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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Sep 21. 2020

끈적한 라오스의 맛

라오스의 음식들


음식을 보면 나라가 보인다


음식은 그 나라의 정서를 담고 있다. 식재료는 그 나라의 지리적 요건을 말해주고, 음식의 간은 날씨를 말해주고, 플레이팅으로는 그 나라 사람들의 성격이나 취향을 알 수 있다.  


‘한국적인’ 음식들 또한 대체적으로 우리를 참 많이 닮았다. 한 상에 여러 개의 반찬을 놓고 먹는 것도 그렇고, (일반화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얼큰한 음식들을 좋아하는데, 이는 열정적이고 근성 있는 한국인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라오스의 음식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엄청난 미식의 나라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다양한 음식이 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가운데 위치해 중국,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무려 5개국에 둘러싸여 있어 다양한 식문화가 들어와 있다. 그리고 식민 시절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프렌치 요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환경적인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나라를 찾는 이방인들을 배려한 그들의 마음인지 대부분의 음식들은 외국인이 먹기에 어렵지가 않다. 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서 향신료가 센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부담이 없다. 착한 라오스 사람들을 닮은 식문화다.


라오스에서 먹은 음식들 (중 일부)


소박하지만 단단한 맛, 까오삐약


‘라오스의 맛’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현지인들의 주식인 라오스식 쌀국수 까오삐약이다.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까오삐약은 닭 육수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맛이다.


커다란 솥에서 팔팔 끓인 육수를 무심하게 툭 부어서 나오는데, 국물 한 모금 들이키면 전날 밤 마신 비어라오가 바로 쑥 내려간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매운 소스를 조금 넣으면 매콤한 닭개장 맛이 된다. 까오삐약의 가장 큰 특징은 찰기 있는 면. 일반적인 쌀국수와는 달리 쫄면과 가락국수의 식감 그 가운데에서 전분기가 조금 더 들어간 거라고 보면 된다. 굉장히 매력 있다. 간은 전체적으로 조금 센 편이다.

짭조름한 국물과 끈적한 면. 지금은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지만 끊임없는 외침으로 격동의 시기를 보내온 라오스의 시간과 많이 닮아 있다. 소금기가 배어 있는 역사 속에서 끈끈하게 나라를 지켜온 결의. 까오삐약은 그렇게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맛을 지녔다.

크나큰 저력을 지닌 메콩을 끼고 이제는 기회의 땅으로 발돋움 중인 라오스. 더욱 화려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음식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 맘대로 선정한 까오삐약 TOP 3

동남아에 가면 묻따말 무조건 1일1쌀국수는 해야 한다. 100년 전통의 원조 곰탕집에서 밤새 끓여낸 국밥처럼 굉장히 묵직하고 깊은 국물에 저절로 ‘시원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가격은 2천 원에서 3천 원 사이로, 한국에 비하면 1/4 수준이다. 게다가 밀가루 면에 비해서 포만감이 오래가서 여행하기 전 속을 든든하게 채우기도 좋아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소울푸드.


1. 루앙프라방의 아침 시장 쌀국수

라오스에서 먹었던 까오삐약 중에 가장 간이 알맞았다. 자극적이지 않고 말랑말랑한 선지와 피쉬볼 등 다양한 토핑이 들어 있어 마치 몸보신을 하는 기분이다. 탁발을 보고 나서 아침 산책을 한 뒤에 먹으면 더욱 맛있을 것.

재료들을 툭툭 담아 빠르게 내준다. 그리고 생각보다 굉장히 위생적이다. 둘다 맛있지만 아침인 만큼 맑은 국물의 쌀국수를 추천. 진하면서 깔끔하다.


2. 비엔티안의 골목, 무작정 들어간 현지인 맛집

비엔티안의 가장 유명한 쌀국수 맛집은 방송에 나온 도가니국수 집이다. 맛이 궁금해 찾아가 보려고 했으나, 골목을 지나던 중 현지인이 북적이는 간판 없는 작은 식당에 매료되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까오삐약 단 하나. 점심시간을 맞아 직장인들이 모두 까오삐약을 먹고 있었다. 유난히 끈적한 면과, 깊다 못해 걸쭉한 닭국물이 일품. 정확한 위치는 기억 안 나지만, 탓 담 근처에 있다.

별다른 토핑은 없지만 커다란 닭고기 조각이 제법 들어 있다. 콜라를 주문했더니 커다란 얼음컵 두 개를 줬고 가져온 맥주도 먹게 해줬다. 가격 매우 저렴!


