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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28. 2018

세 번째 이별

한 걸음마다 나는 울고, 그녀는 웃는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이기찬의 또 한 번 사랑은 가고'가 흐르고 있습니다.

☞ 이기찬의 또 한 번 사랑은 가고 노래 듣기♪



영선은 카페로 걸어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번 여자한테 핸드백으로 뒤통수를 맞고 앞에 앉은 여자에게 물벼락을 맞았던 남자가 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카페로 왔기 때문이다. 영선 입장에선 매상을 올려주는 고마운 손님이었지만, 남자와 함께 온 여자에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남자는 영선에게 찡긋 눈인사까지 했다. 영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그 능글맞은 친근감을 보지 못한 척하는 것뿐.   

  

“에스프레소 한잔이랑, 자기는 뭐?”

“요구르트 셰이크!”     


요구르트 셰이크라는 여자의 말에 영선은 잠시 심장이 내려앉았다. 설마. 오늘은 별일 없겠지. 영선은 애써 무시하며 음료 준비를 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여자의 눈엔  콩깍지가 씌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아마도 남자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하지만, 영선은 그런 남자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영선은 사랑이든 이별이든 쉽게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밤의카페테라스(고흐)


여자가 까르르 웃는다. 남자도 신이 나서 뻔한 농담을 계속하고 있다. 영선은 그런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본다. 왜 영선에게 어려운 일이 저 남자에겐 그토록 쉬운 걸까? 오래 고민해봤자 답도 없고 고민할 가치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영선은 벌써부터 저 남자의 세 번째 이별은 어떤 모습일까 그려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카페 창밖은 어느새 청량한 가을 햇살로 채워지고 있다.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날일까? 이별하기 좋은 날일까? 영선이 다시 쓸데없는 생각에 빠질 무렵, 문자메시지가 왔다. 영선의 엄마였다.


            

/작은 고모네 셋째가 너보다 열 살이나 어린데 이번 주말에 시집간단다./

/축의금 보내드릴게요. 다녀오세요!/

/이번에도 축의금만 내고 안 가려고? 이번엔 좀 같이 가자. 그 신랑 친구들이 네 또래라고 그러더라. 그니까 예쁘게 차려입고 와! 알았지?/     


영선은 대답 없이 자신의 휴대폰을 조용히 카운터 옆에 엎어 놓고 할 필요도 없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 사이 엎어 둔 영선의 휴대폰은 찬바람에 떠는 늦가을 나뭇가지처럼 공허하게 부들거리고 있다.      


고흐의 연인

    

#노래소설 - 또 한 번 사랑은 가고   

  

첫 번째 그녀는 이별 인지도 모르고 내 곁을 떠났다. 두 번째 그녀 또한 이별이 아닌 듯 웃으며 떠났다. 그렇게 두 번의 이별을 겪고 나서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세 번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어떤 사랑이든 결국 이별로 끝나는 거라 사람들은 쉽게 위로했지만, 나는 지금의 세 번째 이별이 제일 애달프고 서러웠다. 그녀와 울고 웃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 지나간 꿈결처럼 느껴진다. 너무 고마웠고, 미안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내 눈가에서 넘쳐흐른다. 그렇게 또 한 번 사랑은 가고 나는 혼자 남아 운다.     


처음 그녀를 만나던 날.

쓸데없이 바쁜 나 때문에 그녀는 나를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그날 나는 미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녀는 방금 울다 만 사람처럼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뭐가 그리 좋은지 또 말갛게 웃었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 예뻐서 그냥 바보처럼 웃어버렸다.     


그녀가 곁에 있어 웃을 수 있었던 날.

하루 종일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그녀를 나는 그때 왜 그렇게 귀찮아했을까? 그냥 한번 안아주면 되는 것을. 그냥 한번 웃어주면 되는 것을. 나는 무슨 심통이 난 사람처럼 그녀를 외면했고, 외롭게 했다. 때론 일에 치이고 피곤해 그녀가 내게 다가와도 잠든 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 보면 방긋방긋 잘도 웃었다. 해준 것도 없는데,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 주지도 못했는데, 그녀는 언제나 내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했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내 화에 내가 못 이겨 그녀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던 그날. 그녀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고 내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그녀는 알았을까?  걱정이 돼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굳은 표정으로 돌아서던 못난 나를 그녀는 지금이라도 알까? 그랬던 내가 너무 미워서 그랬던 내가 너무 못나서 잘 가라는 말 한마디 못하는 심정을 그녀는 언젠간 알 수 있을까?     


나와 평생 함께 살고 싶다던 그날.

거친 내 뺨에 부드러운 그녀의 볼을 비비며, 나 없인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라 말하던 그녀를 기억한다. 평생 나와 함께 살겠다던 그 다짐이 지키지 못할 약속인 걸 알면서도 마냥 좋기만 했던 그날들이 나는 눈물 나게 그립다. 지금이라도 주저앉아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어깃장을 놓고 싶을 만큼. 하지만, 이제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행복하다고 한다. 내 손을 놓고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다고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람 좋은 얼굴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 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가슴이 죄여 오는 그녀와의 진짜 이별이 내 코앞에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래다주는 길.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내 팔이 바보처럼 떨린다. 이제 저만큼만 가면 영영 놓아 버릴 손이라 생각하니 더욱 아프다. 어느새 저만치 그녀를 데려갈 남자가 보인다. 음악에 맞추어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그 남자에게 다가 갈수록 내 걸음은 천근만근인데, 그녀의 걸음은 사뿐사뿐 가볍다. 한 걸음마다 나는 울고, 그녀는 웃는다. 꼭 잡았던 그녀의 손을 그 남자에게 내어 주는 순간, 나의 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한 걸음 떨어져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원래도 예뻤던 그녀지만, 그 남자 옆에 서서 웃고 있는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제 그녀는 내게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그녀는 내게 했던 약속을 모두 잊은 채, 그 남자와 저만치 멀어지고 또 멀어진다. 한숨처럼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내뱉는다.     

 

‘잘 살아라, 우리 딸……사랑스러운 우리 막내딸!’


그녀의웨딩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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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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