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편소설 -
얼마동안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텅 빈 국도를 K 대표 홀로 운전하고 있는데 드디어 전방에 휴게소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였다. 그가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막상 휴게소에 이르자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휴게소의 불이 모두 꺼져있었고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K 대표가 자신의 차를 휴게소 건물 가까이에 정차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불 꺼진 휴게소는 문이 굳게 잠겨있었고 군데군데 대형유리창이 깨져있는 건물 안으로 강한 비가 거센 바람을 타고 세차게 몰아닥치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이곳이 폐 휴게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와는 달리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된 국도 휴게소는 관리 감독기관이 따로 없다. 더구나 국도변 휴게소가 개인 사유 재산이다 보니 폐건물이라 해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정비에 나서지 못하여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그렇게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폐 휴게소에 그가 들어온 것이다. 이대로 다시 빗길 야간운전을 해야 할지 말지를 그가 잠시 고민하며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도착 예정 시간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20분 정도 남은 상태였다. 대략 8~10Km 정도의 거리다. 그리 짧다고 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그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고 난 뒤 국도를 타면서 목적지까지 약 20여 분 정도 남은 것으로 아까 확인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20분 남아있다는 내비게이션 정보에 그는 의아해했다. 아무래도 그가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럴 것이라 단정 짓고는 빗발이 조금 수그러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비어있는 휴게소 건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을씨년스럽다 못해 그의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이며 유리창을 닦을 때마다 내는 마찰소음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차를 운행하고 있었을 때는 그다지 신경 안 쓰던 부분이었지만 정차해 있는 지금은 매우 신경이 거슬리고 정신 사납기까지 했다. 더구나 시끄러운 엔진의 공회전 소리가 차 안 이었지만, 더욱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시동을 껐다. 그와 함께 와이퍼와 에어컨의 작동도 멈추었다. 일순간에 적막이 몰려왔고 차창과 보닛 그리고 차의 지붕에 와 닿는 거센 빗소리만이 들려왔다. 하지만 차 안의 냉기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그는 얼마 견디지를 못하고 다시 시동을 켜야 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높아지려 했던 차 안의 온도를 다시 내리고 있었다.
의뢰인은 K 대표의 현장 도착 시간에 맞추어 작업 요청을 담은 구체적인 내용을 문자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 연락도 그에게 오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이상한 의뢰라고 K는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요의(尿意)를 느꼈다. 한참 전부터 느껴왔던 것이었지만 현장에 도착해서 해결하려 했던 참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산도 없이 차에서 내리기가 싫었다. 하지만 방광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기에 더는 참지를 못하고 아까부터 눈에 띄었던 화장실 표지판만 계속 주시하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참기 힘들었던지 주저함 없이 차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거센 비가 차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는 거센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는 마음에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머리 위에 손을 얹고 화장실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착한 화장실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그가 주변을 빠르게 살피며 휴게소 건물 이곳저곳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녔다. 늦은 시간인 데다가 폐쇄된 이곳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그냥 아무 곳에나 빨리 볼일을 보고 다시 차로 돌아가려 했다. 그렇긴 해도 심리적으로 덜 개방된 공간을 찾다 보니 엉겅퀴와 잡초들이 무성하게 보이는 건물의 뒤편으로 가게 됐다. 산사태가 일어났던 흔적이 보였다. 대충 정비해 놓은 흔적이 역력했다. 그곳에서 그가 급한 소변을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그의 귀에 무언가 바람에 나부끼며 심하게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변을 다 누고 나서 한결 개운한 마음으로 주변을 잠시 살피는데 펄럭이는 소리의 원인이 되는 무언가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것은 폴리스라인 테이프였다.
경찰통제선을 가리키는 기다란 노란색 테이프 몇 조각이 문에 매달린 채 완전히 끊어지지 못하고 강한 비바람에 춤을 추듯 연신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은 대형 열쇠로 굳게 잠겨져 있었다.
순간 그의 등골이 오싹해졌고 다시 차 안으로 한걸음에 달려들어 갔다.
K 대표가 시계를 보았다.
언제 다시 출발해야 할지 시간 계산했다.
비는 도무지 그칠 줄 모르게 계속 퍼붓고 있었는데 이 상태에서 다시 운행을 시작할지 그렇지 않으면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면 출발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의뢰인으로부터 이메일을 받고 나서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일찍 현장에 도착한다고 해도 의뢰인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하면 일을 시작할 수 없었기에 좀 더 차 안에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운전석 깊숙이 몸을 파묻고 눈을 감으려 하는데 갑자기 룸미러에 차 한 대의 전조등이 강렬하게 들어왔다.
