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 엄빠가 되고 싶어요
Episode #2 : 엄빠가 되고싶어요
‘육아’라는 새로운 장르에 본격 입문 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나의 주 관심사는 ‘좋은 아빠 되기’가 됐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라난 탓에 수직적인 가족관계에 익숙한 나는 내 아이에게 만큼은 수평적이고 친구같은 아빠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했다. 적어도 아내가 이제껏 온 몸으로 일구어 놓은 이 잘 짜여진 커리큘럼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꼭 그래야만 했다.
굳이 서점에 가지 않더라도 온라인 세상은 육아 관련 정보들로 넘쳐났다. 내 주변 이웃들이 알려주는 깨알같은 육아 꿀팁에서부터 해석 불가였던 아이들의 심리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이르기까지. 그 중에서 가장 새롭고 신기했던 건 바로 다양한 육아 신조어였다.
독박육아, 육퇴, 도치맘, 할빠, 할마 등등 나는 그 센스에 감탄 한 번, 그 의미에 쓴 웃음 한 번 짓곤 했다. 아무래도 신조어나 줄임말에 익숙한 세대도 아니고 주로 엄마들의 문화가 묻어나는 말들이 대부분 이었기에 그땐 그저 재미로 지나쳤는데, 언젠가부터 마음 한 구석에 묘한 느낌으로 자리잡은 단어가 하나 생겼다. 바로 ‘엄빠‘
‘엄빠‘ : 엄마 + 아빠의 줄임말.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OO맘’으로 상징되는 수 많은 엄마용어들 중에 몇 안되는 아빠 말(?)을 찾아냈다는 반가움이 컸던 터라 사실 뜻을 알고나서는 꽤나 허무했었다. 그리고는 마치 소중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듯 내 나름대로의 뜻을 담아 재해석 하기로 했다.
‘엄마같은 아빠‘
이 한 마디는 어느 순간 덜컥 주 양육자가 된 내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현실육아 앞에서 주문처럼 외우게 될 한줄기 빛이자 일종의 안전지대 같은 것이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했었고, 내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1순위였던 덕분에 딸과 나 사이의 애착관계는 잘 형성된 편이었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손길을 더 많이 주어야 했고 자연스레 스킨십이 늘어나게 되면서 딸과 나는 그런 살가움을 즐겼다. 그런 나에게 유일하게 넘어서지 못하는 큰 산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엄마의 ‘쭈쭈’였다.
아내는 2년 가까운 시간동안 그 어렵다는 완모를 해내었고 그 덕분인지 몰라도 딸 아이는 정 많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났다. 모유수유 기간이 끝난 후에도 아내는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싫다며 아이의 요구가 있을때면 기꺼이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겐 일종의 질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쉽사리 잠들지 못할 때면 나는 세상에 있는 자장가 없는 자장가 다 동원해 가며 세상 달콤한 목소리로 불러주었고, 신들린 연기력으로 밤새도록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하지만 가장 최후의 순간 아이의 선택은 언제나 엄마였다. 내 갖은 노력이 무색하게 마치 치트키처럼 엄마의 ‘그것‘이 등장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금새 잠이 들곤 했다. 밀려오는 배신감과 허무함에 나는 엄마 몰래 내 것을 슬쩍 권유해보기도 했고 아이도 몇 번은 호기심에 시도해보긴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아빠의 한계.
처음 느껴보는 좌절감이자 두려움이었다. 그 후로도 본능적인 감정들이나 욕구가 생길때면 아이는 항상 엄마를 찾았다. 그렇게 엄마의 손에 아이를 넘길 때마다 난 육퇴의 기쁨을 만끽하기 보다는 아빠라는 이름이 갖는 그 태생적 한계에 남 모르게 눈물을 삼키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도 하고 또 한편으론 당연하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열 달이란 시간동안 탯줄로 연결되어 하루하루를 함께 숨쉬었던 두 사람의 그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과 감정을 내가 어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의 모성애도 함께 태어나는 것이고 아빠의 부성애는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누군가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보면 황새를 쫓아가려는 뱁새의 가랑이가 찢어지듯이 난 무모한 도전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딸은 어느 새 32개월이 되었고, 나의 육아도전기는 이제 막 반 년을 지나고 있다. 여전히 난 엄마의 ‘최종보스’를 이기지 못하지만,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딸과 나 둘 만이 아는 비밀이 생겼고, 폭풍 눈물 뒤에 가장 먼저 달려와 안기는 사람이 되었고, 가장 아끼는 젤리를 함께 나눠먹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글을 쓰느라 거실에 나와있는 사이, 밤 새 엄마품을 파고들던 딸이 어느 새 내 체취가 가득한 베개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다.
‘엄마같은 아빠‘가 되는 길은 여전히 커다란 벽이고 멀고 먼 여정이지만 적어도 난 아이의 일상속에서 소소하게 기억되는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난 ‘엄빠’가 되어간다.
#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띵곡
Beyonce – Daddy (2003, Dangerously in love)
많은 노래속의 아빠는 언제나 일에 지쳐 돌아오거나 어깨가 무거운 가장의 모습이었어요. 소박하지만 더 친근하고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그린 노래는 없을까?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제가 꼭 그런 아빠의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세계적인 디바 비욘세가 그 어려운 걸 해냈네요 ㅎㅎ. 2003년 ‘Dangerouly in love’ 앨범에 수록된 ‘Daddy’라는 곡 속에는 딸 비욘세가 기억하는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I remember when you use to take me on a bike ride everyday on the bayou
(저는 당신이 매일 강어귀로 자전거를 태워주곤 하셨던 것을 기억해요)
I still remember I called you crying cause of my tatoo
(저는 제 문신때문에 울면서 전화했을때를 아직도 기억해요)
Could have said Beyonce I told you so instead you said you’d get one too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니 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대신 당신은 자신도 문신을 할거라고 하셨죠)
참 인간적이고 따뜻한 아빠였죠? 노래 가장 마지막 비욘세가 아빠에게 남기는 한 마디가 참 좋으면서 그의 아빠가 많이 부러워집니다.
No one else replace my daddy
(그 어떤 누구도 아빠를 대신할 수 없어요)
저도 제 딸에게, 그리고 세상 수 많은 아빠들이 그들의 아들과 딸에게 그런 존재임을,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p.s 글을 마무리 하려는데 딸 아이가 잠에서 깨어 제 무릎위로 슬며시 자리를 차지합니다.
행복한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