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아마도 물기 가득한 빨강색일꺼야

마거릿 마찬티니 소설 <그대로 있어줘>

by 김정은
질문!
여러가지로 나와 잘 맞는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했다. 커리어에서도 승승장구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운명을 만나게 된다. 그(그녀) 사람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내 배우자는 어떻한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질문을 쓰고 보니 쿨의 노래 <운명>이 묘하게 겹치는 기분이다. (쿨의 노래를 아는 당신은 최소 40대 ㅎㅎㅎ)


위의 질문에 대해 어떤 이는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라며 머리를 흔들테고, 어떤 이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 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운명의 짝을 선택하는 것은 배우자에게 이기적인 처사라고 비난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운명의 짝이란 것은 애시당초 없으며(시간이 흐르면 운명의 짝도 결국 운명이 아닌 것이 되므로) 불륜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기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 놓아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일부일처체를 지지하는 현대의 결혼은 생물학적 욕구를 억압하는 사회적 제도일 뿐이고 한 사람만을 평생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은 종족 번식 본능에 반하는 처사라는데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다. 조금 더 양보하여, 결혼 당시에는 이 배우자가 나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했다가도 더 나은 기차가 다가오는 이상 환승하지 않을 수 없는, 효율적이고도 내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피할 수 없다고 나를 설득하는 그를 혹은 그녀를 이해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선택한 이는 후회를, 선택 받지 못한 이는 상처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한명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그 선택을 한 나는 (언젠가는) 후회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자체에 처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답이라면 정답일 테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의지대로, 의도대로 되던가...




위의 질문에 단순한 상상 그 이상으로 나아간 작가가 있다. 이탈리아의 검은 성모라고 불리우는 작가, 마거릿 마찬티니는 자신의 소설 <그대로 있어줘>에서 주인공 티모테오에게 위와 비슷한 질문을 건넨다.



우아하고 매력적인 부인을 둔 성공한 외과의사 티모테오는 실은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어디서든 아름다움으로 반짝거리는 부인이 있고, 성공한 외과 과장이지만 그는 스스로 영혼이 없다고 느낀다. 성공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해왔고 예정된 코스와 안정된 궤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그의 고백 뒤에는 욕망을 꾹꾹 눌러담고 가면을 쓰고 살아온 초라한 남자가 있을 뿐이다.


겨우 마흔 살에 나는 이미 의사라는 내 직업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구나....그때 겨우 마흔 살이었던 나는 성내는 일을 그만둔 지 오래였어. 그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가 아니라, 단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 초라한 술집 안에 앉아 있던 그때 나는 후줄근한 여름 양복 주머니에 영혼을 넣어두고 있었단다(p.39.)


아내가 머무는 해안가의 별장으로 향하던 중 티모테오의 자동차가 고장 난다. 차 수리를 위해 외지고 허름한 동네로 들어간 그는 '아름답지도, 그다지 젊지도 않은 여자'를 만나고, 전화를 위해 그녀의 집으로 따라가면서도 '저 여자는 미쳤어. 나는 지금 정신병자를 따라가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볼품없고 천박하다고 여기는 그녀에게서 강렬한 성욕을 느낀 티모테오는 그만 그녀를 범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온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름답고 매끈한 아내의 다리를 보면서도 마르고 엉성했던 그녀, 이탈리아의 다리가 떠올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영화 <빨간구두(원작: 그대로 있어줘)>의 여주인공, 이탈리아


티모테오의 불륜은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러한 그의 욕망은 아내에게서 채워지지 못한 애정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티모테오는 흠 잡을데 없는 아내와 자신의 마음 속 깊이 감춰온 대화를 나누고 싶고, 그녀에게서 자신의 부족함을 위로받고 싶어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글쓰기를 핑계로 티모테오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해변 별장에서 지내는 중이다. 티모테오는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만 아내 엘사는 자신이 없다며 거절한다. 티모테오의 방황은 그러니까 아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는 어디까지나 티모테오의 시각에서 설명될 뿐이다.


