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비 Nov 12. 2021

수영 실격

성적으로 훈련한 덕에 수영 실력이 쑥쑥 늘었다. 1년 만에 마스터즈 반에 들어갈 실력이 되었고, 동호회에선  기대주가 되었다. 대회를 나가 개인 기록 경신과 메달 획득은 당연했. 실격만 당하지 않는다면.


나는 DQ여왕이었다. DQ란 Disqualified, 즉 실격을 의미한다.  대회에서 타트, 턴, 피니시 세 종류의 DQ를 받을 정도로 실격을 많이 그리고 자주 당했다. 원인은 욕심이었다. 기록에 집착하다 보니 작고 큰 실수들이 이어진 것이었다.


접영 100m는 연습하기도 벅차 완영만으로도 박수받는 종목이다. 이러한 접영 100m 경기에서 월등한 차이로 피니시 패드를 찍고도 실격을 받은 적이 있다. 


큰 격차를 벌이며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장내 울리는 함성을 들으며 두 팔을 치켜들고 신나게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숨을 헐떡이며 전광판을 노려봐도 변화가 없었다. '설마...' 하는 쎄한 느낌이 들 때쯤엔 이름 옆에 기록 대신 'DQ'란 글씨가 떠올랐다.


이유는 출수 라인 초과였다. 평상시 자신 있는 돌핀킥으로 속도를 내다 손바닥 거리 정도를 초과한 것이었. 때문에 제일 먼저 들어오고도 금메달은커녕 기록조차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또 DQ냐"라고 놀렸고, 난 속상함을 숨긴 채 멋쩍게 웃기만 했다.


혼자 속상할 해프닝이 모두에게 죄인이 되는 사건으로 바뀌고서야 DQ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동호회 언니들과 성 혼영을 할 때였다. 네 명이 친하고, 실력도 괜찮았기에 기대되는 경기였다. 더구나 같이 뛰는 네 명 중 한 언니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에이스였다.


언니는 개인 기록을 경신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단체전 이후 본인 주종목 개인 경기가 있었기에 단체전을 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언니가 함께 성 혼영에서, 나는 또 DQ를 당했다.


나비처럼 날아올라 멋지게 다이브!

처음에는 왜 DQ인지 몰랐다. 심판은 내가 앞사람이 터치 패드를 찍고 0.1초 만에 스타트했다고 다. 먼저 뛴 게 아닌데 왜 실격이냐고 묻자 심판은 "선수 반응 속도가 0.2초대 이기에 그보다 빠르면 사실상 예측 출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내가 야생 동물이라서 선수보다 반응 속도가 빠른 것이라고 우기자고 웃고 장난쳤지만, 언니는 말없이 사라졌다.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언니를 찾았을 때 언니는 울고 있었다. 언니는 개인 최고 기록을 내기 위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오랜 고민 후 팀을 위해 단체전을 뛰었다. 그런데 그 경기가 실격으로 어처구니 없이 끝이 나자 속상했던 것이다. 이 일로 한동안 언니와 관계가 서먹했고, 언니는 잠시 동호회를 떠나기도 했었다.


속상하고 미안한 일들을 겪고서야 깨달았다.

기본이 잘못된 상태에서 욕심을 부리면 나와 남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실격보다는 정당한 기록이 있는 꼴등이 낫다는 것을.


올림픽 선수들은 4등을 했을 때 노메달에 슬퍼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술수를 부리며 조급해하기보다는, 꾸준히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 역시 '빨리'보다는 '올바르게'를 몸과 마음에 새긴 채 꾸준히 노력한다면, 실력은 몰라도 태도만큼은 프로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찜찜한 승리보다는 기쁨과 슬픔의 포효를 마음껏 외칠 수 있도록, 느린 것처럼 보이더라도 체체하고 끌끌하기로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육질 여자가 어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