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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익 May 06. 2024

1982년 어린이날.

1982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프로야구가 생긴 해라 기억을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린 시절 나는 엄마와의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는 늘 바빴고 나에게 쌀쌀맞은 분이었다.

반대로 남동생에게는 세상 다정한..;;

혹시 엄마가 새엄마가 아닐까라고 늘 생각했지만

불행히도? ㅋ

그건 아니었다;;


아빠와 자주 간 곳에는 앞에 말했던

극장, 사직공원 창경원, 과학관 같은 곳이 있었고

프로야구가 생겨서

우리를 ob 어린이 회원도 시켜주시고

잠실구장도 데리고 가셨다.

대망의 원년 코리안 시리즈 결승전 직관 어린이^^

베어스 우승확정 후  

아직까지도 그런 아수라장은 못 본듯하다 ㅎㅎ


어떤 날은  지하철1호을 타고 동인천까지 가서

배를 타고 작은 섬에도 갔었다.

 거기서 국궁도 구경하고

난생처음 본  바닷가에서

남동생 하고 조개껍데기도 한 봉지나 모으고

정말 재미있었다.

밤늦게 돌아오는 만원 지옥철에 시달리며

녹초가 된 우리는 꾸벅거리다 부랴부랴  내리느라

지하철에 낮에 모은 조개껍데기 봉지를 놓고 내렸다.  동생과 둘이 대성통곡한 ㅠㅠ


어른이 돼서야 난 비로소   아빠의 고마움을 깨달았다..

당신도 피곤하셨을 텐데 (아빠는 무쇠인 줄 알았던 ㅋ)

일요일 하루도 쉬지 못하시고

우리 남매를 위해서 정말 신경을 써주셨다는 걸 ㅠㅠ


창경원은 하도 자주 가서  

놀이기구는 거의 타지 않았고

귀신의 집은 종종 들어갔다.

거울로 된 비좁은 동굴 같은 곳인데

소복을 입고 가발을 쓴 귀신이 히히히히

우우우. 소리를 내는 게

거울에 반사되면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되게 유치한 건데.. 그때는 그게 제법 무서웠던 ㅎㅎ

그리고 나면 주로 식물원이나

커다란 조류를 넣어두는 새장,

동물의 우리를 코스처럼 돌아다녔다.


그때는 아빠하고 다니는 애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빠와 나와 내 동생은 꽤 눈에 띄었던 것 같다.

5월 어린이날이었다.

그날도 창경원에 와서  인파 속을 돌아다니다

점심으로 빵을 먹으려고 벤치에 앉았다.

아빠는 피곤하신지  이내 코를 고시며 주무셨고

나는 동생이랑 빵을 먹고 있는데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던  어떤 남자애랑  

눈이 마주쳤다.

굉장히 극성맞게 생긴 애였는데;;

그냥 가던 길 가면 되지,

그 애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더니

큰 소리로 밉살맞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쟤 엄마 없나 봐!!


그 순간 다른 사람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히 공부도 못하는 멍청한 자식일 거야.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난 아무 말도 못 했다.

엄마하고 다니는 다른 애들이 사실 부러웠으니까.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는

내게 늘 어떤 상처처럼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알지도 못하는 남자애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요즘 말로 마상을 입었던 것 같다.ㅠ

그 일로 나는  남자애들이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는 바보라는

강한 확신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한 곳은 오랑우탄 우리였다.

창경원에 한 마리밖에 없던 오랑우탄은

덩치도 크고 눈도 크고

사람들을 잘 따르고 아주 순했다.

암컷인 것 같았는데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도 하고

입술을 뾰족하게 만들어 보이면서

꼭 뽀뽀하는 것처럼 표정도 지어 보였다.

나는 그 오랑우탄을 참 좋아했다.

모습도 사람 같고

표정이나 행동이 착하게 느껴져서

동물이 아니라 친구 같았다...

사람들은 창살밖으로 내민

오랑우탄의 검게 갈라지고 돌바닥 같아 보이는 손에

먹다 남은 사과 속이나 참외 껍질 같은 것을

쥐어주었다.


 그날도 오랑우탄은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점심으로 먹으려던

스위스 샌드위치라는 빵의 반을 잘라 ㅎㅎ

오랑우탄의 손바닥에 얼른 놓았다.

오랑우탄은 나를 보고 씩 웃더니 (

내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빵을 입으로 가져가 먹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죽점퍼를 입은

건달? 같이 생긴 아저씨가 오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다짜고짜 오랑우탄의 입에 끼워주는 거였다.

오랑우탄은 영문도 모르고 담배를 물었다.  

오랑우탄은  뜨거운 꽁초를 씹었는지

이리저리 뛰며 소리를 질렀다.

그 아저씨는 신난 듯이 낄낄댔고

그 옆에 서 있던 아저씨들도 낄낄댔다.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냥 구경만 했다.

그 아저씨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만화에서 본 악당처럼 보였다.

오랑우탄이 입을 덴 것 같다는 생각에  


아빠! 저 아저씨가!!!

나는 말을 못할 정도로 흐느끼면서  

아빠를 잡아끌었다.

아빠는 급히 내 손을 끌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40년이나 지났지만

오랑우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볼 때면

 1980년대 어느 날,

창경원 우리 앞으로 내밀어진

오랑우탄의 크고 투박한 손가락 사이에

침묻은 담배꽁초를 끼우면서 낄낄대던

 그 아저씨가 떠오른다.

 그 아저씨는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이 나라에선

동물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던

인간 자체가 드물었던 게 맞다.

아니 동물은 고사하고

어린이에 대한 배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말만 어린이날이지...

밖에 나가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그저 귀찮은 존재,

여차하면 쥐어박아야 하는 애물단지로 취급했다.

 그날 밤 낮에 있었던 일을 그림일기로 그렸다.


아저씨. 오랑우탄한테 왜 그렇게 나쁜 짓을 해요?


라고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과

아파하던 오랑우탄의 모습,  

그 아저씨에게 뭐라고 하는 대신

나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던 아빠에 대한

희미한 원망,

나를 보고 엄마 없는 애라고 소리치던

그 밉살맞은 남자애를 향한 복수심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오랑우탄의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꽁초와 낄낄대는 중년 사내.

단 한 번도 엄마와 보내지 못했던 주말들..

피곤에 지쳐 야외벤치에서 코를 고는 아빠..

1982년의 어린이날...

창경원 동물 우리 앞에서 어린이였던

내가 느낀 감정이 정확히 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울함이라든가 괴로움이라든가

그런 말의 의미조차  모르는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그 어린이가 느꼈던 감정은

그 시절의 암울하고 무지한 사회 분위기와

꼭 닮아있었다는 걸....

수십 년이 지나서야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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