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의 기본적으로 잘 가르쳐야 한다. 많은 시간을 수업연구, 자료연구에 쏟아야 한다. 누구보다 잘 가르치는 강사가 되고 싶어서 대치동 학원가에 들어갔다. 잘 가르치기만 하면 무조건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 들어가고 알았다. 가르치는 건 당연한 거고 그 외에도 중요한 요소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어떤 과목을 가르치는지, 누구를 가르치는지에 따라 추가적으로 필요한 능력 각각 다르다.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중등 어학원 선생님으로서 일했다.
중학생을 가르치면서 필요한 첫 번째 능력은 친화력 두 번째는 관리능력이다.내가 학원에 인정받았던 부분은 관리능력이었다. 학생관리, 학부모관리 둘 다 매우 중요하다.
작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내는 영역이 나는 관리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예시로 일상적인 성적 문자에 학생에 대한 한 문장만 넣어도 학부모, 학생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핵심은 기계적인 관심이 아니라 진실된 관심이다.
"우리 가을이가 요즘 성적으로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집에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학부모용)
"우리 가을이가 성적이 10점이나 향상했네요. 칭찬부탁드려요.^^" (학부모용)
" 가을이 오늘 표정 어둡던데 오늘은 컨디션 조절하고 푹 자요."(학생용)
다소 오글거릴 수 있지만, 진심은 늘 통하는 법이니깐
친화력, 관리능력은 충분히 노력하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팀장으로 승진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 팀장업무를 맡게 되었다. 학생 유치를 위해 설명회를준비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설명회 발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힘든 부분은 동료 선생님들과 의견 조율하며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학원강사는 보통의 조직생활과 다르게 프리랜스적 요소가 많다. 자신이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학원 규모가 커질수록 원장님들은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하기 때문에 강사들의 조직력을 요구한다.
내가 다녔던 학원도 마찬가지로 팀단위로 강사를 관리했다. 내가 신입이었을 때는 왜 이렇게 팀장님이 회의하려고 하고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는지 이해를 못 했었다. 내가 팀장이 되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멀리 가라면 함께 가라.'라는 말처럼 주변 강사님들의 도움이 항상 필요했다. 설명회 준비도, 자료준비, 교재 구성도 절대로 혼자 다 할 수 없다. 나도 강사님들이랑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회식을 여전히 싫어하는 1인이지만 회식하면서 친해진다는 말은 어느 정도는 공감 간다.노력은 했지만 나 자체가 조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이 모든 과정이 어색하고 버거웠다.
내가 생각하는 뛰어난 리더는 일을 잘하는 리더가 아니라, 직원들이 기분 좋게 일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방점은 '기분 좋게'이다. 내가 그걸 못했다. 그 시기 '리더', '말'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연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람의 그릇이란 게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작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 힘들었다.
방학 기간,학생유치를위해 선배들 관련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기획했다. 팀장인 내가 총책임자로서 진행했고, A강사, B강사, C강사에게 업무를 부탁했다. 회의에서 나왔던 내용이고 분명히 그들도 우호적으로 이야기했었는데, 막상 바쁜 상황에 업무를 시키니 그들의 불편함이 얼굴에 보였다. 유쾌하지 않은 상황임을 알면서도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냥 진행했다. 결국 우리 팀이 원했던 자료영상은 만들었지만,강사들과는 조금씩 멀어졌다.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한 명씩 각자의 이유로 다른 팀으로 가거나 학원을 이직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는 배신감도 들고 속상했다. 같이 회의하고 기획했는데 갑자기 나를 악역으로 만들었던 그들이 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