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괴롭다
난데없이 왜 라디오 주파수냐 하면, 최근에 알게 된 채널 주파수로 혼자 알기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KBS에서 운영하는 클래식 FM 채널인데, 하루 종일 클래식 또는 재즈(아주 가끔은 국악)를 틀어주고, 요즘 같은 시즌에는 종종 캐럴이 나오는데, 연말 분위기도 나고 정말 좋습니다.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지나친 고요함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고, 적당한 소음이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 경우도 있어서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어놓는 편인데, 최근에 고정시켜놓고 듣는 채널입니다. (지금도 굉장히 경쾌하면서도 차분한 재즈가 흘러나오는데 정말 듣기 좋습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의 좋은 점은 수동적 자세로 청취가 가능하다는 점이고, 무슨 노래를 들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솜씨 좋은 작가와 DJ가 계절과 날씨, 가끔은 사회 분위기에 맞게 알아서 선곡을 해주니, 선택의 괴로움도 없습니다.(저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뭘 볼지 고르는 시간이 더 많은데 그런 경우 많지 않나요? 선택의 폭이 너무 넓은 것도 아주 괴로운 일입니다. 모처럼 영화나 한 편 볼까 하고 호기롭게 틀었다가, 결정 못하고 시무룩해진 경험이 많습니다. 결국 고르는 데 지쳐서, 이미 몇 번은 본 영화를, 지난주 수요일에도 틀어준 그 영화를 오늘도 다시 틀어주는 OCN이나 채널 CGV를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어벤저스와 타짜을 대체 몇 번이나 본지 모릅니다. 그래도 재밌으니까 보긴 합니다만.) 더구나 클래식의 경우는 듣고 싶어도 당최 뭘 들어야 될지 몰라서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음악을 알아서 척척 들려주니, (그것도 공짜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또 이 채널의 좋은 점은 DJ 분들이 다 차분합니다. 어설픈 농담이나 실없는 소리, 경박한 웃음, 과도한 소통없이 담백하게 곡을 소개해주고, 아주 가끔 담백한 사연(이런 채널에 오는 사연도 역시 아주 담백합니다)도 소개해줍니다. 그리고 광고도 없습니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이런 채널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라디오 채널 하나 소개하면서 쓸데없이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습니다만, 혼자만 알기 아까운 채널이라, 야밤에 살짝 흥분한 채로 글을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