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능소화-4백년 전에 부친 편지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덤 안에 숨겨져 있던 손 편지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면 믿으실까요?
1988년 경상북도 안동의 한 개발구역에서 묘를 정리하던 중 미라가 발견되었습니다. 관 안에서는 한글로 쓰인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도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미라로 발견된 사람이었고 이름은 이응태였습니다.
(*미투리: 삼, 모시 등으로 엮어 만든 신발)
그렇다면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편지를 쓴 사람은 그의 아내였고 편지의 제목은 ’원이 아버지께‘였습니다. 한글로 쓴 편지에는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눈물로 담겨있습니다. 미투리 역시 아내가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것으로 당시에는 머리카락을 섞어 미투리를 만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부부에게는 ’원‘이라는 아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이까지 둘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을 떠나 보내야 했던 아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뱃속의 아이는 누구를 아버지라 불러야 할까요? 앞으로 남편 없이 살아가야 하는 그녀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할까요?
작가 조두진님은 미라가 발견되었을 때부터 무덤의 주인과 편지 내용, 편지를 쓴 아내에 대해 깊이 연구하신 분입니다. 실제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셨습니다. 이 책의 압권은 책 끝에 수록된 아내의 일기입니다. 일기를 보며 그녀의 진실한 사랑과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힘들게 살았을 당시의 사회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서투르지만 진심을 담은 참된 그들의 사랑에 미소를 지었고, 혼자가 된 아내의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끝으로 편지의 일부분을 써 봅니다.
원이 아버지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나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