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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힘들어요

정서행동 특성 검사 관심군 아이들

by 친절한 상담쌤

매년 중·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정서 행동 특성 검사(AMPQ-Ⅲ-Ⅰ)를 실시합니다. 이 검사는 학생의 정서·행동 문제에 대한 선별용 체크리스트여서 검사의 정확도가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검사를 검사-재검사-심층검사로 세 번에 걸쳐서 진행합니다. 마지막 심층검사 시에는 제가 상담을 해서 학생의 어려움을 파악합니다. 단순히 장난으로, 혹은 대충 기입한 결과로는 관심군으로 확정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단계까지 오게 된 학생은, 분명 도움이 필요한 아이입니다. 대부분 부모님은 자녀가 관심군이 되었다는 연락에 자녀의 어려움에 관심을 보이시고, 함께 도와줄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러나 간혹 “검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라고 반응하시기도 합니다.


김현아는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에서 딸이 고1 때 정서 행동 특성 검사 관심군이라서 담임 교사과 상담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담임선생님이 우울증 검사 결과 때문에 나를 보자고 한 일이 있었다. 우울척도와 자살척도가 너무 높게 나왔다는 이유였다. 나는 경악했다. "우리 안나는 그럴 리 없어요. 친구도 많고 집에서도 엄마 아빠하고 얼마나 잘 지내는데요.". 선생님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안나가 항상 너무 싹싹하고 예뻐서 이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괘념치 마세요.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이런 검사하고 문제 있으면 부모님과 면담하는 것이 루틴으로 되어 있는데 이제까지 문제 있었던 적은 없어요. 믿지 못할 검사예요."
그렇게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은 싱겁게 끝났다. 담임선생님은 자기도 학급에서 안나를 잘 지켜보겠지만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고,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경우 심리 상담을 시행하도록 권고되나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날의 면담은 곧 잊혔다. 아이는 그만큼 자신의 상태를 숨기는데 능숙했다.


정서 행동 특성 검사의 관심군으로 확정되면 학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드리고 상담 동의서를 받습니다. 학교 상담을 원하시는지, 학교에서 의뢰해 드릴 수 있는 무료 상담(위센터, 청소년 상담 복지 센터)을 원하시는지 때로는 외부 치료 기관이나 상담 기관을 가길 원하시는지에 따라 필요한 서류가 다릅니다. 이 모든 것을 원하시지 않는 부모님께는 상담 비 동의서를 받습니다.


관심군으로 확정된 준서는 상담실에서 가족과의 갈등으로 힘든 마음을 호소했습니다. 추가적으로 실시한 MMPI-A검사에서도 명백한 우울 프로파일이 보였습니다. 학부모 상담을 신청했으나 어머니는 “사춘기라 그런 건데, 아이를 우울하다고 부추기지 마세요. 저희 애는 상담 필요 없어요”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결국 상담 비 동의서를 받고 상담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달 후, 준서는 학교에서 손거울을 깨서 손목을 그었습니다. 그 일 이후 준서는 다시 학교 상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준서는 “엄마가 그동안 상담 선생님을 정말 미워하셨어요. 어제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누군가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요”라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엄마가 상담실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상담하러 오느라 힘들었을 준서의 마음이 느껴져 안쓰러웠습니다. ‘자녀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부모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고, 그 사실을 전하는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정서 행동 특성 검사는 많이 부족한 검사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위클래스에서 심도 있는 상담을 하고 추가적인 검사를 하며 학생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다행히 관심군으로 확정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 상담과 외부 기관에서 치료와 상담을 받아 바로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관심군이 되면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관심군 기록은 해당 연도 내에 모두 삭제되며, 상담 기록은 졸업과 동시에 완전히 파쇄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위클래스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아이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용히 신호를 보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상담교사는 오늘도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러두기

이 글의 사례는 개인의 사례가 아니며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상황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일부 설정은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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