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가 어려운 아이들 5(자퇴를 선택한 아이들)
담임교사를 통해 학업 중단 숙려 상담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미 자퇴원을 제출했다고 하더군요. ‘자퇴원을 제출하기 전에 미리 만났다면...’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담을 준비했습니다. 학업 중단 숙려 상담은 2주 동안 총 4회 진행됩니다. 학생이 학업 중단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함께 들여다보고, 만약 학교를 떠난다면 이후의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함께 나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계획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입니다.
연서는 유학을 가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유학을 떠났고, 온라인으로 서로 교육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의 교육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와 이야기할수록 자신은 마치 ‘더러운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힘들다는 말을 부모님은 이해해 주지 않았습니다.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유학을 가냐”며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주셨습니다. 어떻게든 학교에 나와보려고 했지만 점점 학교라는 공간이,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혐오스럽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업 중단 숙려 상담은 다시 학교로 돌아오라는 설득을 당하는 시간일 거라고 오해합니다. 부모님들은 오히려 학업을 이어나가도록 도와달라고 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담은 설득의 시간이 아닙니다. 학업 중단 상담은 학업을 중단하려는 선택이 신중했는지 함께 검토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학업 중단 이후에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이 있습니다. 저는 연서의 이야기를 연서의 입장에서 깊이 있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연서의 확고한 신념을 지지해 줄 때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연서의 어머니는 처음엔 연서의 말을 부끄러워하셨습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며 연서가 학교 교육을 무시하는 말을 하자 저에게 “죄송하다”며 안절부절못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환학생을 원할 때 보내줄걸” 하는 후회도 하셨습니다.
연서의 어머니께 스터디코드 조남호 대표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는 고3 마지막 수능까지 인서울도 힘든 성적이었지만 “나는 서울대학교를 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단 한 사람, 어머니만은 그 말을 믿고 지지해 줬습니다. 결국 그는 수능 날 최고의 수능성적을 거두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학생들의 멘토가 되었죠. 저는 연서의 어머니께 연서의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연서의 미래의 모습을 믿고 지지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상담의 마지막 날, 연서의 부모님도 함께 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인 꿈드림을 안내드렸고, 가정 내에서 함께 지킬 생활 규칙과 계획표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상담실을 나가기 전 연서는 자신의 꿈을 지지해 준 나에게 감사의 포옹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원하는 길을 가다가, 생각과 다르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용기란다.
네가 다시 오고 싶을 때, 학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 거야.
연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사실 굳은 결심을 한 연서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이 있었을 겁니다. ‘다시 와도 된다고, 그러니 원하는 대로 걸어가 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작은 안전망이 되어주기를 바랐습니다.
최근에는 학업 중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출석하지 않아도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학업 중단 숙려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일부 학부모님들 사이에선 2주의 출석 인정 혜택이 소문처럼 퍼진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상담은 학업중단예방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학업 중단 위기 학생으로 판단되었을 때만 진행됩니다. 자녀가 등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꼭 위(Wee) 클래스 상담실에 먼저 상담을 신청해 주세요. 상담 교사가 필요한 경우, 숙려 상담을 신속하게 연계해 드릴 겁니다.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결코 가벼운 선택은 아닙니다. 그만큼 학생의 삶 전체를 함께 바라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연서가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길 응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때, 학교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
일러두기
이 글의 사례는 개인의 사례가 아니며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상황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일부 설정은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