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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틀째

나를 지금 여기로 이끌었던 그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어제 뉴저지에 도착해서 이제 오늘로 이틀째가 되었습니다. 역시 가장 힘든 건 시차와의 싸움입니다. 하루에도 낮잠을 대여섯 시간씩 자고 나니, 밤이 오면 정신은 다시 멀쩡해집니다.


오늘은 동네에서 열린 디왈리 (인도 축제)에 갔다가 어느 한국인 교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내 대기업에서 4년 정도 공부를 하다가, 뜻하지 않았던 계기로 학업을 결심하게 되어 유학길에 올라 미국에서 석, 박사를 따고 교수직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학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여쭤보니, 저를 퇴직하게 했던 동기와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년 차, 10년 차, 15년 차 되는 선배를 봐도 지금과 달라지는 게 없고, 계속 업무를 하더라도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외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쉽게 설명이 안 되는 어떤 끌림 또는 밀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자괴감에서 시작된 가능성이었고, 지쳐버린 몸과 마음이 갈망하는 새로운 삶의 시작, 그리고 그것들이 저의 어린 시절을 소환해서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 스스로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만난 와이프의 인도인 친구가 저에게 어딘가 아파 보인다고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말하니, "잘 될 거고, 모든 것들이 선한 결과를 맺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아직 백수라는 지위에 대해 어떤 실감도 들지 않고, 다만 앞으로 어떻게 이 생활을 계획하고 탈출할 지에 대해 구상을 해보고 있습니다. 지난 19년간 대기업 직장인으로 살아오기 전, 잠시나마 취준생으로 살았었고, 그전에는 2년 반 동안 고시생으로 살았던 것이 저의 백수 경력의 전부였기 때문에, 아직도 그때의 DNA을 소환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10여 개월 만에 다시 살게 된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같이 식사를 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주변의 이웃들과 만나 인사를 하는 데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 준 그 힘이, 앞으로의 나의 여정에도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오늘 하루를 그저 즐겁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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