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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Nov 04. 2018

마녀도 운다

나의 심장을 도려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성시경의 당신은 참...'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 성시경의 당신은 참...노래 듣기♪




어제부터 진상 손님이 가게로 출근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의 성경 필사가 끝난 모양이다. 그렇게 꼴 보기 싫었는데, 막상 매일 채워졌던 자리가 비워지자 영선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곧 들어서게 될 진상 손님의 카페 때문에 영선은 생계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오늘은 단체 손님이 있어 영선의 심란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진상 손님 아버지가 주인이라던 그 빌딩에 새로 들어온 회사 사무실 직원들이 처음으로 영선 가게에 와 준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얘기 마녀가 들은 거 같아.”

“진짜? 그럼 어떡하지?”

“뭐, 자기가 어쩔 거야. 사실 인걸. 그리고 아는 척하는 것도 우습지. 안 그래?”

“그래도 마녀가 나중에 보복이라도 하면 어쩔 거야.”

“에이, 또 마녀가 그렇게 뒤끝 있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근데 좀 불쌍하긴 해. 나이도 많은데. 본부장한테 이용만 당하고.”

“그니까 그 나이 되도록 뭐했다니. 연애도 제대로 못해 본 거 같던데.”

“야, 그만해. 이러다 또 어디선가 마녀가 불쑥 나타날 거 같단 말이야.”     


한 바탕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졌다. 영선은 그들의 시끌시끌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커피를 뽑았다. 영선이 음료가 다 준비되었다고 말하려는 그때, 갑자기 그들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손님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니, 모두들 숨을 멈춘 것처럼 입을 가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카페 창밖에서 한 여자가 샌드위치 봉지를 들고 쓸쓸히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홍콩 누아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슬로비디오처럼. 영선은 그제야 창밖의 여자가 단체손님들이 얘기하던 그 마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선은 아주 잠시 직장에 다니던 시절 생각이 났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답답한 가슴을 콩콩 치며 영선은 마녀라고 불리는 여자가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지켜봤다. 잘못 봤을까? 영선은 눈을 비볐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던 마녀의 눈가에 무언가 반짝 빛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마녀도운다


#노래소설 - 당신은 참...(성시경)     


“똑 똑 똑!”

“네!”     


문을 빠끔히 열었다. 부서지는 햇살 아래 그가 앉아 있었다. 나를 보고 살짝 미소 짓는다. 나도 모르게 또 현기증이 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무사히 서류를 전달한다. 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시원한 민트 향이 코를 자극한다. 현기증이 난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볼펜을 돌리던 그가 기어코 볼펜을 떨어뜨린다. 순간,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볼펜을 줍는다. 나의 동작은 번개보다 빠르다.     


“고마워요.”     


그에게 볼펜을 건네다가 그의 손끝이 내 손에 와 닿는다. 감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그의 부드럽고 친절한 손이 내 손에 닿았을 때 그 짧은 순간이 내겐 잊히지 않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된다. 아득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내게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소한 것들을 물어본다. 나는 이런 내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 엄한 그의 볼펜만 쳐다본다.     


  

 

“어제 회식 늦게 끝났는데……잘 들어갔어요?”

“네. 그럼요.”

“사실, 깜짝 놀랐어요. 어제 회식자리에서 지나가며 한 말인데……벌써 정리해서 가져다주고……”

“아, 네! 본부장님이 급하게 필요하신 거 같아서……”

“고마워요. 역시 이 과장님밖에 없네. 수고했어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본부장님 사무실을 나온다. 날이 갈수록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엔 그저 생활의 활력소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본부장님은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남자들만큼 잘 생기진 않았지만, 실력 하나로 젊은 나이에 본부장까지 된 사람이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벌써 본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고, 아직 싱글이라 회사 여직원들에게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더군다나 오래 사귄 여자 친구도 있어서 여직원들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런 본부장님을 나 역시 그저 연예인 좋아하듯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좋아하기 시작했다.     


새로 꾸려진 프로젝트로 그의 방에 단독으로 들어갈 일이 많아지면서 나의 마음은 넘어야 할 마음의 선을 자주 넘게 되었다. 본부장님은 수준 높은 매너와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남자였다. 무엇보다 그가 감동인 이유는,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일지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자로서 일반 회사에서 과장까지 오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성희롱에 맞먹는 상사의 농담에도 무덤덤해질 줄 알아야 하고, 여자라서 어쩔 수 없다는 비아냥거림도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악물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칭찬보다 독한 여자란 소리를 먼저 들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이 지위는 능력이라기보다 독기였고, 시집 못 간 노처녀의 발악쯤으로 평가되면서 이유 없이 사람들은 나를 마녀라고 부르곤 했다. 서럽다기 보단 억울했다. 종교재판에 희생된 그 옛날 마녀들처럼. 하지만, 본부장은 그들과 달랐다. 내 능력을 인정해 주었고, 나를 온전한 인간으로 충분히 존중해 주었다. 그런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어려운 일이었다.     

  

사랑도절망처럼빠지는것


어느새 나는 본부장과 잘 맞는 동료 그 이상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함께 회의를 할 시간도 많았고, 무엇보다 비슷한 나이 또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위험한 나의 짝사랑도 깊 졌다.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우연히 스쳤던 많은 손길과 눈길들에 나 혼자서 큰 의미부여를 하기도 했다. 유난히 따듯하고 부드러웠던 그의 손길에 분명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 애써 우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분명하게 선을 지켰고 그 선을 내게 확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며 나는 한편으로는 서운했지만, 또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그가 좋았고, 존경스러웠다. 결국, 나는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해바라기 같은 사랑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어쩌면 깨어날 수밖에 없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그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그의 얼굴 한 번 더 보겠다고 밤을 꼴딱 새워 일했다. 덕분에 이렇게 잠시라도 대화를 나눴으니 되었다며, 피곤하지만 달콤한 영혼을 달래기 위해 휴게실로 갔다. 진한 블랙커피 한잔을 뽑고 있는데, 휴게실 구석에서 떠드는 여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본부장 장난 아니었다며?”

“어제 3차로 남은 사람들만 목격했다는데, 총무과 막내가 본부장한테 간택되었다던데?”

“진짜? 와……진짜 본부장은 영계 킬러구나?”

“쉿! 저기 마녀 왔어……”     


순간,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그 이야기를 못 들었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휴게실을 빠져나오려고 애썼다. 휴게실을 거의 다 빠져나왔다고 느꼈을 때, 조용하게 나의 심장을 도려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녀가 본부장 좋아하잖아…….”

“그럼 뭐하냐? 본부장은 영계들만 좋아하는데……풉!”     


안으로만 터지는 비릿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혼자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좌변기 뚜껑을 닫고 앉을 때까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계속 흘렀다. 이제는 깨고 싶지 않은 꿈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슬펐다. 아니 그 보다 두려웠다. 이제 다시는 그런 꿈조차 꿀 수 없을 것 기 때문이다.    


 

마녀의눈물



#남들처럼사랑이쉽지않은사람들

#마녀는없다

#마녀는되는것이아니라만들어지는것이다

#남의얘기는당신의얘기가될수도

#사랑도절망도빠지는것

#성시경

#연재소설

#재밌는소설

#일상소설

#3인칭관찰자시점

#조경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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