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가 선택할래요

학교폭력에 연루된 아이들 1(학교폭력 피해)

by 친절한 상담쌤

교육 현장에서 학교폭력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입니다. 눈에 보이는 신체적 폭력은 줄어들었 지만, 보이지 않는 언어적 · 정서적 폭력은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더 교묘하고 집요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매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신고된 사안에 대해서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대응합니다.


상담교사는 그 과정에서 학교폭력으로 상처받은 학생들을 상담하고, 학교폭력 전담 회의에 참여하기도 하며, 학부모가 의뢰할 경우 정신건강 전문가 소견서를 작성해서 교육청에 제출하기도 합니다. 학교폭력 사안을 대할 때 상담교사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중립성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은 같은 학교 학생이며, 맞신고로 인해 가해·피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담교사는 학교폭력 사안에 직접 개입할 수 없습니다. 피해와 가해 구별 없이, 학생들이 현재 경험하는 어려움에 집중합니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학생들은 대부분 불안에 휩싸입니다. “이 일이 잘 해결될 수 있을까?”, “신고한 나를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신고해서 더 괴로워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이때 상담교사는 학생의 불안을 덜어주고, 그들이 바라는 해결 방식과 감정을 차분히 들어주며 불안한 시기를 함께 견뎌줍니다.


제가 선택할래요


사건 발생 직후, 쉬는 시간에 민정이는 불안한 모습으로 위클래스 문을 열었습니다. 첫 상담에서는 비밀 보호 예외조항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뒤, 상담을 시작합니다. 그 예외 중 하나가 바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불안에 떠는 민정이를 안정시키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은 뒤 저는 학교폭력 담당 교사와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알렸습니다. 민정이는 처음엔 “가해 학생들을 꼭 처벌받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상대가 부인해서 처벌을 피할까 봐 불안해했지요.


하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가해 학생이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용서하고 싶어요.” 부모님은 진학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런 문제로 시간을 빼앗기지 않길 바랐고, 민정이가 타인의 잘못을 너그러이 품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셨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학교폭력 신고 여부는 민정이가 스스로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담실에서 학교폭력 관련한 상담을 하다 보면,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님이 대신 결정해 버려서 아이가 더 아파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학생은 단지 사과만 원했는데 부모가 강하게 전학을 요구하거나, 반대로 학생은 처벌을 원했는데 부모가 화해를 택해 아이가 상처받는 경우도 있지요. 때로는 부모님의 감정이 앞서 사안이 커지자, 학생이 더 이상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등교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 민정이는 부모님과의 진솔한 대화와 학교 상담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해결 방식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진학을 결정짓는 마지막 시험을 잘 마친 뒤, 민정이는 환한 얼굴로 시험지를 들고 위클래스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어려운 일을 스스로 해결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성과를 얻은 민정이를 진심으로 칭찬하고 꼭 안아주었습니다.


민정이는 아마도 이 일을 통해서 ‘어떤 어려움도 어른들과 상의하며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을 겁니다. 또한, 자신의 결정을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을 통해 신뢰와 지지의 힘을 경험했을 겁니다.


학교폭력은 학생들이 결코 겪지 않기를 바라는 일입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이의 고통을 함께 지지하며 버텨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입니다. 부모도 사람이기에 감정이 앞설 수 있지만, 그럴수록 어른의 감정이 아닌 아이의 감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가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첫걸음이 됩니다.


일러두기

이 글의 사례는 개인의 사례가 아니며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상황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일부 설정은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진 출처 : Pixabay

keyword
이전 16화스마트폰은 제 분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