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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먼드 마운틴 Jun 27. 2021

웃으면 전복이 온다

전복은 품격이 있어. 점잖아. 그러면서도 요염하잖아. 다 갖춘 거야.

<모안이 말했다. 나는 수놈으로 태어날 거야. 전복계의 공유처럼 멋지고 잘생긴 모습으로 태어날 거야. 내장도 버라이어티하게 만들 거야. 그래서 예쁜 암놈이 어떤 앤지 볼 거야. 로맨틱하게 살다가, 최후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선택되어 갈 거고.>     

 

성형을 해서 얼굴이 원래보다 예뻐진 여자를 봤다. 입 꼬리도 올리는 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웃으면 생각만큼 밝지 않았다. 어떤 때는 살짝 어색했다. 이건 예쁜 얼굴이라고 할 수 없다. 인사할 때도 웃는 얼굴이 있다. 안녕 또는 안녕하세요라고 하는데,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도 웃는다. 그 목소리가 전복죽의 온기처럼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런 얼굴이 예쁜 얼굴이다. 솔직히 남자인 나도 그러고 싶은 데 잘 안 된다. 웃음이 그렇게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도, 표정 없이 말하고, 표정 없이 인사할 때가 많다. 아무리 잘 웃고 싶어도,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이유가 뭘까? 복이와 친해졌을 때 복이가 말해주었다. 그건 꾸미려고 하니까 그런 거야. 아침은 언제나 예쁘지. 자연스럽기 때문이야. 나는 동창회 모임이 있었던 그날, 모안의 얼굴에서 아침의 자연스러움을 보았다. 전복이 숨쉬는 바다의 얼굴을 보았다.      


맛있는 수행자. 오늘도 나는 수족관 앞에서 전복을 이렇게 불러 보았다. 아니다. 앞에 이 말을 더 붙어야 하지 않을까. 번뇌하고 있는 맛있는 수행자. 저 부동의 자세를 보고 있으면, 고승의 기도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전복의 이런 맑고 고요한 생활이 좋다. 전복은 여유와 느긋함이 몸에 배었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평화롭게 살아간다. 필요하면 자신의 곁도 내어준다. 뒤에서 껴안을 수 있게 자신의 등(패각)을 기꺼이 내어준다. 그리고 서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의 이런 모습에서 인간은 배울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족관에 있는 이 맛있는 수행자들을 관찰하는 게, 요즘 유일한 취미생활이다. 반복되고, 지루하고, 재미없고, 고된 일상에, 전복과의 대화가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전복, 얘들도 내가 가까이 올 줄 알았나보다. 구경겨리를 선물해 주니 말이다. 오늘은 별나게, 전복들이 수족관 오른쪽 유리에 잔뜩 몰려 있다. 드문드문 퍼져 있더니 오늘따라 패각에 서로들 줄줄이 달라붙어 미끄럼틀 모양을 하고 있다. 얘들이 지금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인가. 방향을 달리해서 보면 전복 말뚝박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힘들지도 않나, 사람 같으면 질식사 내지 초죽음일 텐데, 생각만 해도 대단한 전복이다. 강력한 자석처럼, 서로 한 곳에 뒤엉켜서도 도통 움직임이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을 알 수 없는 녀석들이다. 어쩌면 사람도, 그 사람이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진짜 현명한 사람인지 모른다.  


주류에 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전복도 그런 얘들이 있었다. 말뚝박기에 끼지 못한 건지, 안한 건지, 두 마리는 왼쪽 바닥에 있고, 다른 두 마리는 수족관 앞 유리에 배를 보이고 붙어 있다. 나처럼 전복으로 요리하는 사람들은 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움직일 때는 발 역할을 해서 발이라고도 한다. 그냥 살이라고 해도 무난히 통용된다. 나에게 배를 보이고 있는 전복에게 수족관을 톡톡 두드려 신호를 보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5분 넘게 지켜봤지만 한 마리 외에 전혀 미동도 없다. 그 한 마리도 5분 동안 움직인 거리는 불과 10센티미터도 안 되었다. 와, 느려도 저렇게 느릴 수가 있나. 정말 재밌고 신기한 전복들이다.     

