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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Oct 25. 2024

라크리모사(Lacrimosa) #8

- 중편소설 -

4. 폭우(暴雨)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K 대표가 눈을 떴다. 

그가 운전석에 앉아 잠시 졸았던 것 같다. 

스스로 놀라 허겁지겁 현재 시각을 확인하고 이내 다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느낌상 수 시간을 잔 것 같았으나 겨우 몇십 분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았다. 


“정말 터가 더럽게 안 좋은 곳인가 보구나.”


그가 방금 꾼 꿈이 현실이라고 아직도 믿어지고 있었다. 그럴 리 없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가 차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잠시 소강상태인지 아까보다는 많이 약해진 편이었다. 자신의 차를 앞뒤로 살펴보고는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폐 휴게소 건물 뒤편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하였다. 어둠에 싸여있는 야산이 폭우에 약해져 금방이라도 산사태를 내며 폐 휴게소를 덮칠듯한 기세로 위태해 보였다. K 대표가 건물 뒤편에서 소변을 보았을 때 얼마 전 내렸던 폭우로 산비탈 일부가 깎여 무너져 내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비가 이대로 밤새 더 내린다면 아예 산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정말이지 기분 나쁜 곳에 휴게소를 지어놓았군. 여기저기 원한 서린 영가들이 떼로 몰려있는 곳 같아. 이러니까 장사가 안되어 망하지.”


그가 혼잣말하며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충전 중이었던 휴대전화에서 이메일을 확인해 보았으나 의뢰인이 보내줄 거라 했던 메일은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뭐야, 이 사람은 도대체. 지시가 와야 뭘 하든 말든 하지. 주소 하나 달랑 알려주고 뭘 하란 건지 모르겠네.”


그가 투덜거리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빗줄기가 많이 얇아진 듯하였다. 더는 이 폐 휴게소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결심했는지 현장에 도착해서 작업 지시를 기다리기로 하고 서서히 차를 출발시켰다. 

출구 방향으로 가는 도중 Y가 고통 속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어가야만 했던 폐 휴게소를 다시 한번 힐끗 보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홀로 보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는 그런 사례를 그동안 K 대표는 적잖이 보아왔다. 그들의 남은 뒷정리를 하며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마지막으로 정리해주면서 K 대표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스스로 빨리 세상을 떠나길 바랐던 것 같지만 사실상 그들의 남은 흔적에서 얼마나 세상을 떠나기 싫어했고 또 세상에 미련을 두었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고단했던 삶은 고시원과도 같은 좁아터진 방안에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벽에 기댄 채로 앉아서 숨을 거두다가 온몸이 썩어져서 심한 악취를 내어서야 주변인들에게 알려진 경우도 적지 않다. 

그들의 남은 체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방바닥과 벽에 달라붙어 썩어가며 흘린 사체에서 나온 수액이 방바닥과 벽을 그대로 짓무르게 하여 그들만의 체취를 오래도록 남긴다. 

아무리 애써 지우려 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들의 마지막 체취는 그렇게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느낌을 만들어 놓고 남은 이들에게 전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남은 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고약한 악취 때문에 고독했던 그들은 죽어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때 살려고 열심히 발버둥 쳤던 그런 세상에서 도태되어 언제부터인가 홀로 남겨져 자신의 몸조차 스스로 돌보지 못하다 죽으면 자신을 홀로 남긴 그런 세상을 원망이라도 하듯 또 세상에 마지막 복수라도 하듯 자신들의 악취를 남겨서 남은 자들을 괴롭게 한다. 간혹 부패하기 전에 고독한 그들의 죽음이 일찍 발견되어 그들의 악취가 남겨지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쓸쓸한 죽음의 뒷모습은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모두 그들과 똑같은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기에 그럴 거라고 K 대표는 생각했다.


“어떤 길로 어떻게 가야만 하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길을 잃었는지 모르겠군.”


K 대표는 혼자 중얼거리며 폐 휴게소의 출구를 벗어나 국도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다시 하려는지 화면 정 중앙의 신호 표시가 계속 뱅글뱅글 돌면서 위성과 수신을 하고 있었다.


“아, 이런. 또 못 찾고 이러네. 너도 못 찾는 길이 있냐?”


그가 혼잣말하며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시각 검은색 SUV 차 한 대가 K 대표가 방문할 현장 가까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K 대표에게 야간에 유품 정리를 부탁한 의뢰인이 비에 흠뻑 젖은 채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그가 있는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낡아 보였다. 꽤 오래되어 보이는 기와지붕 한옥은 당장이라도 지금 내리는 비를 맞고 폭삭 주저앉을 듯싶게 위태롭게 보였다. 

그가 원하는 만큼의 땅을 다 팠는지 쌓여있는 흙에 삽을 힘차게 꽂고는 물을 마시려고 안마당으로 돌아 나와 숨을 헐떡이며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생수통의 물을 벌컥거리며 마셔대기 시작했다. 

는 50대 후반의 J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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