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예술가의 여정은 언제나 특별하다

브뤼노 몽생종,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

by 김정은

반 클라이번에서 우승을 차지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수 백번 듣다가 이어폰만 끼면 귀가 아프고 두통이 와서 3주만에 마약같은 음악을 당분간 끊게 되었다. 그의 음악을 듣는 기간 내내 사랑에 빠진 것처럼 몽롱한 것이 그야말로 뽕 맞은 기분이었다.


캐나다는 마리화나 피우는 것이 합법이라 밤에 창문을 열면 어딘가에서 날아온 매캐하고 쿰쿰한 마리화나의 잔향이 집안으로 흘러 들어 올 때가 있다(캐나다 친구에게 밤마다 담배냄새 비슷한 연기가 바람에 실려와 곤욕이다라고 말하니 그 향이 바로 마리화나라고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연기 냄새가 심히 불콰하였는데 지금은 너그러이 이해하게 된다. 마리화나보다 백 배는 더 강력한 마약, 임윤찬을 나는 얻었단 말이다! 하하하하


임윤찬이라는 보물을 발견하기 전까지 20여년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러시아 출신의 거장, 스비야토슬라브 리흐테르였다. 임윤찬의 연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호로비츠가 떠올려진다고 하는데 나는 호로비츠보다는 리히테르가 더 연상된다. 모든 것이 완벽한 리흐테르에게 신께서 꿀 한 방울을 첨가한 인물이 꼭 임윤찬 같달까.


리흐테르 연주를 처음 들은 날, 나는 내 취향에 딱 맞는 피아니스트를 찾아 헤매던 오랜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고 쓰고 음반 수집을 멈출 수 있었다). '리흐테르의 연주는 이렇다'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만큼의 클래식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나의 인상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브런치의 김운용 작가님께서 이런 표현을 남기신 적이 있다. 살아오면서 이제껏 보아온 중 이렇게 멋진 표현은 처음이라 늘 심중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이렇게 핑계를 대고 소환할 수 있어 너무 신난다)


교조적이지 않으면서도 원칙있는,
자유로우면서도 진지한,
다양하면서도 순수한


내가 느끼는 리흐테르의 연주를 이보다 더 정확히 설명할 단어들을 찾지 못하겠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음악을 향한 연주가의 진실함이 느껴진다. 과도하게 감정에 몰입하지는 않으면서도 서정적이다. 열 손가락을 전부 사용하고, 모든 음표를 최대한 드러낸다. 웅장하지만 시끄럽지 않다. 격정적이지만 절도가 있다. 원칙이 느껴지는데 강요하지 않으며, 엄숙하고 진지한데 천진난만함이 느껴지며, 다양한 음악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그의 연주와 레파토리에서 느껴진다. 리흐테르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영롱하고 맑은 야마하 피아노 음색보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서정적인 스타인웨이를 선호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하지만 리흐테르 본인은 궁극의 피아니시모를 가능케한다고 야마하 피아노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 멋진 이미지는 네이버 블로그 명랑낙타의 따듯한 클래식 36.5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m.blog.naver.com


리흐테르는 알면 알수록 드라마틱하고 재미난 인물이다. 드라마 <밀회>의 남자 주인공인 선재의 롤 모델이 리흐테르라는 것은 <밀회>에서 그에 관한 책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 중에서 선재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달걀판으로 방음장치를 하고 자신이 감명받은 피아노 연주를 보면서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로 홀로 연습하며 자랐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알고 발굴하고 이끌어 준 스승 혜원을 만나면서 전문 피아니스트로서 길을 걸어가게 된다.




리흐테르는 1915년 독일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인 지토미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원 교수였지만 제멋대로 하길 좋아하고 고집 센 리흐테르에게 피아노 가르치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리흐테르는 약간의 피아노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어릴 때 학교를 뛰쳐 나간 후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한 인물이다. 오페라 극장이나 성악가들의 반주자로 활동하며 이곳 저곳을 떠돌던 그는 22세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 위대한 스승, 네이가우스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된다.


