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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photo Apr 24. 2024

마음이 아물고 나서

얼마간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애정이 흐릿한 연애를 시작하고 본 건 그 해 초여름에 있었던 전 연인과의 이별을 겪고서부터였다. 꼬인 마음을 풀려면 그 타래를 먼저 들여다봤어야 했을 텐데.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가장 센 힘으로 얼마 남지 않은 서로의 시간을 늘어지는 엿처럼 늘리기에만 바빴다. 늘어진 마음은 자기들끼리 더 엉키고 엉겨 붙어 잘라내어버려야 하는 골칫덩어리로 남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매정한 사람으로 기억되거나 헤어지자고 말해놓고선 그 말을 번복하는 사람이 될까 봐 서로에게 가위를 내밀고 또 내밀었다. 잘 보이려 애쓰던 첫 만남 때만큼이나 열심히, 나쁘게 보이려 온갖 행동을 해보아도 가위를 먼저 집을 용기까지 만들어주진 못했다. 서로에 대한 미움만큼 서로를 성실히 참아내는 데에 능했으니까. 나를 짝사랑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모른 척하듯, 관계를 끊어내려는 이의 화를 모른 척했다. 결국 가위는 그의 손에 쥐였다. 무조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서 잘린 마음의 단면도 차차 아물기 시작했다.


피부 표면에 상처가 생기면 딱지가 붙기 마련이다. 가만히 두면 새 살이 차오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딱지를 뜯어내어 빨개진 부위를 들여다보는 것은 얼마만큼의 불안한 마음에서 오는가. 실로는 괜찮아지고 싶은데 괜찮아지길 거부하며 일정량의 상처를 유지하는 것과 새로운 연애의 성급한 시작은 묘하게 닮아있다. 내게 남은 지난 사랑의 흔적을 복기하고 달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어디서 들었는지 적어도 사귄 기간만큼을 쉬어야 이후의 사랑을 잘 시작할 수 있다고도 해서 이십 대 초중반에는 그걸 그대로 따랐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해 초여름 이후부터는 연애하지 않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다. 꼭 패배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 승부 상대는 초여름의 ‘그’일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가 아닐까 한다. 내가 세워놓은 인생 목표, 그 나이에 이뤄야 할 과업 같은,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럴듯한 내가 되기 위해서 나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던 시기니까. 내 자신과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돌보지 못하고 뜨거운 공을 던지듯 마음을 얼레벌레 주고받기 바빴다.


작년 봄과 여름 사이, 어느 마음에도 끝이 났다. 몇 년째 상처가 아물려고 하면 딱지를 떼어낸 바람에 흉터가 질 것 같은 마음을 또다시 뜯어내고 싶어질 땐 반려묘 율무의 털을 쓰다듬거나 안기길 거부하는 반려묘를 기어이 품 안으로 들여와 서로의 심장을 맞대고 누워있었다. 곧바로 솜방망이에 얼굴을 흠씬 두들겨 맞았지만 그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내 마음속 공간은 만남의 광장 따위가 아니니까. 리뉴얼하는 동네맛집처럼 문을 꼭 닫고 비로 쓸고 분주하게 닦아내었고, 그동안 몇 계절이 지나 다시 봄이 되었다. 상처가 있던 곳엔 희미한 흉터가 남았지만 곧 사라질 것이었다. 어쩌다 그 자국을 웃으면서 보게 된 건 막 구워낸 수플레 팬케이크 향기가 나고 주황빛 조명이 있는 어느 카페에서였다. 내 앞에는 비슷한 흔적이 있는 사람이 앉아있었고, 그는 그 흔적을 가리지 않고선 내 미소처럼 빙그레 웃었다. 연애를 하려고 으레 해왔던 것들을 내려놓아도 되는 공기 속에서 무언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서로를 차츰 이어주고 있었다.


“밤공기도 좋은데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운데요. 같이 맥주 마시러 갈까요?“

“우와, 맥주요? 완전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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