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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Oct 23. 2024

라크리모사(Lacrimosa) #6

- 중편소설 -

K 대표는 그를 향해 외쳤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뭘 잘못했나요?”


SUV 운전자가 쇠사슬을 내리치다 말고 K 대표가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K 대표는 대화를 유도하고자 그에게 다시 말했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들고 계신 것들은 손에서 내려 놓아주세요. 정말 뭔가를 오해하고 있으신 것 같아요. 무슨 일로 그러신지 말씀해주세요”


SUV 운전자가 굳은 듯 서 있었다. 그러면서 아무 반응도 없이 어둠 속에서 K 대표를 응시하고 있었다. 

일단 그자의 과격한 행동을 멈추게 하는 데까지 성공한 듯싶었다.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말아야겠다고 K 대표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SUV 운전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할 지경이었다. 무기를 들고 있는 자에게 대화한다고 가까이 다가가는 건 위험천만했다. 

이도 저도 못 하는 매우 답답했던 그 순간 갑자기 SUV 운전자가 회칼과 쇠사슬을 손에 쥔 채로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울부짖음에 가까운 괴성을 질러댔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K 대표는 그 순간 정말 저자에 의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실성해버린 사람인 듯싶었다. 더 이상의 대화가 안 통하니 일단 이 자리를 피해 도망가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K 대표는 얼른 몸을 돌려 폐 휴게소 건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모든 출입문은 봉쇄되어 있었다. 그가 소변을 누었던 건물 뒤편으로 달려갔다. Y가 고통 속에서 외롭게 삶을 마감한 식당으로 들어가는 뒷문 역시 경찰통제선과 함께 굳게 봉쇄되어 있었다. 그 순간 좀 전에 번개가 쳤을 때 잠시 보았던 흰색 건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그곳을 향해 달음박질하였다.

그곳에 가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좁은 비탈길을 숨이 가쁜지도 모르고 쉴새 없이 뛰어 올라갔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나니 불이 모두 꺼져있는 그 건물 역시 폐허인 채로 버려진 듯 보였다. 


입구로 보이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둠만이 그를 맞이하였다. 

로비인 듯 보이는 넓은 공간에는 병원에서 흔히 맡을 수 있던 강한 알코올 냄새가 가득했다. 원무과 안내판이 보였고 집기류가 여기저기 쌓여있는 것도 보였다. 이곳 역시 운영하지 않는 병원인 듯싶었다. 절망감이 일순간 몰려왔다. 하지만 K 대표는 일단 이곳에 몸을 숨기면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편이 훨씬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우선 당장 가까운 곳에 있는 원무과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어 가며 정신없이 쌓여있는 집기류들을 헤쳐가며 숨을 곳을 찾던 중 벽에 걸려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휴대용 비상 조명등이었다. 얼른 손에 쥐고 작동을 해보았다. 환하게 빛을 내었다. 사무실 안을 구석구석 비추어 보았지만 안전하게 몸을 숨길만 한 적당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각마저 없었다. 원무과 사무실을 나오니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온갖 집기류로 바리케이드처럼 처져 있어 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바로 보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던 건 그의 등 뒤로 쇠사슬을 휘두르며 죽여버린다는 외침과 함께 점점 그에게로 다가오는 정신이상자의 발걸음 소리가 바로 가까이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손전등의 불빛에 의지하며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지 끝없이 펼쳐진 기다란 복도가 나왔다. 이곳에서의 알코올 냄새는 로비에서 맡았던 것보다 더욱 진하게 코를 자극했다. 복도를 따라 걷던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왠지 모르게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하듯 따라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멈추어 서자 소름 끼칠 정도의 고요함이 복도를 휘감고 있었다. 손전등을 그의 등 뒤로 비추어 보았다. 얼마나 걸어왔는지 모르게 복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K 대표는 되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님을 직감하고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다시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등 뒤에서도 자신을 잡으러 같이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가 달리기를 멈추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허리를 숙인 채 헉헉거리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누군가가 분명히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았다. 이마에 땀이 솟았고 입안의 침이 모두 말라가는 듯했다. 

그가 지니고 있던 손전등을 껐다. 일순간 어둠이 복도 전체를 지배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다시 조심스레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또다시 등 뒤에서 자신의 발걸음과 똑같이 발을 떼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K 대표는 등을 돌리면서 손전등을 켜고 비추어 보았다. 그러자 언제 따라왔는지 후드티를 입은 사내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굳어버린 듯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불빛에 나타났다. K 대표는 숨이 멎는 줄만 알았다. 다리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중심을 잃고 그대로 쓰러질 것만도 같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후드티 입은 정신이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긴 회칼을 K 대표를 향해 힘껏 던지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K 대표가 그만 뒤로 넘어졌다. 그는 넘어지면서 날아온 칼에 어딘가를 깊숙이 찔렸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에게 날아온 회칼은 그의 머리 위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바닥으로 떨어져 미끄러짐과 동시에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복도를 찢듯이 들려왔다. 후드티를 입은 정신이상자가 넘어져 있는 K 대표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단 생각이 들자 K 대표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다시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막다른 복도 끝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또 하나의 복도를 발견하고는 반사적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버렸다. 그러자 문이 열려있는 방 하나를 보게 되었다. 


숨 고르기를 할 새도 없이 손전등으로 비추어가며 숨을 만하나 곳을 찾는 데 또다시 숨이 멎는듯한 공포를 느끼고 말았다. 

손전등 불빛에 스테인리스 염습대가 보였던 것이다. 

시신을 염하는 곳으로 봐서 지금까지 영안실과 연결된 복도를 따라 들어온 게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염습실에 딸린 문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시신 보관 냉동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K 대표는 순간적으로 인기척을 느끼고 다시 손전등의 불빛을 껐다. 난동을 부려대는 정신이상자가 바로 근처까지 쫓아 온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어둠 속에서 아래위로 놓인 시신 보관 냉동고의 문을 하나씩 열어보려 했다. 모두 굳게 잠겨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이 열리는 칸을 찾아내었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생각할 겨를 없이 자신의 가슴 키만 한 높이의 냉동고를 잽싸게 타고 올라가 안으로 몸을 숨겼다. 발부터 들어가면서 몸을 누이자 드르륵 하며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미끄러졌다. 

냉동고 안에는 시신 운구대 없이 가이드 레일만 깔려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얼른 냉동고의 문을 안에서 닫았다. 

‘쿵’ 하며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 게 아닐까 하여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K 대표는 가슴 졸이며 밖의 상황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대로 시간이 꽤 흘렀다. 

시신 보관용 냉동고에서 얼마나 오래 누워있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평상시 폐소공포증이 없는 줄 알았는데 시신 보관 냉동고에 산채로 들어오고 나니 공황장애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더 오래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는 좁은 공간에서 팔을 머리 위로 뻗어 문을 힘껏 밀어보려 했다.


그런데 그제야 문이 밖에서 자동으로 잠긴 것을 그가 알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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