나는 오데사에서 온 한 젊은 음악가의 연주를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젊은이는 음악원에 입학하여 나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한다고 했다.
"예비학교를 마친 젊은이인가?" "아닙니다. 어디에서도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대답에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중략)...그는 피아노 앞에 앉더니, 길고 유연하면서도 힘차 보이는 손을 건반에 올려 놓고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는 조심스럽고 담백하고 엄격했다...나는 옆에 앉아 있던 학생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내가 보기에 저 친구는 천재 음악가야"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 p80.)


리흐테르는 그의 스승을 가리켜 제2의 아버지라고 고백한다. 스승과 그의 아내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들의 집을 찾는 제자들을 기꺼이 반겼고, 좁은 집에서 잘 곳이 없어 리흐테르는 스승의 피아노 아래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네이가우스는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피아노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 가끔은 연주회를 엉망으로 하기도 했으나 자신의 연주회 2부에 제자들을 세워 청중에게 음악을 선 보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네이가우스는 리흐테르가 똑바로 앉아 피아노를 치도록 자세를 교정하고 리흐테르 자신이 원하는 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가르쳤다.


임윤찬의 우승으로 이제는 전국민이 다 알게 된 미국의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 역시 리흐테르와 인연이 있다. 구 소련(현재의 러시아)이 자국의 예술적 우수성을 드높이기 위해 주최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리흐테르가 심사를 맡게 되었는데 당시 심사위원들과 정부 당국에서는 소련 출신이 우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하고 있었다. 본래 정치에 관심도 없고 권력이란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던 리흐테르는 미국 출신 반 클라이번의 연주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그를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은 배제하기도 했다. 이 일로 그는 동료들에게 '개인주의'라고 비난 받았다.


내가 싫어하는 게 두 가지 있다. 분석과 권력이 바로 그것이다. (p.131)


Sviatoslav Richter's hands, photographed in 1961. Erich Auerbach/Getty Images


리흐테르의 회고담을 읽으면 그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재밌지만 특히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같은 당대의 유명 러시아 작곡가들과 '에밀 길레스', '다닐 샤프란', '로스트로포비치' 등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연주가들 뿐만 아니라 동시대 함께 활동했던 수 많은 예술가들의 뒷 이야기가 담겨 있어 흥미진진하다. 리히테르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고 프로코피예프는 라흐마니노프를 싫어했다고 한다. 특히 프로코피예프는 학생들에게 난폭한 사람이었지만 천재적인 작곡가임은 분명했던 것 같다. 리히테르가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프로코피예프에 관해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리흐테르의 평은 전반적으로 박한 편이다. 속에 없는 말을 하거나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모르는 그는 고지식하리만치 솔직하지만, 그의 솔직함은 사람에 대한 평가 뿐 아니라 예술가로써 삶 전반에서 드러난다. 그가 살던 당시 소련에서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염세적'이라고 여기며 그의 곡을 연주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연주회에서 슈베르트 음악을 소련에 처음으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를 보고 음악가들이 '미쳤다'고 평가했다. 1948년에는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 음악이 소련 당국에 의해 금지되고 탄압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히 자신의 연주회에서 이들의 곡을 레퍼토리에 넣었다.


약간 괴팍하고 음악에 있어 솔직한 그이지만 예술가라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 젠체하는 모습은 그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 1952년에는 열차역 구내식당에서 만취한 손님이 카운터의 여자에게 싸움을 걸어 이를 말리다가 그만 오른쪽 손가락이 골절되고 말았다.


손가락에 격렬한 통증을 느꼈다...X선 검사를 받은 결과, 골절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 참에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p.130)


만일 내가 피아니스트인데 불의를 못참고 남을 도와주다가 소중한 오른손에 골절이 왔다면 아마도 불의를 못참은 내 성미에 화를 내고 참견했던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게다가 의기소침해져서 한동안 피아노에 손도 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리흐테르는 그 순간 과거에 연연하여 후회하기 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택했다. 뼛 속까지 피아니스트는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문득, 임윤찬이 콩쿠르 수상식을 앞두고 콩쿠르가 끝났으니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은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연습할 생각에 (기뻐)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리히테르도 가끔은 피아노 연습이 싫증나는 때가 있다고 한 대목에서는 약간의 위로도 얻는다. 그럴때면 그는 피아노를 쉬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신의 그림과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함께 전시하기도 했고, 소련 당국에서 금지된 화가의 작품을 몰래 전시하기도 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허점을 드러낸 때도 있다. 어떤 작곡가의 아내가 질투에 눈이 멀어 그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버렸고 화가 난 작곡가가 그의 아내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 놀랍게도 그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리히테르는 어떻게 화가 났다고 작품을 다 불태울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작품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주하는 리히테르(출처: Sony Music Archive)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따로 있다.


