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신호를 보내는 아이들 1(자해를 반복하는 아이들)
상담교사가 된 이후 매일 하는 기도는 “제가 만나는 아이들을 한 명도 잃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경향신문(2025.9.11.)의 김송이 기자는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관내 자살 학생 수가 전년 대비 111%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해를 한 학생 수는 113% 늘었다. 전국 시도교육청 집계를 보더라도 인구 10만명 당 자살한 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2020년 2.77명, 2021년 3.72명에서 2024년 4.31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학교에서 집계한 사례를 취합한 것으로, 학교 밖 청소년 사례까지 포함하면 청소년 자살률이 더욱 높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의 분기별 고의적 자해 사망자 수 집계를 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자살한 19세 이하 청소년은 총 180명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통계를 반영하듯 저는 매년 자해를 하고, 자살을 생각하며,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들을 만납니다.
저도 멈추고 싶어요: 자해를 반복하는 아이들
상희가 체육복 소매를 걷어 올려 보여준 왼쪽 팔은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커터칼로 촘촘하게 그어져 있었습니다. 오래된 상처는 갈색이나 검붉은 빛깔, 최근의 상처는 빨간 빛깔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자해를 반복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해 상처를 봤을 때 상담자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상담자가 놀라거나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면 학생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간혹 부모님이나 담임교사가 “아이가 자해를 한 것 같은데, 차마 물어보질 못하겠어요”라고 상담실로 연락을 하시기도 합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심리적 고통을 회피하거나, 또는 호소하기 위해 자해라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그러므로 자해에 대해 담담하게 질문을 하면 많은 아이들이 비교적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상희와 자해가 일어난 시점과 전·후의 상황, 그리고 그때 들었던 감정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상희는 처음엔 학원 숙제를 하다가 문제가 잘 안 풀리자 답답해서 충동적으로 커터칼로 손목을 한 번 그었다고 했습니다. 빨갛게 피가 맺히는 것을 보고 ‘큰일 났다’ 싶었지만,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문제가 잘 안 풀리면 조금씩 자해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긋는 횟수가 늘어났고 상처가 아물기 전에 다시 긋게 되면서 자해 범위도 점점 넓어졌습니다. 이제는 특별한 스트레스가 없어도 습관처럼 손목을 긋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해를 한 학생을 발견하면 비밀보장 예외 사유이므로 바로 부모님께 상황을 알립니다. 자해는 대부분 집에서 밤시간에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모님의 협력이 꼭 필요합니다. 처음 자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너무 놀란 마음에 “뭐 하는 거야? 당장 그만해!”라고 화를 내시기도 합니다. 이런 반응은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고, 이후 자해를 더 철저히 숨기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자해가 반복되어 습관화되면 치료의 기간이 길어집니다. 단순히 금지하는데 초점을 맞추시기보다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어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도 멈추고 싶어요. 하지만 다른 방법을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울던 준기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준기는 자신이 어떻게 자해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손에 커터칼을 들고 있고,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부모님께 들키지 않으려고 상처를 몰래 소독하고 밴드를 붙인 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져서 잠을 들곤 했다고 했습니다.
자해는 일시적으로 심리적인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어, 한번 안정감을 경험하면 반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반복하면 할수록 그 횟수나 강도가 강해지는 특성이 있어 자해를 하다가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해가 반복되기 전에 발견하여 개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생이 반복적으로 자해를 하는 경우에는 교내 위기관리위원회를 엽니다. 위기관리위원회에서는 관련 선생님들과 학생의 위기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고 돕기 위한 방안을 논의합니다. 상희는 점심시간에 칼을 들고 화장실로 숨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담임교사는 점심시간에 상희가 보이지 않으면 곧장 화장실에 가서 상희를 데리고 나오곤 했습니다. 이런 대응 방안은 위기관리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됩니다. 상황에 따라 해당 학생의 부모님과 함께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어 논의하기도 합니다.
제가 자해 상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자해를 하게 된 상황, 자해의 빈도, 자해 전·후 감정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처음 자해를 했을 때 통증이 크고 안정감을 못 느낀 친구들은 한두 번만에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자해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경험한 아이는 힘들 때마다 반복적으로 자해를 하게 됩니다. 때로는 처음부터 과격하게 몸의 여러 부위를 자해하고, 자해를 하게 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해가 반복적이거나 정신과적인 증상의 신호라고 여겨지면 바로 병원에 가시도록 안내합니다. 반면, 자해가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인 어려움에 의한 것이고, 상처가 경미하며 초기에 발견했다면 상담을 우선 권유합니다.
저는 학교 상담실에서 학생들과 안정 키트를 함께 만듭니다. 자해 충동이 일어나는 시간대는 대부분 학생이 혼자 있는 밤입니다. 안정 키트는 자해 충동이 있을 때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도록 돕습니다. 상담을 하며 자신에게 적합한 키트를 구성하면서 학생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과 방법에 대해서 알아갑니다. 학생마다 키트의 구성 물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안정 키트는 위안을 주는 음악 리스트, 허브차 티백, 말랑말랑한 스트레스 볼, 아로마 핸드크림, 온열 안대, 감정 노트와 볼펜, 초콜릿 등으로 구성됩니다. 학생과 안정 키트를 꾸민 후 집에 보관하도록 합니다. 그러다 자해 충동이 있을 때 바로 꺼내서 사용하도록 안내합니다.
가끔은 자녀의 자해를 관심을 끌려는 행동으로 치부하여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십니다. “애니메이션 보고 따라서 한 거래요”, “호기심에 한 번 해본 거래요”라고 하시며 상담교사의 연락을 선생님이 오버하시는 거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설령 관심을 끌기 위해 자해를 했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왜 관심을 받고 싶었는지, 얼마나 관심을 받고 싶었으면 그런 방법을 택한 건지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눈을 맞추고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해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해는 꼭 전문가와 상의하시라는 말씀 또한 전하고 싶습니다.
일러두기
이 글의 사례는 개인의 사례가 아니며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상황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일부 설정은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