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각자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
저는 미국에 주재원 파견을 나와 약 2년을 근무하면서, 인생에서 처음 겪어 보는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습니다.
부임한 첫해에는 상사와 나, 둘 밖에 없는 조직에서 상사와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지금도 믿기 어려운 처우와 대접에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가 속한 조직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고, 어떤 이는 미국에서 생활을 조기에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가거나, 어떤 이는 퇴사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하여 휴직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스트레스가 가정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여 이혼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견디게 했던 중요한 덕목은 "여기서 이탈하면 죽는다"는 한국 인 특유의 철학과 정신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버텼고 (여기에는 저의 동료들의 지분이 상당히 컸습니다), 악화되었던 저와 상사의 관계는, 상사가 퇴직을 하면서 한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버티는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여기서 낙오하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되면 죽는다"는 명제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좋은 학교를 나오고, 대기업에 어렵게 취직하여, 여기까지 온 저에게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행동 지침이었습니다. 그 명제에 걸맞게 살기 위해 매일같이 새벽 2시 또는 3시에 퇴근하고, 주말에 출근하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말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8살 된 아들 녀석이 문 앞에 주저앉아 나라 잃은 백성처럼 통곡을 하였습니다. '왜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아빠 없이 살아야 되나'는 말이 가슴속 어느 한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는 주말 회의 준비로 긴장하고 있던 상태여서 그런 아들을 강제로 떼어 놓고 출근을 했지만,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울분과 분노의 감정이 가득 찼습니다.
"이제 이것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그것은 어떤 계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3시의 퇴근길에 Bergen Field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상점들을 보면서 너무 예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쇼핑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퇴사를 하고 이곳에 거주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가 이 모든 일들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생각은 "모든 사람들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고, 나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면 된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많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저의 신분은 아직 백수이기 때문에, 미래가 두렵고 낯설지만, 매일 마음을 다잡고 한걸음의 전진을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