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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11. 2021

그녀가 그에게 오다

- 스마스 소설 -

대기업 직원 신창맹씨(新昌孟氏) 맹 대리는 희귀성씨를 사실상 자랑스러워 하는 직원이었다.

다만 그에겐 그 희귀성씨 덕분에 스트레스받는 일일 종종 있었다.


그의 학창시절 별명은 줄곧 맹한 바보의 대명사 맹구였다.

심지어 이제 서른 중반이 다 돼가는 시점에도 그는 여전히 맹구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놀림이라기보다는 친근감의 표현으로 주변 친구들이 장난삼아서 하는 거였지만 이것이 은근히 그가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특히 학창시절엔 사계절 중 겨울이 가장 싫었다.

눈만 왔다 하면 친구들이 그의 곁에 와서는 맹구 흉내를 내면서


“우와~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요~”


라고 하는 통에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나이가 들어 그런 치기 어린 말과 행동을 그가 더이상 겪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 상사들로부터 맹 씨라서 그리 맹하냐는 소리를 간혹 들을 때마다 자기 아이들에겐 맹씨 성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고 성씨개명절차도 알아보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성씨개명 전에 일단 아이가 있어야 하는데 맹 대리는 아직도 노총각 신세를 못 면하고 있었다. 명색이 일류대학 나온 학벌에 대기업 대리였지만 그가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유일한 연애라고 할 수 있는 건 오래전 소개팅으로 만난 여자를 약 한 달 정도 사귀다가 그마저도 차인 게 전부다.


그는 여자 앞에만 서면 유독 그 맹한 모습이 어김없이 드러나곤 하였다.

주변 친구들이 늘 솔로였던 그를 위해 여성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 주면 늘 첫 만남에서 그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 못 하고 끝나버리는 게 항상 안타까웠다.

친구들은 여성들이 그를 좀 오래 만나면서 그의 진국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첫 만남에서 다음번에 다시 보고 싶다는 인상을 남겨주지 못하다 보니 만남이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맹 대리의 문제는 과도한 긴장으로 인한 어색함에서 나오는 언행이 더욱 그를 맹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어색함을 깨려고 시도했던 아재 개그에 상대 여성이 도망가 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의 친구들은 일부러 웃기지도 않는 유머를 남발하지 말라 조언했지만, 그 버릇은 어지간히도 고쳐지지 않았다.


첫 만남에 칭찬해준답시고 ‘미모가 보통이 아니고 곱빼기네요’라든지 ‘저는 꿀을 참 좋아해요. 당신 얼꿀’은 그가 즐겨 사용하던 레퍼토리였다.

컨셉을 그렇게 잡고 시작했으면 상대 여성이 제대로 웃어줄 때까지 대화 중간중간 끝까지 할 일이지만 문제는 더이상 거기에서 진도가 안 나간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이왕 늦는 것 좀 더 기다리며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자만추’정신으로 그의 진가를 알아줄 여자를 느긋이 기다리라고 하며 사실상 그에게 더 이상의 만남을 주선해주길 꺼렸다.


그런 맹 대리에게 두 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그녀들을 흠모하고 있었다.


한 여성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인턴과정을 모두 끝내고 정직원으로 들어온 신입사원이었는데, 인형 같은 외모와 애교가 맹 대리뿐 아니라 많은 남자직원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또 다른 여성은 언제인지 알게 모르게 새로 생긴 회사 건너편 커피전문점 사장이었다.

삼십 대 전후로 보이는 연예인 뺨칠 정도의 미모를 가진 그녀가 만들어 주는 커피를 마시고자 저렴한 가격의 사내카페를 놔두고 일부러 길 건너 값비싼 커피전문점에 가는 총각직원들이 많았다.


당연히 맹 대리도 그중 하나였다.

이 두 여성은 총각직원들에게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그런데 많은 날이 지나도 그녀들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여러 총각직원이 번갈아 가며 물어봐도 그녀들은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말을 안 해주는 것이었다.


신입 여사원은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라고 되물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그 카페 여주인은 싫지 않은 듯 콧소리를 내며 뭘 그런 개인적인 거를 묻느냐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런 그녀들의 반응이 총각들의 마음을 더 애태웠다.

주변 동료들과 상사들은 맹 대리에게 다른 직원들이 채가기 전에 얼른 둘 다 대시 해봐서 일단 양다리부터 걸치라는 이상한 조언을 해주었다.

속된말로 재빨리 침부터 발라놓아야 누가 안 건드릴 것 아니냐는 거였다.

일단 그래놓고 서서히 상대를 알아가는 거라며 채근을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맹 대리는 사실상 불안하긴 하였다.

날이 갈수록 그녀들 주변에 총각들이 자꾸만 꼬여 드는 게 여간 못마땅한 게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녀 앞에만 가면 버벅거리며 그 맹한 모습이 되살아나와 자꾸만 작아졌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과 그런 자신의 모습이 비교되니 그는 더욱 위축되기만 했다.

그는 누가봐도 답답할 정도로 일 년 넘게 그녀들의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맹 대리가 점심 식사 후 나른한 오후를 물리치고자 아무도 없는 탕비실에 들어와 원두커피 기계에서 진한 커피를 내리고 있던 상황에 그 여사원이 불쑥 들어왔다.


“어머, 여기 계셨네요. 맹 대리님 한참 찾았잖아요!”


귀엽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가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며 정신을 못 차리던 그는 그녀가 왜 자기에게 왔는지 물어볼 틈도 없이 그녀 앞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향수인지 모를 알 수 없는 그녀만의 은은한 체취가 그의 코를 간지럽히는데 그녀가 아주 부끄러운 듯 그에게 작은 무언가를 건네주며


“아유, 부끄러워라.”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탕비실을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세상은 정말 최대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라며 그가 얼떨결에 받은 그것을 보는 순간 눈알이 뒤집히고 말았다.


바로 그건 청첩장이었다.


그녀의 신랑은 그의 후배직원이었다.

그녀가 정사원으로 입사하자마자 대시하여 일 년간 몰래 사내연애를 한 것 같았다.

맹 대리가 커피를 마셨다.

매우 썼다.

그는 머그잔의 커피를 몽땅 개수대에 쏟아부어 버리고 그 즉시 도망치듯 회사를 나와 길 건너 커피전문점으로 달려갔다.


그는 결심했다.

이 여자마저 놓치면 그는 영영 이번 생에 결혼은 포기해야 할 것만 같았다.

신호등의 적색 신호가 오늘따라 유난히 길었다.

보행신호로 바뀌자마자 그가 한걸음에 달려가 카페 여주인에게 고백 하려고 문을 거의 부수다시피 해가며 요란스럽게 들어섰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맹 대리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다 못해 지구를 날려버릴 기세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드디어 헉헉대며 그녀 앞에 섰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그녀는 너무 놀라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무, 무엇을 주문 하…….”


그녀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카운터 아래에서 웬 어린 여자아이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엄마 일하잖아. 잠시 주문받고 놀아줄게. 거기 얌전히 있어.”


“뭐, 주문하신다고 하셨죠?”


그녀의 질문에 그는 그 특유의 맹한 모습으로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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