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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비 Oct 17. 2021

직장인의 세계 수영 대회 출전기

수영 찐덕후들이 모이는 글로벌 대회가 있다. 바로 '세계 마스터즈 수영 대회'이다. 수영에 미친 것으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실력을 겨루고 친목을 다지대회로 2년마다 국가와 도시를 번갈아가며 개최한다. FINA에서 정한 기준 기록이 있어야 참가 가능하고 퇴한 선수도 참가할 수 있기에, 승패를 떠나  '참여'해서 '즐기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대회이. 


 2019 광주 세계 수영 대회 출전하다


2019 세계 수영 대회 공고가 나온 날, 내 주변의 수영 덕후들은 난리였다. 바로 대한민국 광주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기록이 되는 사람들은 참가하고 싶어 했고, 안 되는 사람들은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 했다.


여자 접영 50m 대회에서 35초의 기록을 갖고 있는 나는 참가 기준에는 부합했. 그러나 평범한 직장인이 선수 출신이 포함된 세계 대회에 나가는 것은 민망하고 두려웠다. 뛰어난 성적을 내지도 못할 텐데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점도 탐탁지 않았다.


Fina선수 등록 비용, 대회 참가 비용, 이동 비용, 이동 시간 등을 써가며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의미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계속해서 고민만 하자, "대한민국에서 참가할 수 있는 기회인데 대신 운전을 해줄 테니 출전해"라고 등 떠미는 사람생겼다. 사람들의 응원에 힘 입어 긴 고민  2019 세계 마스터즈 대회에 참가하러 광주로 향했다.


음악인에게 뮤직 페스티벌이 있다면,
수영인에겐 마스터즈 대회가 있다


도착한 광주 국제 페스티벌 현장이었다. 가까운 아시아는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경기장 옆 축제 부스에서 공연을 보고 술과 음식도 즐길 수 있었다. 외국인을 처음 본 사람마냥 '독일인 대박 크다, 와 아프리카 사람이네!'라고 속으로 놀라워하축제 현장을 돌아다녔다.


경기를 구경하러 실내로 들어가니 70대, 80대, 9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정말 멋있지 않은가? 그 연세에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이라는 땅, 그리고 광주라는 도시를 찾아왔다는 것이.


더구나 국제 경기용 수영장 수심 규격3m이다. 이는 일반 수영장의 두 배 이상에 달한,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스타트대에서 차갑고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어 무거운 물살을 가르며 열띤 경주를 펼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80할아버지가 자유형 200m 경기를  때는 관중 모두가 숨죽여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을 보는 모든 스위머가 자신들의 미래를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터치패드를 찍을 땐 일제히 일어나 박수치고 응원했다. "Bravo!"


고령의 나이에도 타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여하는 열정이 있다는 것, 두려움을 이기고 건강한 몸으로 완영하고 수영을 즐긴다는 것. 그 모습은 감동적이다 못해 '살아 있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삶이란 젊을 때만 반짝반짝한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뜨겁고 멋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아하게 접영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각국의 수영인들과 경기를 펼치다


경기를 하러 선수대기실에 들어갔을 땐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같은 조에 함께 경기를 뛰는 멕시코, 일본, 독일, 홍콩, 한국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견제하기도 했지만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Good luck"이라 응원했다. 우리는 경쟁자이자 똑같이 수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스타트대에 올라선 순간은 정말 세계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긴장한 마음으로 출발 총소리를 듣자마자 동물의 감각을 펼치며 가장 먼저, 가장 멀리 다이빙에 성공했다. 그. 러. 나. 3m 풀이 처음이었던 나는 수영이 아니라 깊숙이 다이빙을 해버렸다. 출발선에서 15m가 넘어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만 실격을 당했다.


회사 화장실에서 몰래 유투브로 생중계 화면을 지켜보던 남편을 포함해, 응원하던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당황하 속상했던 건 멋진 경기를 펼치고 싶었던 자신이었다.


경기 후 같은 조 사람들의 기록을 보니 평상시 나의 기록보다 느렸다. 실격만 하지 않았더라면 전체 1위는 불가해도 해당 조 1위는 가능했을 거란 생각에 못내  아쉬웠다. 애써 덤덤히 사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씁쓸했다. 그래도 크게 슬프진 않았. 이날은 내 수영 역사의 끝이 아니라 과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아하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대회 이 꿈이 생겼다. 할머니가 되면 세계 수영 대회에서 접영을 하는 것이다. 대회에 나가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개인 기록신하지 못하더라도 '접영을 즐기는 할머니' 그 자체로도 괜찮다. 내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 가장 멋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아하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되려면 자연히 늙기보다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십견이 오지 않도록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하고, 세상에 나태해지는 자신을 계속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기록 달성을 위한 무리한 훈련보다는 건강하고 오래 수영하기 위해 운동할 것이다. 앞으로 나의 신체는 계속해서 늙어가겠지만, '우아하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만큼은 젊음을 유지하며 뜨겁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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