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무엇일까요?
연재소설 <아파트에게>
도대체 나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느 이름 모를 작은 산등성이에 내가 꽤 오래전부터 서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세상이 나인지 내가 세상인지조차 모르는 존재였던 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불현듯 나라는 존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내 몸뚱이를 자꾸만 흔들던 바람, 그 짓궂은 바람 때문일 겁니다. 꼿꼿하게 서 있는 것밖에 몰랐던 나를 이리저리 흔들고 달아나던 그 얄궂은 바람 덕분에 나는 내가 세상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겁니다. 내 존재감을 깨닫게 되자, 주변에 있던 많은 존재들이 하나둘씩 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과 땅, 해와 달 그리고 시시때때로 내리는 비와 눈, 내 몸뚱이를 파고드는 벌레들까지.
사람들처럼 눈도 없고 귀도 없는 내가 어찌 그런 존재들을 느낄 수 있었을 까요? 안타깝게도 그걸 설명할 방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나는 그저 온몸으로 모든 것을 느끼고 감지할 뿐입니다. 나중에 어렴풋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움직이는 존재들과 아주 다른 지각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시청각 능력은 없지만, 모든 자극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인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거죠. 그런 특별한 지각 능력이 점점 더 발달하면서 나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존재들의 작은 움직임, 그리고 해와 달의 세심한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나는 왜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걸까?’
처음엔 그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뭐 지금은 괜찮습니다. 비록 바람이나 빗방울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존재지만, 나는 해가 뿜어내는 양기를 내려받고 땅이 뿜어내는 음기를 올려 받으며 내 형상을 아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니까요. 잠시 보기에는 그대로 인 것 같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눈치챌 사이 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신비한 존재 말입니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멀게만 느껴지던 하늘에 가까워졌고, 가까운 줄로만 알았던 땅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던 어느 날, 아주 낯선 존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감지했던 존재들과는 많이 다른 존재였습니다. 평소에 보던 동물들보다 훨씬 크고 포악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나보다는 작았지만, 자신의 몸뚱이를 제법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일 줄도 알았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들에겐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 이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기하고 멋져 보였습니다. 이름을 가진 그들은 한참 동안 나를 관찰하고 이리저리 건드려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흘려보내던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타나 다짜고짜 내 주변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단단하고 이상하게 생긴 물건에 치어 내 몸뚱이는 일부분이 잘려나가기도 했으니까요. 덕분에 나는 세상에 존재한 이후 처음으로 고통이란 것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포악한 행위는 멈추지 않았고, 내 일부라 생각했던 땅은 결국 그들에게 굴복하고 내 몸뚱이를 땅 밖으로 뱉어내버렸습니다.
땅과 분리된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존재처럼 나는 얼마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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