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깊은 바다 Jan 03. 2024

아내가 시킨 심부름

아내가 시킨 심부름은 만만치 않았다. 아내는 조곤조곤할 일을 설명했다. 나는 듣고만 있었다. 싫은 내색은 할 수도 없었다. 귀찮기보다는 두려웠다. 의사를 만나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아내는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달라고 했다. 그것도 세브란스 병원에.


아버님은 5년 전, 희소 암 판정을 받았다. 아내는 아버님의 볼과 목 사이가 살짝 부어오른 걸 발견했다. 아내는 아버님을 병원에 모셔 갔다. 결과를 듣던 날, 아버님 곁에는 아내가 있었다. 의사가 차분하게 설명할 때, 아버님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고 했다. 아버님은 가족에게 그 슬픔을 숨기려고 했다.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그날 우리의 눈가는 젖었고, 마음은 쓰렸다. 이제는 그 감정조차 잊힐 만큼 시간이 흘렀다. 암에 걸렸다는 걸 말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게 사라진 건 아니다. 정기적으로 목포와 서울을 오가며 진찰을 받고 예후를 살핀다. 주로 아내가 하던 일이다. 12월 21일, 그 역할을 대신해달라고 했다. 그러려고 휴가를 낸 건 아니다. 일정이 겹친 것뿐이다.  


아버님은 목포에서 일곱 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용산에는 아홉 시 50분쯤 도착한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혼자 사는 관사에는 한기가 가득했다. 네이버 지도로 갈 길을 다시 한번 검색했다. 며칠 전부터 대여섯 번은 훑어봤는데도 새롭다. 마스크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내복까지 입었는데도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다. 후드 티에 달린 모자까지 눌러쓰니 한결 낫다. 지하철 승객들은 표정 없이 휴대전화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량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조금씩 흔들릴 뿐이었다. 용산행 전철로 갈아탈 무렵 아버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눈이 많이 내려 기차가 20분쯤 늦어진단다. 한 시간쯤 여유가 생겼다. 역사에 있는 커피숍에 앉았다. 어제 가방에 챙겨 둔 단팥빵을 꺼냈다. 차가워진 빵과 따뜻한 커피로 허기를 달래며 시간을 보냈다. 열 시 10분쯤 기차가 도착했다. 사람들은 연착된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서둘러서 역사를 빠져나갔다. 귀마개를 차고, 목도리를 두른 작지만, 다부진 체구의 아버님이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열 시 50분으로 예약한 진료를 보려고 서둘렀다. 다행히 택시가 바로 잡혔다. 기사님은 행선지를 물었다. 아버님은 세브란스 병원까지 가자고 했다. 내 생각과는 달리 활기에 차 있었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건강 검진 결과를 듣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아버님도 그럴 줄 알았다. 아내는 아버님이 최근 들어 어깨 주위를 아파한다며, 의사에게 자세히 물어보라고 했다. 담배를 다시 피우는 것도 내심 걸렸다. 나에게는 처음이지만, 아버님은 수십 번은 오갔을 길이다. 의사의 모진 말도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두려움과 아픔을 이겨내는 내성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47년생 기사님은 왜 병원에 가느냐는 물음 대신 어떻게 하면 빨리 갈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운전을 40년 넘게 한다는 기사님의 배려 덕분에 제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암 병동이라고 인식해서인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슬픈 기운에 싸여 있는 듯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행동과 말투에서 누가 환자이고 보호자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님은 능숙하게 수속을 밟았다. 마치 아버님이 내 보호자 같았다. 열한 시 10분에 예약한 3층 이비인후과부터 접수하고, 열 시 50분에 예약한 1층 영상의학과로 내려왔다. 그래야 계획대로 의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진료실 앞에 설치된 화면에는 가운데 이름을 감춘 환자 명단이 순서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버님 이름도 끝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진료 시간이 20분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 문구가 떴다. 의사에게 하나라도 더 묻고 싶은 게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일 것이다. 간호사는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무뚝뚝하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하려는 게 느껴졌다. 매일 생과 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쉬지 않고 상대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미소를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지 모른다.


간호사는 아버님의 이름이 불렀다. 나도 아버님의 뒤를 따라 의사 방에 들어갔다. 진료에 방해가 안되면서,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의사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아버님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진료 결과를 설명했다. 결론은 크게 이상이 없다는 거였다. 가슴 한구석을 있던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아버님도 내색은 안 했지만, 한결 평안해 보였다. 그렇게 길고도 짧았던 5분이 지났다.


아내가 가져오라던 보험 서류까지 챙기려면, 병원의 점심시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버님은 구내식당에서 대충 먹자고 했다. 나는 맛있는 걸 사드리고 싶었다. 병원 주변에는 마땅한 데가 없었다. 가까운 식당도 사람들로 붐볐다. 베트남 요리 체인점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쌀국수와 볶음밥을 주는 세트 메뉴를 시켰다. 따뜻한 국물이 먹을 만했다. 카페에서 아버님은 따뜻한 카페라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버님의 라떼 위에 우유로 그린 꽃 무늬가 예술이다. 아버님과 카페라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가족 카톡방에 사진과 결과를 올렸다. 가족은 모두 기뻐했다.


아내는 내가 아버님과 식사하고, 말동무를 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목포로 내려가는 기차 창밖은 하얀 눈이 뒤덮었다. 동남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여성들은 눈이 신기한 듯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아버님은 유튜브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이쯤 하면 첫 심부름 잘 마쳤다.

작가의 이전글 26년 전, 일본 소도시를 그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