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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Oct 19. 2024

라크리모사(Lacrimosa) #3

- 중편소설 -

시신이 발견된 곳은 침대 위였다. 

K 대표는 그나마 바닥이 아니라 다행이라 여겼다. 시신이 바닥에서 부패했을 경우 시신의 세포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심할 경우 바닥 장판 아래 콘트리트 슬라브까지 침투해버리는 예도 있기 때문이다. 아주 소량의 부패액일지라도 온 집안에 시신 악취가 진동할 수 있는데 그렇게 콘크리트 구조체인 바닥이나 벽까지 침투해버리면 일부분 철거 후 재시공해야 할 만큼 대공사가 될 수도 있다. 

K 대표가 방안을 둘러본 후 주인 할머니에게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집처럼 만들 수 있겠다고 말한 후 자외선 오존 살균기로 공기 정화까지 해서 끝마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일 저녁 안으로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첫날은 심하게 오염된 침대를 처리하기 위해 폐기물처리업체 사장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업 복장과 도구를 챙기고 작업에 들어가기 전 항상 통과의례처럼 하는 행동이 있다. 

그것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하여 음악 듣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가 매번 작업할 때마다 듣는 음악이 있다.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굳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아니더라도 그가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이유는 일에 집중하며 잡생각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대부분 남이 죽은 공간에서 혼자 장시간 일을 하는 K 대표에게 주변 사람들은 하는 일이 무섭지 않냐는 말을 종종 던진다.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머문 공간을 정리하는데, 특히나 삶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 강도살해를 당한 자들의 경우 억울하여 구천을 떠돌 거라는 인식이 있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마지막으로 머문 공간에 나타날 일도 있지 않냐며 일하면서 귀신을 본 적은 없는지도 종종 물어본다. 

K 대표는 주변의 그런 우려와 흥미 위주의 질문에 언제나 단호하게 단 한 번도 귀신을 본 적도 없고, 또 일하면서 무서움을 느껴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그가 의뢰받는 상당수의 현장은 유가족들에 둘러싸여 마지막 유언을 던지고 죽거나 누군가의 병간호를 받고 죽는 경우보다 홀로 고독하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외롭게 죽은 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죽음의 현장을 대할 때마다 고인이 마지막 흔적을 최대한 예우를 다해 정리해주어야 한다는 직업 소명의식이 그에게 있었다. 경건한 음악은 외롭게 죽은 고인의 마지막 자리를 지키고 흔적들을 정리하는 자신을 위한 음악이기도 하지만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음악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레퀴엠만큼이나 좋은 음악은 그에게 없었다. 특히 라크리모사(Lacrimosa) 연주와 합창 부분에서 애절하고도 장엄한 선율은 그를 항상 전율케 했다. 그럴 때면 영가가 그에게 찾아와 ‘눈물의 날’ 자신이 세상에 남긴 것들을 대신 정리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표하는듯한 느낌을 받곤 하였다.


폐기물 업체 직원이 오염된 침대를 싣고 떠난 후 K 대표는 유품 정리 작업에 돌입했다. 

고인이 머문 원룸에는 그다지 세간살이가 많지 않았기에 유품 정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다음 날은 방안에 가득 배인 시신의 악취를 제거하고 구석구석에 숨어있을 구더기 떼들을 소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에는 장판과 벽지를 제거한 후 최종적으로 자외선 오존살균 기로 공기 정화까지 끝낼 계획이었다. 그가 한참을 유품 정리를 하던 도중 서랍 안에서 예금통장과 적금 통장이 발견됐고 또 보험증서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모두 합해보니 적지 않은 금액을 고인이 남기고 간 것이다. 그가 얼른 주인 할머니에게 연락하였다. 그리고 유가족에게 전달을 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 양반한테 유가족이 어딨데요? 없어요!”


“그분께 아드님이 있으시다고. 저에게 아까 말씀 해주시지 않았나요?”


