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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Apr 28. 2020

조제의 감성 육아일기 ‘아빠라서 미안해’

Ep #6 - 발가락이 닮았어요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감성 육아일기

‘아빠라서 미안해’


Episode #6 - 발가락이 닮았어요


아이가 태어나던 그 날의 설렘을 잊지 못한다.

내 팔뚝 길이 정도나 될까 말까 한 작은 몸집으로 쌔근쌔근 가뿐 숨을 쉬어대던 딸을 바라보며 난 의미를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다. 시간이 흘러 산후 조리원에 들어가서야 아이를 제대로 품에 안게 된 아내와 나는 아이를 요리조리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내가 한 마디 꺼낸다.

“새끼발가락이 오빠랑 꼭 닮았네.”

아버지와 엄마를 닮아 비스듬히 누워있는 내 새끼발가락을 닮은 아이. 그렇게 날 닮은 아이가 생겼다.




사실 새끼발가락과 곱실거리는 머리카락 정도를 닮은 것을 빼고는 딸아이는 제 엄마를 쏙 빼닮았다.

그렇게 순도 99% 외탁한 손녀의 모습이 조금은 아쉬우셨는지, 엄마는 희진이를 부를 때면 농담 반 진담 반 아내의 이름을 붙여 “작은 수미, 작은 수미“하곤 하셨다. 나 역시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콤플렉스가 많았던 탓에 아이가 생기면 아내를 닮았으면 했었지만, 그래도 내심 서운한 마음은 있었다. 그렇게 “애가 아빠 닮았네”라는 말 몇 번 들어보지 못하는 사이 아이는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났고, 잠자고 있던 아빠 DNA가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제법 그럴듯하게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 하나, 둘 씩 본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번은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간 적이 있다. 한 참 동안을 새로운 세계를 탐닉하던 딸아이는 숫자와 동물그림이 가득한 자석 블록 놀이가 재미있었는지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며 자리를 잡고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자석 블록들을 하나씩 하나씩 오와 열을 맞추더니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 전부를 줄 세우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장면. 어릴 적부터 물건들이 정리되고 정돈되어 있어야 마음이 놓였던 내 모습. 그랬다. 아이는 그런 나를 쏙 빼닮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다툼이 생기면 대 여섯 번은 참고 나서야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우는 모습, 장난감 가게에 들러서는 마음에 드는 인형을 사달라는 말 대신 인형이 아픈 것 같다며 몇 번을 왔다 갔다 망설이는 모습. 동네 산책을 할 때면 유난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여 서슴없이 인사를 건네고, 과자를 먹을 땐 모양이 부서지지 않은 것만 쏙쏙 골라먹는 모습. 엄마가 귀에 닳도록 들려주셨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딸에게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내는 볼멘소리로 누구 딸 아니랄까 봐 라고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내 편 하나가 생긴 것 같은 묘한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문득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산책길에 뒷짐을 지고 걸어가던 아이를 보며 누구한테 배웠냐고 묻자 말없이 나를 흘겨보던 아내의 눈빛에 얼굴이 빨개졌다. 의사놀이를 하던 딸이 주사를 안 맞겠다던 나에게 눈을 치켜세운 낯익은 얼굴로 “이놈 혼난다” 하고 으름장을 놓을 때면 가슴이 철렁했다. 나의 작은 것 하나까지 닮아가는 아이를 보면서 아빠라는 존재가 가진 그 커다란 무게에 어깨와 가슴이 무거워졌다.


내 아이의 처음이 되어주는 사람.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내 작은 손님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

어쩌면 평생 진짜 상어를 보지 못할지도 모를 내 아이에게 TV 속 상어 가족이 전부는 아님을 알려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언젠가 길을 걷다가 뒷모습이 꼭 닮은 엄마와 딸을 본 적이 있다. 걸음걸이까지 쏙 빼닮은 모녀를 보며 나를 닮아갈 내 아이를 위해 좀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눈 속에 내가 있네” 하며 사랑을 말하는 내 딸>


오늘도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제 엄마를 따라 나를 여보, 오빠라고 부르는 내 딸.

내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아빠 눈 속에 내가 있네 “ 하며 사랑을 돌려주는 내 딸.

나의 하루가, 나의 슬픔이, 그리고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내 아이에게 세상은 좀 더 아름다운 곳이라고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당연한 얘기지만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니까.




#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띵곡 : 숨의 숲 – 낙엽을 닮은 (2015년, 싱글 – 낙엽을 닮은)



2011년 싱글 앨범 [숨]으로 데뷔 한 ‘숨의 숲’은 싱어송라이터 윤기타와 프로듀서 류음으로 구성된 어쿠스틱 혼성듀오입니다. 시를 쓰는 듯한 아름다운 가사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깨끗한 물이 되는 듯 마음이 정화됩니다. 한편, 멤버 윤기타는 최근 방탄소년단의 정규앨범 Love Yourself 轉 'Tears' 수록곡 ‘러브 메이즈(Love Maze)’의 작사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숨겨진 보석들의 성장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때마침 가을이 끝나가는 요즘, 이 노래처럼 딸 아이가 계절의 신비로움과 영롱한 소리를 닮아 아름답게 자랐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낙엽을 닮은 너의 눈동자를

나는 정말 정말 좋아했었어

가을을 닮은 너의 목소리를

나는 아직 아직 잊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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