 

놀라운 건, 내 앞에 있는 전복이 바다의 황제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전복이 조개류의 황제(전복이 조개와 비슷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조개류가 아닌 복족강腹足綱의 연체동물이다), 패류의 황제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바다의 황제라니, 처음에는 의아할 수도 있다. 바다에서 크기나 힘을 가지고 황제를 다투었다면 이미 전복은 게임 아웃이다. 약육강식으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인간도 호랑이, 곰, 늑대, 상어에게 잡혀 먹히거나 쫓겨 다닌다. 그렇다면, 바다의 황제라고 불리는 이유가 뭘까.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오랜 시절 귀한 보양음식으로 손색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중국의 황제와 조선의 임금이 전복음식을 좋아했다. 양식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가격이 비싸서, 사람들이 평소에 사먹기 쉽지 않았다.   

   

나는 전복을 요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중국 진나라 진시황제가 끔찍할 정도로 전복을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황제다. 전복이 불로장생의 음식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전복이 먹는 다시마가 진시황제가 찾던 불로장생 음식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진시황제 말고도 우리나라 역대 왕들의 진상품으로 전복이 최고의 음식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영조대왕이 전복을 많이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의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사신 것일까.     

 

조금 엉뚱한 상상도 재미있다. 진시황제나 조선의 임금이 전복을 너무 좋아해서, 이들이 전복으로 환생해서 살았거나 살고 있다는 상상도 해본다. 환생이라는 게 정말 있다면 진시황제는 분명히 전복으로 다시 태어났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전복을 꺼내어 요리할 때마다 진시황제의 환생은 아닌지 살펴보곤 한다. 순전히 흥미와 재미로 말이다.      


다음 날, 나는 또 다시 수족관 앞에서 전복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면류관이 도대체 몇 개야.

전복이 바다의 황제라는 생각 때문일까, 예전에는 형벌처럼 보이던 전복 껍데기가 지금은 면류관처럼 보였다. 얘들은 머리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면류관을 쓴 거야. 나는 박수를 쳐주었다. 그래, 너희는 바다의 황제가 맞아. 정말 맞아. 무지개색의 면류관을 쓰고, 서로의 등을 내주며 의지하고, 촐싹거리지도 않고, 위엄을 갖추었어.

나의 호기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얘야, 너는 황제는 못되겠다. 면류관에 따개비, 석화. 이런 게 붙어 있으니까, 6두품. 6두품답게 풍상의 흔적이 인상적이네. 거기, 너는 면류관이 나름 깨끗한데, 흙이 잔뜩 묻어 있네. 그래서 진골. 너는 모양도 색깔도 귀티가 쫙쫙 흘러서 성골. 하지만 얘들아. 나는 6두품에 마음이 더 간다. 더 생기 있고, 멋져 보여.

아직도 낮을 가리는지 전복들은 나의 말에 반응이 없다.       


이제 전복의 외모를 보자. 전복처럼 섹시한 생물이 있을까 싶다. 움츠렸던 몸을 요리조리 움직이는 전복의 모습을 보면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야릇한 요염 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요염한 자태를 따라갈 생물이 없다. 바다세계의 갤 가돗(영화 원더우먼의 여자주인공)이나 메간 폭스(영화 트랜스포머의 여자주인공)에 버금가는 매력을 뽐낸다. 전복이 발산하는 섹시 미에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또 하나는 살고자 하는 생존욕구다. 온몸을 뒤틀면서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는 몸짓은 끈끈한 생동감이 있다.

그 요염한 몸짓이, 한 번 바닥이나 벽에 붙어 있으면 그 힘은 어떻고. 약한 놈은 손으로 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놈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한 떼기가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의 손이 다가가면, 자신의 몸을 표면에 더욱 밀착시키기 때문이다. 고집이 장난 아니다. 자칫 손으로 떼어내려다 날카로운 껍질에 손을 베일 수가 있으니 절대 조심해야 한다.      


