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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21. 2023

아침을 맞으며

우리는 태양이 뜨는 시각에 따라서 매일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만 번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지만, 그날이 그날 같은 똑같은 아침으로 느껴진다. 그건 딴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나 하루하루를 좀더 나은, 좀더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지나고 나면 거의 달라지지 않는게 평범한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아침 일찍 산에 오르거나 바닷가에 나가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맹세를 하기도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기도 한다. 나에게도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새로운 생의 활력을 찾으러 다녔던 추억이 있다.



내가 아직 젊었던 시절, 결혼한지 5년쯤 지나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던 어느 겨울철, 일출을 보기 위해 몇 번이나 먼길을 나섰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전라남도 광양에 살고 있었는데, 집 앞이 바로 바다였지만 해는 동쪽에서 뜨는지라 산에 가려져서,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천지가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드는 일출의 장관은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차로 1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 경상남도 남해군의 동쪽 끝으로 가야 했다. 자고 있는 아이 둘을 부부가 하나씩 들쳐 업어서 뒷좌석에 태우고 잠이 깰세라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야 했다. 그렇게 유난을 떨었는데도 일출은 우리에게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출발이 늦어서 목적지에 도착하니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갔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서 실패했다.


또 몇 년 동안은 해가 바뀔 때마다 해맞이 행사에도 열의를 가지고 참여했다. 해맞이 명소를 찾아 가거나, 일출을 볼 수 있는 높은 산에 오르는 수고를 통해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는데, 하나같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몇 차례나 허탕을 치고 나서야 나는 일출을 직접 보고자 하는 오랜 집착에서 벗어났다. 나의 의지나 행위와는 아무 상관 없이 태양은 뜨고 지는 것이다. 구름이 하늘을 모두 가리고 있어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태양은 우리에게 아침이 왔다는 사실을 밝은 빛으로 알려준다.



일출을 맞이한다는 행위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과는 좀더 나은 삶을 소망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오늘 떠오르는 태양은 어제의 태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오늘이나 어제나 둘 다 똑같은 태양이고 시간만 달라졌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하루하루도 시간의 흐름만 달라졌을 뿐이지, 일 년 삼백육십오 일 거의 똑같은 것이 아니던가?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이리저리 활동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비슷한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잠이 깨고 나서 새로운 삶에 대한 다짐을 하기 보다는, 날마다의 생활에 충실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건 내가 살아왔던 어느 특정한 시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명확한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몇 번이나 오랜 기간 동안 아침을 맞이한다는 사실 자체를 두려워한 적이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감을 잃고 좌절하던 청소년기,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잘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던 날들, 인간관계에서 빚어진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잠못 이루던 시간 등.....


그것들은 훗날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실패와 고뇌의 순간들로 볼 수도 있지만 그때는 사실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시기에는 매우 불안한 수면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잠자는 동안 수없이 악몽에 시달렸다. 그런 시기에 나는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내 인생을 되돌아 볼 때 이런 날들은 내가 살아왔던 긴 세월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로 나는 평탄한 인생을 걸어왔고, 잠을 편하게 자는 편이다. 일년 중 해가 중천에 떠오른 다음에 잠이 깨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항상 일찍 일어난다. 그런 날들은 아침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오늘 할 일이나 즐길 일들을 떠올리며 기대에 부풀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둠의 세계에서 밝음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식이다. 즉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아침은 삶의 축복이 시작되는 시간이고, 개체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출발점이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떠오르는 태양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아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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