저 운전자도 자신처럼 비를 잠시 피하러 왔거나 그렇지 않으면 생리현상이 급하여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고 그가 생각하고 있는데 입구에서 들어오던 차는 브레이크를 밟고 멈춘 듯 그대로 정차해 있으면서 엔진소리만 요란하게 내뿜고 있었다. K 대표가 룸미러를 손으로 고쳐 잡으며 뒤에 서 있는 차를 자세히 보려 했다. 전조등이 워낙 강렬하여 눈이 부셨다. 차량 확인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가 대충 보았을 때 검은색 SUV 차량인 듯 보였다.
“뭐야? 저 자식. 기분 나쁘게.”
뭔가 계속 뒤에서 자신의 차를 유심히 관찰하는 듯 보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은근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K 대표는 차 문의 잠금장치를 얼른 살펴보았다. 아직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자 얼른 잠금 버튼을 눌러 문을 잠갔다.
K 대표는 차가 서서히 다시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출구로 빠져나가려는 듯 차의 뒤 꽁무니가 보이자 그제야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개월 전 인신매매 집단을 탈출한 Y가 야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국도 인근 폐 휴게소에 몸을 숨겼었다. 그녀는 상처를 입은 몸으로 그날 밤 내내 고열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데 그녀가 그곳에 온 직후 때마침 흉가 체험 방송 전문 크리에이터 Z가 폐 휴게소에 왔다. 생방송 진행을 안전하게 하려고 미리 사전 답사하러 온 것이다. 그가 진입로를 찾아 헤매던 가운데 드디어 건물 뒤편에서 Y가 들어왔던 그 문으로 진입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던 Y가 그를 자신을 쫓는 조직원으로 착각했다.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그녀는 급하게 숨을 곳을 찾았고 식자재 창고까지 온 힘을 다해 기어가서는 몸을 숨겼었다. 이곳저곳을 탐색하던 크리에이터 Z가 드디어 그녀가 있던 식당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곧이어 바닥에서 붉은 피를 발견했다. 그 피가 워낙 선명했기에 그는 긴장했다. 동물이 흘린 피로 추측하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면서 결국 Y가 숨어있던 식자재 창고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그가 살며시 문을 열었을 때 창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숨을 죽이며 조용하게 발걸음을 떼며 식자재 창고의 선반을 하나씩 지나치던 순간 그의 발등으로 손 하나가 힘없이 툭 하고 떨어졌다.
정신 잃은 Y였다.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움에 놀란 그가 반사적으로 오른손에 지니고 있던 삼단봉 전기충격기로 그녀의 목을 감전시켰다. 그녀는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대로 바닥으로 자빠졌다. 곧이어 머리통이 퍽 하며 바닥에 닿는 둔탁한 소리가 크리에이터 Z의 심장을 찌르고 지나갔다. 그가 너무 놀라 재빨리 창고를 나왔지만, 순간적으로 본 기억으로도 건장한 사내가 아닌 어린애 같은 여자아이였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체, 마치 잠을 자듯 누워있었다.
숨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노숙인 시신 발견 콘텐츠를 찍어서 조회 수를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 경악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가 그녀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곳을 벗어난 직후 밤새 내린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났고 폐 휴게소 일부를 덮쳤단 인터넷 기사 때문이었다. 더 충격적인 건 10대 후반 여자의 변사체가 도로변 흙더미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였다. 그가 있었던 건물 내부에 또 다른 변사체가 발견됐는지는 가사에 일절 언급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때 살아있었고 건물 밖으로 나오다가 산사태를 만난 건 아닌지 Z는 추측했다. 그의 마음이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2. 레퀴엠(Requiem)
K 대표는 유품 정리 대행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일반적인 죽음을 거의 접해보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가정집이나 병실에서 생을 다하여 죽음을 맞이한 자들의 유품을 정리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리고 또한 고관대작(高官大爵)이라 할 만한 자들의 의뢰를 받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택에 들어가 유가족 대신 유품을 정리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른바 부유층들의 유품들을 정리하여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 짓는 일은 고가의 유품들이 섞여 있을 수 있기에 유가족들이 직접 유품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보통 K 대표에게 의뢰를 해오는 상당수는 부유층의 유가족이 아닌 죽은 자에게 세를 주었던 임대인 아니면 임대인을 대신하여 공인중개사들이 연락해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가족이나 전문 의료인들의 돌봄을 죽는 그 순간까지 받지 못하고 홀로 죽은 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집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죽은 뒤 수주에서 수개월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부패한 상태로 방치되어 사실상 남의 부동산에서 재산상 피해를 주게 된 셈이다.