얘들에게 물속을 헤엄치게 할 수는 없을까! 전복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상상도 해보았다. 비행접시가 날아가는 모습이다. 와우, 정말 멋져 보였다. 상상일 뿐이다. 현실의 전복은 어딘가에 붙어서만 살지, 절대 헤엄칠 수 없다. 지느러미가 없어 슬픈 전복이다. 상상이 현실이 될 수는 없단 말인가.       


나는 전복에게 이런 상들을 주고 싶다. 첫 번째 상은 명상의 달인상이다. 명상을 배우려면 전복을 보고 있으면 된다. 그럼 자연히 명상이 된다. 얘들은 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는 요지부동에 들어간다. 얘들을 볼 때마다 전부 명상 중이다. 단체 훈련이 잘 돼 있다. 간혹 한두 놈이 움직이는데 이 놈들도 방해가 안 되도록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나는 전북 옆에 바싹 붙어서, 이 녀석들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을 지경이다.


두 번째 상은 느림의 선구자상이다. 얘들은 느려도 보통 느린 게 아니다. 비슷하게 생긴 생물로, 거북이가 있다. 그래도 바다거북은 헤엄이라도 칠 수 있다. 전복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면 속이 터진다. 성질 급한 사람은 속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복의 느림 속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면, 그저 맛있는 음식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 상은 평화의 대명사상이다. 원래 황제라면 근심과 걱정이 많은 법인데, 얘들은 성군이라서 그런가, 서열이 있어서 쫒고 쫒기 지도 않고, 영역 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늘 평화로워 보인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인간은 둘이 있으면 그래도 좀 낫다. 그러다가 셋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누구 한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흉을 본다. 넷이 되면 편을 가르고 싸움이 시작된다. 열이 되면 편 가르기는 기본이고, 다 자기 목소리를 내서 정말 시끄러워진다. 그런데 전복은 어떤가. 하나 있으나, 둘이 있으나, 열이 있으나, 조용하다. 더군다나 아낌없이 자신의 등까지 빌려준다.      


그래, 누가 뭐래도 너희들은 명상, 느림, 평화의 세 가지 상을 받을만해. 불안에 쫓기듯이 살고, 스트레스에 자주 화를 내는 우리 인간은 너희의 삶을 철저히 배워야 해. 나는 이제 그걸 확실히 알겠어, 얘들아, 나도 전복처럼 살고 싶다. 너희들처럼 살고 싶어.

이때였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원해?

분명 소리를 들었는데, 사람 말소리는 아니었다. 고개를 좌우로 둘러보았다.

여기야. 여기 있잖아. 네 앞에.

나는 앞에 있는 수족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나에게 구경이라도 시키듯, 유리벽에 붙어 있는 전복 한 마리가 두 개의 더듬이를 길게 내 놓았다.

네가 말한 거니?

그래.

와, 이건 뭐지. 드디어 내 바람이 이루어진 건가. 전복이 말을 하다니. 네가 진짜 말한 거야?

그래.

나는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꿈은 아니었다. 나는 전복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새삼스럽게 무슨 인사를....

좀 까칠하구나. 그 안에 갇혀 있는 게 힘들지 않아?

나는 네가 더 힘들어 보인다.

하하. 그러니. 너는 어디서 왔니? 완도? 해남?

뭐 그렇게 급해. 너 성격 급하지? 많이 힘들어 보인다.

반가워서 그렇지. 그래, 너에게만 살짝 말하는데, 여기는 너무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어. 어디든 떠나고 싶어.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 생각이 맞았어. 나는 눈이 많이 나빠서 앞을 잘 못 보지만, 네가 매일 우리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말하는 걸 들었어. 그동안 너무 시끄러워서 힘들었는데, 전복처럼 살고 싶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은 거야.   

