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
[작가의 말]
얼마전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조회수 5,000을 넘었다는 메시지에 조금 의아했다.
무엇이 이 글을 클릭하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내 글에 독자분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작가로서 보답해야 하는것이 인지상정! ^^
<한 그루의 사과나무>는 기존에 썼던 단편을 최대한 더 짧게 재구성한 스마트 소설이었다.
소설집 <흐린날엔 바로크 그리고 사이폰커피>가 출간되어 스마트 소설 몇 편을 브런치에서 삭제했었다.
나의 단편들이 브런치에 올린 스마트 소설의 일부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조치였다.
그런데 <한 그루의 사과나무는> 소설집에서 제외했었다. 그덕분에 아직 브런치에 살아있다.
관심을 기울여 준 고마운 독자들을 위해 <한 그루의 사과 나무> 원래 단편 그대로를 순차적으로 올려본다.
어차피 누군가가 연결해 주는 중매이거나 지인이 소개해주는 소개팅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지만 사업자등록을 낸 이윤 창출 목적의 업체라면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성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측은 수익을 내야만 하는 업체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돈을 중개인에게 지급한다는 것에 나는 마음이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들이 건물을 소개해줄 때 흔히 물건이라고 칭하듯 결혼 정보업체의 중개인 역시 왠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것 같았다.
사람의 만남이 돈으로 거래되는 건 그다지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론 음성적이긴 하지만 그동안 여자들에게 돈만 주면 언제 어디서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성적인 만남을 쉽게 가질 수 있었다. 여태 그런 식으로 홀로된 외로움과 성적 욕구를 해소해왔었다. 그러다 보니 돈으로 거래되는 결혼방식이 더더욱 싫었다.
지금껏 나는 결혼이란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그간의 삶을 마음껏 즐겼었다.
무자식이다 보니 그야말로 상팔자였다.
간혹 친구들이 자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걸 곁에서 듣고 볼 때마다 나는 솔로 인생이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친구 곁에서 회심의 미소를 속으로 여러 번 띄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한 이른 은퇴와 그로 인해 소원해진 대인관계는 홀로 보내야만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냈다.
지지고 볶을 가족조차 없다는 것과 주변에 마음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은 내가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할 당시 전혀 느껴보지 못하였던 이상하리만치 우울한 감정이었다.
이제 조금씩 주변을 정리하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딱히 정리할 주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구순을 넘긴 부모님이 아직도 건강히 생존해 계신다.
살던 곳을 정리하고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려 생각하니 부모님 곁에서 생을 마무리하는 일이 불효 같았다.
제대로 효도 한 번 해보지 못한 것 같은데 그래서 더욱 부모님 곁에 있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것도 전혀 내키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내 집에서 홀로 죽음을 기다리는 거였다.
수시로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자식이 아니라 거꾸로 노부모가 수시로 자식의 안부를 물어왔다.
내가 먼저 전화해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멀쩡한 척하지만 그런 연기도 서툴다 못해 어색하여 아예 먼저 연락을 안 드린 지 오래다. 그래서 죽으면서까지 불효하는 것 같아 죄스럽기까지 했다.
말씀을 안 드렸기에 부모님은 내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여태껏 모르고 계신다.
하지만 조만간 자식과 연락이 닿지 않는 그 날 비로소 노부모는 자기 아들이 고독사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처신해야 부모님의 충격을 덜 받게 하는 일인지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다.
몇 시간째 흰 종이를 앞에 두고 끙끙거리던 바로 그때였다.
책상에 놓인 휴대폰에서 문자 알람이 울렸다.
‘ㅇㅇ씨!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나도 깜박했던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해준 사람이 누군가 싶어 곧장 발신인을 살폈다.
바로 나에게 시한부 삶 판정을 내린 병원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전달된 문자는 사람의 손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기계적으로 보낸 것이다.
[웹발신]이란 간단명료한 문구가 그것을 확실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문자수신불가]라는 용어에 고맙다는 답장도 보낼 수 없음에 약간은 허탈했다.
그렇게 온기가 느껴지지 않은 차가운 메시지는 차가운 공기가 되어 이제 곧 사그라질 나의 뜨거운 심장을 차갑게 식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 삶에서 마지막으로 받아보는 축하 문자일 텐데 그것을 기계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묘한 서러움의 파도가 되어 서서히 제 할 일을 마무리하는 심장 속으로 밀려왔다.
무언가 좋지 못한 감정에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손에서 놓으려는데 순간 ‘윈드(wind)’가 떠올랐다.
바로 얼마 전 나는 그녀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었다.
‘윈드씨!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언제 다시 예약할 수 있을까요?’
그날 회신이 즉각 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무어라 표현하기 복잡미묘한 서운한 감정이 일었다.
그녀로부터 왠지 거절당했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