3. 방비엥 호텔 ‘빌라 남 송’의 조식

방비엥에서 먹었던 어떤 까오삐약보다 맛있었던 호텔 조식. 아메리칸 스타일 조식과 라오스식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닭 육수의 까오삐약과 닭죽은 한국인 입맛에 아주 잘 맞아서 신기했다. 웬만한 뷔페식 조식보다 나았다.

아침에 정신을 못 차리는 올빼미형 인간이라 음식 사진이 없는 점.. 남송강의 아침뷰도 음식 맛에 한몫한다.



그린 파파야 샐러드

태국의 김치라 불리는 ‘솜땀’. 원래는 태국 동북부 지역과 라오스, 캄보디아의 음식인데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태국의 입맛에 잘 맞아 태국에서 알려졌다고 한다. 라오스의 대부분의 식당에 솜땀이 있다. 그린 파파야의 식감은 무와 오이 사이 정도. 톡 쏘는 피시소스가 처음에는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질지 모르나, 먹다 보면 중독된다. 식당마다 맛의 차이가 커서 매끼마다 탐험하듯 시켜서 먹어 봤다.

쿰쿰하고 시큼한 피시소스와 그린 파파야의 조화. 맥주 안주로 좋다.



맛없없, 신닷

라오스식 고기구이인 ‘신닷’. 그야말로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봉긋하게 생긴 불판이 핵심인데, 위로는 고기를 굽고 가장자리에 육수를 부어 샤부샤부처럼 채소와 면을 익혀 먹는다. 돼지고기의 기름이 국물에 흘러내리며 더욱 깊은 맛을 낸다. 바비큐와 국물의 조화라니, 소주 생각이 났다. 우리는 방비엥의 야시장과 루앙프라방의 고급식당  군데서 신닷을 먹었는데, 방비엥의 야시장이 훨씬 맛있다. 놀랍게도 신닷 2인분에 맥주 4병이 만원도  했다. 야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흥이 나는  !

[루앙프라방] 대나무 다리를 건너가면 만날 수 있는 고급식당. 분위기 최고. 버팔로 고기를 먹어봤는데, 조금 질겼다.
[방비엥] 야시장의 신닷 노점. 맛도 맛이지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먹는 기분이 참 좋다.



안 먹고는 못 배길 길거리 음식들


길거리에서 파는 샌드위치와 과일주스는 꼭 먹어봐야 한다. 각국의 활발한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방비엥과 꼭 닮은 음식. 큰 사이즈 시켜서 여자 둘이 나눠 먹으면 된다. 토핑은 초이스 가능.


방비엥 여행 중 당이 필요할 땐, 달달한 로띠. 얇은 반죽 위의 바나나 그리고 초코의 조화라니. 로띠는 살 안 찌겠지. 살은 내가 찌겠지...

사진이 없어 동영상을 캡쳐한 점..


루앙프라방 야시장의 명물, 코코넛 풀빵. 수플레 케이크 같은 식감에 달콤한 코코넛 향이 배어 있음. 입에서 녹아 없어져~


한국에서 무지 비싸니까 열대과일은 많이 많이 먹어두자! 어느 시장이나 이렇게 종류별로 섞어 소분해서 판매한다. 가격 또한 매우 저렴.



뭐니 뭐니 해도 비어라오


나는 애주가다. 특히 맥주를 정말 좋아해서 맥주가 맛없는 도시로 여행을 가면 화가 난다. 그런 의미에서 라오스는 나에게 맞는 여행지였다. 저렴하고 맛있는 ‘비어라오’를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었기에! 다른 동남아 맥주들보다 끝 맛이 적고 깔끔하면서 청량해 마시기에 편하고 어떤 음식이나 잘 어울린다.


비어라오의 종류는 라거, 골드, 다크, 화이트 등으로 다양한데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건 비어라오 다크다. 6.5%로 흑맥주 치고는 도수가 높은 편이지만 매우 부드럽다. 비어라오의 가격은 마트 기준 라거 7,000킵. 식당 기준 10,000킵. 1000~1400원 수준이다.


과음은 건강을 해치지만 여행지에서의 맥주 한 잔쯤은 무조건 사랑이며 행복이다. 라오스에서 먹은 수많은 음식들 중, 아무래도 난 비어라오가 최고야!


특히 낮에 마시면 더욱 기분이 조크든요



※ 이 여행기는 2019년 11월, 누구나 마음껏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가깝지만 먼 과거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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