그럼, 전복처럼 설고 싶다가 너와 나 사이에 암구호였던 거야. 정말 재밌다. 하하하.

뭐가 그렇게 재밌어.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지. 내가 있던 곳은 넓은 바다야. 바다에 있는 큰 바위에 붙어서 살았어.


바위에 붙어서 살았다고? 어디 보자. 크기도, 색깔도, 곡선미도 괜찮군. 어. 정말 양식전복이 아니었구나. 자연산이었어. 양식전복과 함께 섞여서 이곳으로 왔나 보구나.

내가 쉬고 있는데, 어떤 생명체가 바위에서 나를 순식간에 떼어가는 거야. 내 자유를 도둑맞은 거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결국 여기까지 온 거야. 내가 워낙 느려서 많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바다는 여기보다 훨씬 넓고 두루두루 구경거리들도 많아. 여기는 정말 있을 곳이 못돼. 감옥 같아. 이곳에 며칠 있으면서 보니까 하나둘씩 친구들이 사라지는 거야. 그러면서 확신이 들었어. 우리를 여기에 가두어 놓았을 때는 누군가 어떤 이익을 위해서 그랬을 거라고 말이지.

너 똑똑한 전복이구나. 네 말이 맞아. 부모도 아닌데, 너희에게 먹을 것도 주고 잠자리도 제공해 주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너를 그곳에 가두어 놓았을 때는 누군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것도 그러네. 너나 나나 갇힌 신세인가.

하지만 나는 네가 더 불쌍한 거 같아. 그동안 너를 보고 느낀 거야. 맛있는 거 덜 먹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 최고의 삶은 네가 하고 싶은 일 할 때고, 최악의 삶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했을 때야. 그것을 깨달으면 하루라도 나태할 시간이 없어,


와 너는 정말 까칠한 철학자 같아. 너 평범한 전복이 아니구나.  

그런 건 모르겠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진정한 자유가 뭔 줄 아는 너 같은 종류들을 예전에 많이 봤어.

매일 그렇게 명상을 하면 다 너처럼 되는 거야? 그런데 나는 미래가 안 보여. 그게 문제야.

미래가 안 보이다니. 너는 좀 이상해. 방금 전에 네가 한 약속도 잊어버린 거야. 네가 그랬잖아. 전복처럼 살고 싶다고. 그렇게 살면 되지. 뭐가 문제야.

와, 정말 내 생각까지 들여다보네. 진짜 신기하다.

뭐가 신기해. 내가 여기서 지켜보니까, 너는 입술이 너무 못생겼어. 성질만 부리니까 그렇지. 이제 그만 얼굴 좀 치워줄래. 난 쉬어야겠어.

야, 얘 봐라. 이름이나 알자.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 존밀이야.

나는 존밀을 부르면서 수족관을 톡톡 두드렸다. 내가 수족관 앞에서 너무 오래 머물고 있자,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실장님 뭐하세요?

돌아보니 직원의 표정에서 내가 이상한 놈이 되었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점심 먹을 때 됐지.

네.