이탈리아는 티모테오에게 있어서 일탈 그 자체이다. 우아하고 완벽한 세계의 피상적인 행복에 질린 티모테오는 가난한 동네의 허름하고 냄새나는 그녀의 집에서 전에 모를 평온함을 느낀다. 외모는 추하지만 마음 만은 한없이 너그러운 이탈리아는 자신을 찾아온 티모테오를 받아주고 그와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소설은 티모테오의 1인칭 시점으로 그가 느끼는 복합적인 심리들을 심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한 주인공은 바로 '이탈리아'였다. 이 이야기는 마찬티니가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여성의 가련한 분위기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3자가 보기에도 추하고 천박한 외모를 가진 이탈리아는 숭고하리 만치 고운 마음을 가졌다. 비록 자신을 범했으나 티모테오의 행위에서 지독하게 외로운 존재의 몸부림을 읽었고, 자신을 다시 찾아온 그를 용서하고 몸과 마음 모두 그에게 열어 준다.


반면에 티모테오는 비겁한 남자다. 이탈리아와 함께 하고 싶다면서 아내와 헤어지지 못하고, 막상 아내와 있으면 이탈리아를 생각하지만 아내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티모테오는 가정을 지키고자 이탈리아에게 더이상 만나지 않겠노라 말했다가도 아내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도망갈 빌미를 제공하면 곧장 이탈리아에게 찾아가 욕정을 해소한다. 티모테오는 이탈리아를 사랑한다며 자신의 이기적인 행위에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지만 티모테오에게 있어 이탈리아는 욕망을 배설하고 충족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티모테오의 갈팡질팡한 모습과 달리 이탈리아는 티모테오의 모든 것을 그저 묵묵히 감당할 뿐이다.


- 도저히 아내를 배신할 수가 없어. 난 그런 남자가 못돼
- 걱정하지 말아요
희미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토록 온화한 모습 뒤로는 또다른 절망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이탈리아의 턱을 젖히면서 나는 그녀를 굴복시키고 싶어졌다.(p.117)


이탈리아에게 이끌리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의 영혼이라는 것을 티모테오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렬하게 깨닫게 된다.


나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만약 누군가 그녀에게 총을 겨눈다면 어떻게 하지? 만약 그녀가 가슴에 총을 맞고 지금 기대 서 있는 저 담에 핏자국을 남기며 쓰러진다면?(p.171)



그러나 그런 티모테오의 모습은 운명이 준 선물이 아닌 기만에 대한 단죄가 되어간다. 티모테오에게 여자가 있음을 아내 엘사는 직감하지만 그녀는 티모테오를 가장 교활한 방식으로 옥죄고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사냥감이었다. 그것은 책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에로틱한 연극이었다. 엘사는 열정을 불살랐고 나는...경주에 내몰린 말로 전락한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중략)...엘사는 행복해 보였고 마법에 성공한 마녀처럼 사악해 보였다. 그녀를 알게 된 후 처음으로,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p.150)


이 후 티모테오와 이탈리아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독한 비극이 찾아온다.

두 사람의 사랑은 지독하고 강렬하다. 하지만 끝은 결국 어떻게 될까...


소설은 티모테오의 딸 안젤라가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안젤라가 수술을 하는 동안 병원 최고의 외과 전문가인 티모테오지만 도저히 딸의 수술을 집도할 수 없어 병원의 창 밖만을 내려다 볼 뿐이다. 바깥은 온통 비가 내리고, 비 내리는 병원의 광장에서 빨간 구두를 신은 이탈리아가 보인다.


쏟아지는 빗 속에서 티모테오가 사준 빨간 구두를 신은 이탈리아는 실은 티모테오의 상상이다.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자신의 이기심과 비겁함으로 떠나 보낸 후 남은 그의 후회는 물기 가득한 빨간 구두로 영원히 박제된 것이다.


소설 속에서 티모테오의 방황과 뒤늦은 선택 등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여성 작가가 어떻게 남성의 심리를 이다지도 꿰뚫고 있을까 싶을 만큼 티모테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기도 하다. 하지만, 여성 작가이기 때문일까, 티모테오의 방황을 작가는 이해하지만 비록 뒤늦은 사랑일지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두 여성 모두를 기만한 티모테오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을 준다. 모두를 잃고 싶지 않아 마지막까지 선택을 미뤄두었던 티모테오가 막상 진정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가를 깨닫고 선택하기로 결단한 순간 그 선택의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이럴때 작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까?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일까? 잘못된 선택에 대해 단죄하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란 본래 신을 모방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창조자가 아니던가.

이 소설은 2004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작가의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세르조 카스텔리토가 감독과 티모테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를 연기한 페넬로페 크루즈의 연기는 정말이지 처연할 만큼 아름다웠다. 강렬하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영화도 원작의 강렬함을 잘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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