나는 1944년 1월5일에 레닌그라드에서 처음으로 연주를 했다... 이튿날, 필하모니 홀에 가 보니, 창유리들은 산산조각이 나 있고 홀의 창문들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러시아 미술관에 포탄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연주회는 열렸다. 청중은 외투를 입은 채로 연주를 들었다. 그들은 대단히 감동한 듯 했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이 추위를 잊어버린 멋진 콘서트였다.(p.117)


전시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예술을 향한 러시아인들의 놀라운 열정 말이다. 그들의 피에는 진한 보드카 뿐 아니라 예술가적인 기질도 함께 혈관에 흐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귀로에서도 이토록 예술을 사랑했던 뜨거운 나라가 지금은 한때 형제였던 나라를 침범해 살인과 강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이하고 씁쓸하다.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수여한 피아니스트들의 국적은 공교롭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이다. 러시아 출신의 연주가들이 참가하는 것을 금지했던 다른 국제 콩쿠르와 달리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예술이 이념과 대립을 넘어서야 한다는 창립 취지에 맞게 러시아에게도 문을 열어 준 것이다. 수상을 축하하며 서로 안아주는 모습에서 예술이 갖는 힘이 무엇인지 목도한 듯 하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인 모든 함의를 예술이 다 포용하고 갈 수는 없다. 예술가들에게 이런 임무를 맡겨서도 안된다고 본다. 그렇기에 순수하게 음악만을 보여 준 임윤찬이 결국 우승한 것은 아니었을까.


리흐테르는 음악에 있어 순수하고 진실된 인물이었다. 자신의 삶 또한 자신의 연주와 일치되게 살았다.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러시아 작은 마을을 여행하며 소박한 사람들 앞에서 여는 연주회를 더 좋아했고, 청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작곡가와 자기 자신을 위해 연주했다는 리히테르의 고백은 예술을 추구하는 진지하고 엄중한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임윤찬을 비롯하여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세상과 소통하려는 진실된 연주자들 덕분에 예술의 가치가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의 저자인 브뤼노 몽생종은 그 자신이 유명한 연주자이면서 음악영화 감독이기도 하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글렌 굴드, 예후디 메뉴인 등 유명한 연주가들의 영화를 제작한 바 있는 그는 리흐테르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리흐테르가 세상을 뜨기 약 2년간 그와 교류하였다. 우울증과 노쇄해진 기력 탓에 예민하고 괴팍한 리흐테르였지만 그의 겉모습 속에 숨겨진 음악가로서의 자화상을 잘 그려낸 것 같다. 리흐테르에 대한 영화 또한 제작했다고 하는데 당췌 어디에서 이 영화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회고담 뒤에는 1970년부터 1995년까지 리흐테르가 직접 감상평을 적은 음악노트가 수록되어 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로는 최고의 연주자로 회자되는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쇼팽 음반에 대해 '영웅적이고 정확하고 기교가 뛰어나지만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고 최신 유행을 따르고 있다. 금속으로 주조된 쇼팽, 자신만만하지만 싸늘한 연주'라고 혹평을 하고 있어서 한참 웃었다. 감히 누가 폴리니를 이렇게 평하겠는가.


참고로 나는 쇼팽의 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폴리니가 연주하는 쇼팽의 곡은 무척 좋아한다.^^






글 쓸 때 들으면 저절로 글이 써지는 신비한 리히테르의 헨델 https://www.youtube.com/watch?v=HNJPDUHKTlc


그리그의 서정 모음곡, 힘을 빼고 담백하면서도 서정적으로 해석한 마스터피스 https://www.youtube.com/watch?v=u9vhrt0MAFE

keyword
이전 12화제 스스로 사랑의 재료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