5분 넘게 쪼그려 앉아 있다가 일어났더니, 다리가 저려왔다. 수족관 덮개를 열고, 존밀의 반대편에 있는 전복 네 마리를 꺼냈다. 오랜만에 점심식사로 물회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먹이기 위해서다. 손바닥만 한 솔로 흐르는 물에 전복의 배를 문질렀다. 작은 칼로 껍데기와 내장으로부터 살만 분리했다. 이빨과 식도는 깔끔히 제거했다. 두 놈은 녹색의 내장을 가진 암놈이다. 두 놈은 황색의 내장을 하고 있는 수놈이다. 배 반대편에 툭 튀어 나온 관자처럼 생긴 부위에 두 번의 칼집을 냈다. 칼끝을 이용해서 전복을 얇게 썰었다. 이 놈들이 이렇게 또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는 구나. 최종적으로 이게 전복의 운명이었다. 이 놈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복의 맛은 어떤가. 영양도 풍부하고, 오독오독 맛있다. 남녀노소 다 좋아하고, 남녀노소에게 다 좋은 음식이다. 성장기 어린이는 물론, 다이어트 하는 언니, 산모, 기력이 떨어진 아빠, 노인들에게 탁월한 음식이다. 양식업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고가의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저렴한 가격에 전복을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전복은 다시마, 미역, 파래, 감태등 해조류를 먹고 산다. 내장에는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얼마나 신선하고 몸에 좋은지 알 수 있다. 내장이 살보다 더 영양이 풍부하다고 영양사는 말한다. 전복의 내장이 비리다고 못 먹는 사람이 있는데, 전복은 내장까지 먹어야 전복을 먹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특유의 해조류 향을 풍기는 전복 내장을 참기름소금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튀겨 먹는 걸 더 좋아한다.       


내 직업은 전복을 손질해서, 물회, 회무침, 수육, 전복죽을 만들어 손님상에 내보내는 일이다. 전복은 버릴 게 없다. 전복장 담글 때도, 껍데기를 버리지 않고 온전히 담근다. 개인적으로 된장국 끓일 때도 껍데기와 내장을 넣어 끓인다. 전복 껍데기의 경우, 예전에는 눈에 좋다고, 갈아서 달여 먹기도 했다. 지금은 전복껍데기를 분말가루로 만들어 약처럼 유통되기도 하니, 전복은 정말이지 버릴 것이 없다. 한 가지, 치설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세균이 있는 이빨과 식도, 이것만은 제거해서 버려야 한다. 회로 먹을 때는 반드시 잘라내지만, 수육이나 전복장을 담글 때는 상관없다. 내장을 보면 조그맣게 살짝 튀어나온 부분이 모래집인데, 식감에 안 좋다고 잘라버리기도 한다. 웬만하면 나는 모래집도 그대로 둔다. 먹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점심장사를 별 탈 없이 마쳤다. 점심을 먹은 후에 직원들은 교대로 쉰다. 내가 먼저 쉬러 나가면서 잠시 수족관을 살펴보았다. 존밀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는 쉬면서 존밀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최고의 삶, 최악의 삶, 죽을 때가 되어서야 행복이 뭔지를 안다 등등. 이건 분명 꿈은 아니다. 내가 환청을 들은 것도 아니다. 뭔가에 홀린 것도 아니었다.      


저녁장사가 시작되었다. 주문이 들어와서 수족관 뚜껑을 열었다. 존밀을 찾아보려고 살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추측컨대, 내가 쉬는 사이에 주문이 들어왔고, 하필 존밀이 직원 손에 잡힌 게 아니었을까. 다시 자유를 찾아 갔을 거야. 이게 존밀에 대한 내 희망이었다. 기분이 묘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신비한 경험이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녁 손님들이 오늘따라 한꺼번에 몰렸다. 정신없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다른 때 같으면 신경도 안 썼을 전화. 하지만 무엇에 이끌린 듯, 휴대폰을 들었다. 모안이었다. 다시 내려놓을까 하다가, 통화를 터치해서 옆으로 밀었다. 귀에 대자마자 들려오는 소리.

야, 도그 베이비야, 잘 먹고 잘 살아라. 너 같은 도그 베이비는 지옥에나 떨어져라. 끝이야 끝.


모안의 거침없는 쌍욕이 들려왔다. 나는 깼다. 이건 반전이다. 웃음이, 패션이, 목소리가 좋아, 모안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 뿐 아니라 정신은 얼마나 맑은지, 말하는 얘기마다 나를 자극주지 않았던가. 내 인생 최초로, 얼굴은 전복죽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까지 주었던 모안이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계속되는 욕과 함께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모안에게 나를 확인 시켜주었다. 그제야 모안은 정신을 차린 듯,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다. 나는 피곤도 하고, 시간도 늦었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해서, 거절 하려고 했었다.      


