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딸의 방에서 스마트폰 알람이 5분 간격으로 울려댔다. 중학생 딸은 요즘 기말고사를 본다. 어젯밤에는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있는 딸에게 한마디 했다. "오늘은 책 좀 보는 게 어때?" 딸은 갑자기 눈을 비비며 하품했다. 딸은 영어 시험만 남아서 부담이 없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면서, 또 당했다. 아내는 알람이 두어 번 울리자, 성을 냈다. "제발 알람 좀 끄라고." 잠을 깨우려고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려도 꿈적하지 않는데, 그 정도 성화에 반응하리라고 기대한 우리가 어리석었다. 결국, 내가 일어나고서야, 우리 집의 새벽은 고요와 정적으로 채워졌다.
눈을 살짝 붙였다. 다섯 40분, 이제는 내가 일어날 시간이다. 잠을 설쳐 피곤이 몰려왔다. 밤에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그 핑계 삼아 좀 더 자 보려고 했지만, 잠시 뒤척이다 세면대로 갔다. 찬물로 세수했더니, 잠기운이 가셨다. 창밖을 보니 숲도, 대지도 촉촉하다. 비를 잔뜩 채운 암흑색 구름 때문에 날은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현관에 있는 긴 우산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빗방울은 그쳤지만, 공기는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6월 말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헬스장에서 한 시간쯤 운동했더니, 옷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하루 목표량을 채우고 샤워장에 들어서면 쾌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이 맛에 숨이 턱턱 막힐 때까지 달리고, 신음을 내면서까지 힘을 쓰는 것 같다. 먼저 따뜻한 물로 몸에서 나온 노폐물을 씻어낸다. 6월 들어서는 살짝 차가운 물로 몸을 헹군다. 이 쾌감이 또 짜릿하다. 체온 36.5℃보다 10℃쯤 낮은 물이 몸에 닿으면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래서 10초 이상 서 있는 게 힘들다. 머리부터 강한 물줄기를 맞으면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 얼굴을 여러 차례 손으로 비벼대며 물을 닦아낸다. 그러면서도 대여섯 번은 샤워 줄기에 머리부터 온몸을 댄다. 이 느낌이 좋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고나 할까! 나는 아주 예전부터 폭우가 내리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다.
33년 전, 나는 딸과 같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집에서 6km쯤 떨어진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아침에는 버스 한 대가 다녔다. 거기에는 여러 동네의 학생들과 읍내에 가는 어른들까지 타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비까지 오면 버스는 콩나물시루가 됐다. 나는 학교 갈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자전거를 탔다. 그때도 역시나 6월 말이 되면 비가 자주 내렸다. 학교가 끝날 때쯤 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려면 두어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차비가 없었다. 있다면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겠지. 남자 친구들은 대부분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쳤다. 옷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속옷까지 다 젖었다. 빗줄기는 더 굵어진다. 강한 빗줄기가 머리카락을 타고 눈부터 콧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눈 주위의 물방울 손으로 닦아내는 것뿐이다. 많이 내릴 땐 하늘이 구멍이 난 듯 물을 쏟아부었다. 나는 오히려 비가 많이 내리는 게 좋았다. 마치 찬물로 샤워하는 것처럼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문제는 흙길을 달려야 한다는 데 있다. 길옆에는 논에 물을 대려고 만든 1m쯤 되는 수로가 있었다. 비가 오면 수로의 물도 세차게 흘렀다. 가끔은 흙길에 자전거가 미끄러져 수로에 빠졌다. 주로 친구들 손에 잡혀 올려 온 건 나였다. 친구들은 깔깔대며 자전거까지 끌어 올려 줬다.
장마가 오면 농부도 잠시 쉬어간다. 텃밭에 부추와 애호박이 쑥쑥 커갈 때다. 어머니는 비를 맞고 온 내 머리를 털어 주며 갈아입을 옷을 내어주었다. 어머니는 부침개를 자주 부쳤다. 가끔은 막걸리로 빵을 만들기도 했다. 비를 뚫고 40분쯤 달렸으니, 밀가루만 부쳐 줘도 맛있었을 것 같다. 신선한 야채와 닭장에서 방금 꺼낸 달걀로 부친 부침개를 먹고 나면 졸음이 몰려왔다. 나무로 만든 토방에 누워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었다. 어미 제비들도 오늘 하루는 전깃줄에 앉아 쉬려나 보다. 새끼들은 배가 고픈지 연신 지저귄다. 눈을 감으면 깊은 잠에 빠져든다. 어느새 어둠이 찾아오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나도 다음 날이 시험이었던 것 같은데.
비가 많이 내리면, 우리 동네 앞 논들은 커다란 호수가 됐다. 냇가에 물이 흘러넘치고 배수가 잘되지 않는 탓이다. 동네 아저씨들은 논을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그 불행은 내 행복이기도 했다. 내가 용돈벌이를 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헛간에서 족대부터 찾았다. 집 앞에는 도랑이 있는데, 비가 오면 미꾸라지가 버글거리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얼마나 많았던지, 어른들은 비가 오면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했다. 나는 그물을 들고 도랑 곳곳의 풀밭을 뒤졌다. 한 번 뜨면 수십 마리가 올라왔다. 가끔은 손마디보다도 굵은 게 올라왔다. 서너 시간 고생하면 한 소쿠리 가득 찼다. 잡은 미꾸라지는 읍내 수집상에 팔았다. 오천 원에서 이만 원쯤 받았다. 내 힘으로 남의 돈을 버는 순간이었다. 부모님도 그 돈의 용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 돈을 받으면 바로 오락실에 갔다. 한 판에 50원짜리 <보글보글>도 하고, <더블드래건>이라는 게임을 했다. 몇 번은 무서운 형들을 만나 10원에 열 대라는 말을 직접 듣기도 했다. 많이 버는 날은 짜장면이나 떡볶이도 사 먹었다. 장마가 시작되어야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우리 시골에서는 '옹골지다.'라는 말을 많이 썼다. 참 예쁘고 정감 있는 말이다. 어머니는 내가 미꾸라지를 많이 잡으면 "참 옹골지겠다."라고 하셨다. 요즘 미꾸라지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 말도 듣기가 힘들어지는 것 아쉽기만 하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면, 예전의 풍경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래서 그 감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방학 때면 옆집 할아버지 집에 놀러 왔던 서울말을 쓰던 피부가 하얗던 소녀,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던 소년까지 모든 게 내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폭우가 내리면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시원한 소나기를 기다린다.
딸의 전화기는 토요일인 오늘도 아침 여섯 시에 울렸다. 시험이 끝났으니, 오늘 하루만큼은 재미있게 놀아야겠단다. 뭐 계속 잘 놀기만 한 것 같은데 말이다. 딸은 친구들과 물놀이장에 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지만, 울고불고 투정을 부려 끝내 허락을 받았다. 어제는 친구들과 고기도 구워 먹고, 라면도 끓여 먹겠다며 장을 봤다. 아침부터 후덥지근하고 하늘이 잔뜩 흐리다. 오늘 같은 날, 시원하게 비가 내리면 좋겠다. 그러면 물놀이도 더 재밌을 텐데. 딸에게 장마는 어떤 느낌일까! 그냥 꿉꿉하고, 불쾌지수 높은 날로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나와 딸은 기말고사 기간 공부를 안 했던 건 비슷하지만, 장마를 대하는 마음은 세월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