴한 값에 좋은 책을 살 수 있습니다. (영국이었는지 프랑스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납니다만(아마 영국이었던 것 같네요), 절간 된 책을 그 자리에서 인쇄해서 책으로 만들어주는 아주 신박한 서점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것도 정말 재밌는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중고책이 있다면 저는 중고책을 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정판이 아닌 초판을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유행인지 개정판이 참 많이 나옵니다. 무슨무슨 에디션이라고 해서 같은 값에 색다른 표지로 출간되는 건 그래도 봐줄 만 한데, 별로 바뀐 것도 없는데 개정판이랍시고 떡하니 나와있는 걸 보면 좀 씁쓸합니다. 당연히 인기작일수록 개정판이 많이 나오는데, 그게 작가가 뭔가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해서 개정된 책이면 다행입니다만, 요즘 나오는 개정판은 속은 그대로에 겉만 바꾼 페이스리프트 같은 책들이어서 재미도 없고 상술에 놀아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개정판 머리말보다 초판 머리말을 읽는 게 더 재밌습니다. (머리말을 안 읽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글을 잘 쓰는 작가의 머리말은 아주 좋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개정판은 작가보다는 출판사에서 내자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내키지 않은 채 머리말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물론 근거는 없습니다.) 그래서인지(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개정판 머리말은 겉도는 내용일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초판 머리말을 이제 와서 읽다 보면 작가가 글 쓸 시기의 감정이나, 당시의 시대 분위기가 느껴져서 재미있습니다.


주로 중고책을 사는 입장이긴 하지만, 간혹 집에 묵혀놓은, 책장에 꽂아만 두고 더 이상 보지 않는 책을 팔기도 합니다. 중고서적 거래는 아주 간편하게 표준화되어있어서, 손쉽게 사고팔 수 있습니다.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전에는 애지중지 소중한 내 책을 (보지도 않으면서) 곁에 두고 싶어서 처분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쉽게 팔아버립니다. 결정적으로 책을 팔게 된 건 점점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 때문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땅값을 생각하면 얼른 팔고 싶어집니다. 땅값이 이렇게 비싼데, 중고시장에서 몇 천 원 밖에 안 하는 책이 한 자리 떠억 차지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팔아버리고 빈 책장을 보면 속이 다 시원하고, 왠지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실제로 돈도 생기고요.) 읽히지도 않고 집에서 먼지를 먹고 있는 것보다는 정말 읽을 사람 손에 가는 게 책 입장에서도 좋은 일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은 하루키의 중고책을 사는 중입니다. 소설보다는 에세이, 그중에서도 여행기를 찾아보고 있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가서 여행기로 대리 만족 중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기도 그랬지만, 글 잘 쓰는 소설가의 여행기는 읽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먼 북소리'에 대해서도 조만간 떠들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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