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188]
나이 듦에 대하여
왜 사람에게는 시든다는 말 대신 늙는다는 말을 쓸까.
나무도 꽃들도 다 시들어버린다면서 사람은 왜 세상을 뜬다고 할까.
무심코 흘려 보냈던 말들이 목에 걸린 잔가시처럼
살아나는 나이가 됐습니다.
나이가 들면 언젠가부터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합니다. 갑자기 눈이 밝아진 것은 아닐 테고, 살아온 날들에 대해
생각이 기울면서 젖는 현상일 것입니다.
너무 인생을 무심히 살아왔다는, 그래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면 소회일 수 있겠지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는 걸 자랑하지 말아야 했는데, 그렇게 산 것을
앞세우지 않았어야 했는데, 인생이란 산허리를 내려오다가 문득 무심히
지나친 일들이 잠들지 못하고 부스스 눈을 뜨고 일어납니다.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나를 부르고 찾기도 했을 텐데. 그때
나는 보지 못했고 응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 듦이 현실이 된 나를
불러 세웁니다. 석양의 그림자 같은 인생을 살면서 부질없는 욕심과
허상을 잡으려고 때 묻히고 얼룩진 나를.
시듦으로는 그것을 모릅니다. 오직 나이 듦으로 아는 진리입니다. 이는
늙는다는 말의 또 다른 음유입니다. 시들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나이가
들면 주고받는 것이 다르고 떠남과 만남이 생깁니다.
이생을 잃으면 내생에 기대게 되고, 병들어 건강을 다치면 무심했던 내
몸의 중함을 깨치는 이치입니다. 청력을 잃으면 시력이 강해지듯 미움을
버리면 감사가 커집니다. 하지만 감사가 줄면 그 자리에 미움이 비집고
들어오는 이치도 매 한 가지죠.
욕심을 부려 얻음이 과하면 마음과 머리에 망념만 가득 찹니다. 아직도
채울 것이 남은 사람은 부족함에 갈증이 남아도, 이만하면 됐다는
사람은 마음에 족함을 가집니다.
같은 것을 갖고도 ‘팔여(八餘․8개가 남음)’라고 만족해 하는 사람이 있고
‘팔부족(八不足)’ 이라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 이치입니다. 늙음에서 잃은
것과 얻는 것의 차이는 뭘까? 잃어서 득이 된다면 잃을수록 좋겠으나,
얻어 해가 되는 것은 적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잃은 것이 많든 적든, 얻은 게 크든 작든 그 기준은 누가 정할까.
자신만이 자기의 기준을 정합니다. 나이 듦이 시듦보다 차원이 다른 것은
긴 세월을 살며 경험하고 축적한 내 인생의 스펙이 내 기준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눈부시게 푸르던 세월이 사위어 갑니다. 생명의 경이에 눈 떴던 봄이
이울고, 여름날 쉼을 주던 그늘이 떠난 자리로 목마른 가을이 단풍으로
타다 갔으니, 이젠 낙엽귀근의 남은 길을 가늠해야 할 시간입니다.
굽은 등 너머 노을 진 서녘에서 부엉이가 울 때입니다.
나이 듦이란, 떠난 것에 미련두지 말고, 잃은 것에 연민하지 말고, 마음의
미움을 태우는 일입니다. “사람이 다 그렇지.” “별난 인생 있나?” 고까웠던
일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곰삭힌 감정은 다 흐르는 물에 씻어내고
텅 빈 마음에 명상으로 충만할 때라야 합니다.
나이 듦이란, 미천한 인생의 한계를 알고 참회와 감사로 채우는 일입니다.
잊고 살았던 것들에 눈 뜨고,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시간 말입니다.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시간이지요.
그때 비로소 “이만하면 감사하다.” 마음에 평강이 옵니다. 무한한 감사와
성찰 뒤로 하늘의 자비가 기다립니다. 태양이 한낮에 짱짱함도 빛나지만
낙조가 들고 질 때의 고혹함도 좋습니다. 이 모두 생의
의미 있는 과정이니까요.
해가 많이 기울었습니다. 헐거워진 시간 사이로 동네 골목으로 드리우던
그림자도 한층 깊고 서늘해졌습니다. 누가 노래했던가
나이 듦은 늙어감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나이는 먹는 게 아니라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위로하면서 격려하면서 남은 세월을 배웅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