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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17. 2021

놓으려는 손, 잡으려는 손

- 스마트 소설 -

김 부장이 점심 식사 이후 줄곧 자신의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길래 박 부장이 슬그머니 다가가 엿보니 최신형 노트북 컴퓨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성능 좋은 최신형노트북값이 상당히 비싸.”


그는 박 부장이 자신의 뒤에 와 있는 것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는 듯 여전히 자신의 모니터만 뚫어지라 바라보며 박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박 부장은 그에게 노트북을 새로 장만할 거냐고 물었으나 그는 딸아이 선물용이라고 힘없이 답했다.


“딸 선물 사주면서 왜 그리 힘이 없어. 억지로 사주는 선물 마냥.”


박 부장이 김 부장의 어깨를 한 번 툭 치며 말을 걸자 그가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 딸이 얼마 전부터 나하고 말도 안 해. MT 간다는 걸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허락 안 했거든. 더구나 올핸 타 대학 남학생들과 무슨 연합 MT를 간다나 뭐라나. 무조건 못 가게 했지. 그래서 많이 삐졌나 봐. 나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도 날 보면 그냥 ‘흥’이야.”


“아니, 김 부장 밑에 직원들에겐 안 그런데 이제 봤더니 집에선 완전히 꼰대 아녀!”


김 부장이 별말 없이 웃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MT 가는 것 허락 안 할 거냐는 박 부장의 물음에 결혼 전까지라고 말했다. 


“환장허겄네! 김 부장, 그 나이 때가 가장 예쁠 때잖아. 한창 꾸미고 밖에서 놀고 싶은 나이고, 또 남자도 마구 사귈 나이고.”


“남자는 안돼!” 


김 부장의 버럭 하는 소리에 박 부장은 다시 한번 ‘환장허겄네!’ 하였다. 


“아니 도대체 딸이 얼마나 이쁘길래 그리 감싸드나? 어디 사진 있으면 좀 보여주쇼.”


김 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휴대전화 사진 목록에서 딸의 사진을 얼른 보여주었다.


“워어매! 환장허겄네! 이게 참말로 김 부장 따~알?” 


김 부장이 흐뭇하게 웃고 있자 박 부장이 뜬금없이 혹시 국제결혼 해서 아내가 외국인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김 부장이 다시 보여준 가족 사진엔 영낙없는 한국인 아낙네가 찍혀있었다.


“이러니까 김 부장이 그리도 딸을 감싸들었구먼.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네. 남자도 좀 사귀게 하고 그러지.”


박 부장의 핀잔에도 김 부장은 여전히 마우스를 굴리며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체 그래도 자신은 결혼 전까지 딸을 자기 방식대로 보호하겠다고 했다. 

박 부장은 혹시 딸에게 통행금지 시간 있냐고 물으니 당연히 있다하며 10시까지라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딸이 그 시간을 잘 지켜준다 했다.


“참 착한 딸이긴 한 대, 김 부장 혹시 그런 노래 모르나? ‘요즘 연인들은 키스하고 시작한대 사랑을’ 걸그룹이 달링 달링 뭐 이래가면서 부르는 노래, 그런 거 못 들어봤나? 자네 딸도 요새 애들하고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야지, 안 그래?”


“거, 뭔 말도 안 되는 노래야 그게!”


“환장허겄네! 이렇게 신세대 감이 없어서야. 김 부장은 집에서 딸하고 소통 잘 안 하지? 그리 감싸들어도 요즘 것들은 자기네들 할 거 다 하고 돌아다니지. 딸이 뭘 좋아하는지는 알고는 있나? 너무 옛날식으로 교육하니 딸아이가 어디 아빠 좋다고 하겠나?”


박 부장의 핀잔에도 김 부장은 여전히 마우스를 굴리며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체 그래도 자신은 결혼 전까지 딸을 자기 방식대로 보호하겠다며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박 부장이 혀를 끌끌 차며 ‘딸 결혼하면 대성통곡할 아빠 되겠네’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도 사실 김 부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아빠 아닌가 생각해본다. 


언젠가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한답시고 동네 친구 집에 가겠다는 딸아이를 아내와 허락은 했지만 보내놓고 내심 불안했었다. 

그런데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불안한 마음을 오히려 불편해하는 것 같아 박 부장은 서운해했다. 

하지만 자녀들이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 해도 언제까지 부모 곁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를 생각하면 이제 자녀의 손을 놓아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을 또 해본다. 


자신의 딸아이도 이제 자꾸만 부모 손을 놓고 싶어 한다는 걸 박 부장도 느끼고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박 부장이 등교를 바래다준 적 있다. 

집 앞을 같이 나서는데 딸아이가 먼저 자신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정말 고사리 같은 그 손을 박 부장은 아직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먼저 잡은 그 손은 언제부턴가 아빠가 일부러 잡기 전에 먼저 잡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 언제든지 아빠 곁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이고, 그는 그러한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스스로 위안삼아본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제 결혼할 때나 돼서야 식장에 들어가면서 딸아이가 잡아주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벌써 드는것 같았다. 


잡은 손을 누가 먼저 놓느냐의 우선순위 앞에 항상 자녀가 먼저 놓으려 하는 것 같아 그것이 서운하긴 하면서도 자신도 그랬었는지 돌아가신 아버지를 잠시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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