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어디서나

005 관자재(觀自在)

by 동사로 살어리랏다

부고를 듣자마자 두 눈 감고 호명했다. “나무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님, 다 보고 듣고 계시지요? 이런 황망한 일이 생겼습니다. 보살님께 귀의하오니, 부디 극락왕생 살펴주십시오.




이토록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애타게 찾는 관세음보살이 반야심경에서는 그 이름을 관자재보살로 개명하여 나온다. 세간 중생들의 소리를 언제 어디서나 듣고(관세음 觀世音),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고 장애 없이 보아(관자재觀自在) 두루두루 보살피는 이름이다.


호명당하기만 하면, 그곳이 어디든 그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틀림없이 나투시어 자애를 베푸는 일이 가능하려면 몸이 열, 백이라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존재하는 존재란 말인가?


적어도 우리 생각이 만들어낸 상(想)처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자유자재, 두루두루 보살피기 위해서는 그런 모습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신이 있다면 관자재로 있을 것이다. 육신의 눈과 귀가 가지는 상대성, 유한성, 필연적 오류를 넘어선 절대, 무한 편재(遍在)된 무엇일 것이다. 신의 존재 방식이고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물고기에게 물처럼, 인간에게 공기처럼.


자연, 그렇지 않으면 신성모독.





keyword
이전 05화바람이 불어오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