그들은 소외된 채로 살다가 죽어서 남에게 피해만 끼치고 가는 민폐투성이의 가련한 자로 낙인찍혀 이승에서 잊히는 자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K 대표는 이러한 자들의 죽음을 폄훼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또 그러한 죽음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떠한 죽음이 되었던 대수롭지 않게 취급할 죽음은 없는 것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죽음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그는 여겼다. 의뢰를 받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는 업무는 사실상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유가족이 있어도 유품 정리를 거절할 정도면 사실상 고인이 남긴 재산이 전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K 대표가 이 일을 하면서 죽은 고인이 오히려 빚을 남겼으면 남겼지 값나가는 물건이나 엄청난 재산을 남기고 간 경우는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가난하게 살아온 그들에게도 의외로 빚이 아닌 것을 남기고 간 사례도 있기는 하다.
그가 몇 해 전에 경험한 일이었다.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연립주택으로 갔던 날은 어느 늦은 오후였다. 의뢰를 받고 다음 날 오전부터 작업하려 했으나 당장 와달라는 부탁이 너무나도 간곡하였기에 야간작업을 예상하고 현장으로 갔다. 주인 할머니는 K 대표를 보자마자 자기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던 건지 남의 재산에 피해를 주고 간 고인에 대한 원망부터 퍼부어 댔다. 그러면서 다른 세입자들이 시신이 부패했던 곳의 냄새를 참지 못하고 집주인이었던 할머니에게 계속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그 성화에 못 이겨 K 대표에게 당장 와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K 대표는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부패한 시신의 냄새가 실내에 배겼을 때 쉽게 제거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 저녁 안에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란 것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집주인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차마 꺾을 수 없었기에 그날 저녁은 현장을 대강 둘러본다는 생각으로 방문하려던 참이었다. 역시 그가 맞닥뜨린 현장은 예상대로 심각했다. 여태까지 맡아본 부패한 시신의 냄새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강한 발효 식초 냄새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식초에 암모니아 냄새까지 더하여 대변 냄새까지 뒤섞여 사람이 맨정신으로 도저히 맡을 수 없는 냄새가 집안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가 대충 현장만 둘러본다는 계획을 접어버리고 이내 이 불편한 냄새를 제거하는 데 집중하기로 마음을 고쳤다.
“그런데 유가족이 전혀 없는 분이었나요?”
“없기는! 아들내미가 하나 있는데 부자지간에 무슨 연을 끊고 살았는지 삼사 년 전에 집 계약할 당시 같이 온 것을 본 이후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요. 여기서 살다간 사람이 정신도 멀쩡하고 다 건강한 것 같았는데. 겉으로 봐선 그런데 죽고 나서 보니 약봉지가 많았던 거로 봐선 속이 꽤 곯았었나 봐. 근데 그 죽은 양반 아집(我執)이 보통이 아니었던 거로 기억해요. 계약하러 와서 둘이 뭐가 그리 의견이 안 맞았던지 암튼 내 앞에서 언성을 높이고 서로 말다툼을 하는데, 죽은 양반이 아들 얘기를 전혀 안 들으려고 하더라고. 단순히 고집을 부린 게 아니야. 나도 늙은이라 잘 알지만, 늙은이들은 특유의 아집이란 게 있어. 이게 너무 지나치면 젊은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그게 자식새끼라고 어디 틀리겠나? 아무튼, 이곳으로 이사 온 뒤로 아들이 몇 번 찾아온 모양이지. 그런데 올 때마다 부자지간에 다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다른 세입자들이 말을 해주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부자지간이 서로 틀어졌다 해도 제 아비를 저리 무연고자로 만들어 보내는 인간도 제정신은 아니라고 봐. 어이구, 경찰에선 지난봄에 죽은 것 같다 하던데, 벌써 몇 개월째 시체와 동거들을 한 셈이니. 여기 세 들어 사는 사람들도 참 지독시려. 어찌 수개월 동안 모르고 살수야……. 하긴 냄새라도 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재계약할 때쯤에야 알 뻔했겠네.”
집주인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아주 흔한 일이예요. 대부분 고독사하시는 분들은 생전에 어떤 기관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살펴드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 시체 부패한 냄새나, 똥파리 떼 출몰이나, 구더기 떼가 현관이나 창문 틈 사이로 기어 나오거나 아니면 말씀하신 것처럼 집 재계약 때 즈음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집주인 할머니가 다시 한번 혀를 끌끌 찼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