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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Aug 10. 2024

3화.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연재소설 <아파트에게>


 아파트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아파트에는 몇 명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걸까요? 나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파트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사람들은 이 아파트가 꽤나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105동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또다시 각각 다른 이름으로 구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문마다 101호, 102호, 103호 같은 별도의 이름이 주어져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들어온 순서를 말하는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도 모두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름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나무들도 생김새나 종류에 따라 각각의 이름이 있는 걸까요?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저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나와 같은 존재도 분명 주어진 이름이 있을 거라고.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살다 보니, 어느새 내 이파리와 가지들도 쑥쑥 자라 105동 아파트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입구 앞쪽 작은 창문 안에는 모자를 쓴 사람이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습니다. 처음엔 그 사람도 105동에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켜보다 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고, 번갈아 가면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짐작컨대, 모자를 눌러쓴 두 사람은 105동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아파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경비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아파트를 지키는 사람을 경비아저씨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루는 키가 작고 머리에 숱이 별로 없는 경비아저씨가, 또 다른 하루는 키가 크고 덩치 좋은 경비아저씨가 105동 아파트를 지킵니다. 재밌는 것은 생김새만큼 두 경비 아저씨의 행동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키가 작은 경비 아저씨는 부지런하고 말이 많은 반면,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아저씨는 관절이 좋지 않아서 인지 천천히 움직이거나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일이 많았습니다.  


 짐을 싣고 아파트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뜸해지더니 아파트의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뭔가 모르게 활기차고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할까요? 어쨌든 하루 종일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는 무척 설레는 일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재밌습니다. 대체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부지런한 것 같습니다. 나처럼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대부분 비슷했는데, 해가 뜨면 아파트에서 나와 어딘가로 향합니다. 물론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아주 멀리 가는 것처럼 보였고, 또 어떤 이는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지는 밤이 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105동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도대체 하루 종일 어디에 갔다 오는 거냐고 묻고 싶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비아저씨가 앉아 있는 경비실에서 아주 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경비실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경비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머물 정도로 크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그 소리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순찰을 할 때 경비 아저씨가 한쪽 손에 네모난 모양의 상자를 들고 다녔는데, 그 상자 안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작은 상자 안에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을까요?


 “경비 아저씨, 라디오소리 좀 줄여 주세요!”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가진 한 아주머니가 살집이 퉁퉁한 경비 아저씨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 네모난 상자의 이름이 라디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엔 끊임없이 들리는 라디오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 일은 피곤했지만, 며칠 적응이 되고 나니 금세 괜찮아졌습니다. 오히려 라디오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저녁이 되면 뭔가 심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라디오는 신비한 요술 상자 같습니다. 라디오만 듣고 있으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의 갖가지 소식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라디오가 좋았던 이유는 드라마와 음악 때문입니다. 특히 라디오 드라마는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더 신기한 것은 매일 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매일 또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라디오 드라마는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들어야 더 재밌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라는 것은 그 음악의 특색에 따라 내 기분은 널뛰기를 합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이유 없이 기분이 들떴다가도, 슬픈 음악이 나오면 또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는 조금 어색한 기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이랑은 아주 다르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마치 사람들의 목소리를 바람에 태워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감상적으로 만들고 싶어서 만들어진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파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먼지처럼 쌓여 갑니다. 그리고 그날들만큼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알아갑니다.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쌓일수록,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 무엇보다 재밌어집니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 나무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말입니다. 언젠가 라디오 디제이가 했던 말처럼, 사람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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