“그게 무슨 아들이요! 제 아비 시신도 나 몰라라 하며 시신 인수 거부해서 무연고 처리했는데! 장례도 안 치렀어요. 그냥 구에서 화장해버렸다고요.”


“그래도, 이건 전해드려야 할 텐데요. 버릴 수 없는 유품이라…….”


“아유, 난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난 그 사람에게 연락하기도 싫어요.”


K 대표는 난감했다. 아무리 어렵게 살다간 사람이라도 간혹 이렇게 통장이나 돈이 될 만한 고가의 유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오롯이 유품을 정리하는 자가 그것을 취해도 모를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유가족이 없고 또 있다 하여도 유가족임을 인정 안 하려는 상황에서는 K 대표 마음대로 유품을 처리해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고인의 유품을 그 어떠한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신이 개인적 이득으로 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또 이 일을 해오면서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됨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었다. 결국, 그는 집주인 할머니에게 고인 아들의 연락처를 받아서 직접 연락하여 고인의 유품을 받으러 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고인의 아들은 지방에 내려가 있는 상황이라고 하며 그날 유품을 받으러 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유품이라 해야 뭐, 별거 있겠어요? 그냥 다 버려주세요!”


“고인이 남기신 유품이 예·적금 통장과 보험증서입니다. 이거를 버립니까?”


그러자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제가 내일도 여기 와서 일하게 되는데, 지금 시간 안 되시면 그럼 내일 받으러 와주세요.”


K 대표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내었다. 그러자 다급하게 그 아들이란 자가 말을 했다. 


“아니요,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고요, 저 대신 제 아내를 지금 보낼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가 아내를 금방 보내겠다는 말에 얼마나 오래 걸릴지를 물어보았으나 얼마 안 걸린다고만 말하며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정말 얼마 안 있어 어떤 여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인의 며느리였다. 지금 밖에 있으니 유품을 갖고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말도 없이 통장과 보험증서를 K 대표의 손에서 뺏다시피 가져가며 뒤돌아서자 그가 잠시라도 고인이 머문 방을 보고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내가 그 방을 왜 봐야 해요! 됐어요!”


K 대표는 무안하고도 머쓱했다. 그녀의 시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머문 그 장소에 택시를 타고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십여 분 남짓이었다. 거리로 따지자면 겨우 2~3km 정도였고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였다. 부자지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지만, 그들 마음의 거리는 그 어느 거리보다 멀었었음을 K 대표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의 거리를 무색할 정도로 단숨에 무너트린 것이 돈이었기에 그의 마음이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비교적 점잖은 편에 속하였다. 

K 대표가 집주인으로부터 죽은 임차인의 유품들을 정리해 달라고 해서 약속한 날에 작업을 막 시작하려는데 때마침 유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벌떼처럼 들이닥쳤다. 

그리고 유품을 정리한다면서 장롱에서 옷을 다 꺼내고 온갖 서랍들을 뒤져가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듯했다. K 대표가 보기에 그것은 유품을 정리하는 것이 아닌 거의 약탈하는 모습들이었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서로 경쟁하듯 고인의 유품을 훼손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유품 정리가 아닌 그저 보물찾기 놀이였다. 


고인이 남긴 고가의 물건들을 서로 먼저 가져가려고 경쟁하듯이 온 방 안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뒤집고 다녔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그들이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았는지 잔뜩 실망하며 서로 투덜대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K 대표는 작업하는 도중에 우연히 고인이 살던 곳의 이웃을 만났는데, 그 이웃은 왜 어제 작업하고 오늘도 작업하는 거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그가 의뢰받아 작업하기로 한날은 전날이 아니었다. 아마 전날에 유가족 중의 어느 누군가가 몰래 와서는 고가의 유품을 가져간 듯 보였다. 그리고 한발 늦게 다음날 다른 유가족들이 들이닥쳤으나 그들이 원하던 고가의 유품은 이미 전날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고 난 뒤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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