만날 거야 안 만날 거야?

모안의 재촉이 이어졌다.

응. 그래 어디로 가면 돼?

다행히 모안이 말한 장소가 가게에서 멀지 않았다.

나는 일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그래, 사람은 모두 똑같구나. 희로애락을 다 가지고 있어. 나는 모안이 왜 희와 락만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거지. 모안도 똥 싸면서 욕도 하고, 술 취해서 오바이트할 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첫인상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오늘 모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이 장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모안과 만났고, 술안주로 먹기 무난한, 횟집으로 들어갔다. 해산물 세트로 주문했다. 모안은 미안한지, 술은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 도그베이비가 직장동료인데, 3년 전에 헤어졌던 남자친구라며, 다시 만나자고 며칠 전에 연락 왔다는 것이다. 선배 언니와 통화하다가 그 도그베이비가 지금 다른 여자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양다리 연애를 하려는 게 발각되어 오늘 심하게 다투고,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웠다는, 귀담고 싶지 않은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남자친구 이름이 나와 비슷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남자친구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자연남이라고 했다. 나는 자연산이니까, 실수할만하다고도 생각했다. 전화를 잘못 거는 실수는 할 수 있더라도, 아까 전화로 들려오던 모안의 도그베이비가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좋았던 모안의 이미지가 하향곡선을 그렸다. 그래도 친구인지라 무슨 위로라도 해주어야할 것 같아서 떠오른 말이, 아픔만큼 성숙해진다,였다.       


나는 모안에게 연애 공부 했다고 생각하라며, 이건 위로주가 아니라 기쁨주라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모안이 길게 숨을 내뱉은 후, 전복을 참기름에 찍어 올리면서 말했다.

연산아, 내가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아니?

이제껏 양다리 도그베이비 얘기도 모자라 위대한 전복님을 먹으면서 이런 고리타분한 질문을 하다니,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지려 했다. 모안의 스토리텔링에 무슨 장애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모안의 다음 생까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일단 들어는 봐야했다. 설마 금수저로 태어나고 싶다거나, 아니면 은행나무, 이것도 아니라면 아리아드네라고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뭔데?  


요놈의 전복이야. 요 전복으로 태어나고 싶어.

이게 무슨 말인가. 돌발 상황이다. 전복이라고. 취해가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오늘도 전복님을 보면서 전복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모안이 전복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하향공선을 그리던 모안의 이미지가 다시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모안은 들고 있던 전복을 오독오독 먹은 뒤에 약간 혀가 꼬여가지고 말했다. 그래도 낭랑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연남아, 아니 연산아, 전복은 넓은 바다의 파도를 맞으며 조금씩 크잖아. 날름날름 하면서 말이야. 돌봐주지도 않는데, 바위에 붙어서 씩씩하게 혼자도 잘 살아가. 독립심, 자립심, 뭐 이런 게 대단히 강한 얘들이야. 그래서 전복은 외롭지 않을 거 같아. 물론 곁에 친구 전복들이 함께 있으면 더 좋긴 하겠지만.

모안은 술이 취해, 내가 연남인지 연산인지도 헷갈리는 것인가. 그건 상관없었다. 나는 정신이 완전히 깨어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모안에게 물었다.      


모안아, 무수히 많은 생물 중에 왜 하필 전복이야?  

응. 그게 말이지, 큰 고래 이런 거 아니라, 난 전복이 좋아. 고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못주잖아. 끝까지, 마지막까지 기쁨을 줄 수가 없어. 낙지, 오징어 얘들은 촐랑거리고, 해삼은 바다의 산삼이라고 하지만 징글맞아 보여. 장어는 더 능글맞지. 홍합은 좀 싸 보이고. 하지만 전복은 품격이 있어. 점잖아. 그러면서도 요염하잖아. 다 갖춘 거야. 난 여자로 태어나봐서 알아.  

내가 전복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면 모안도 놀랄 것이다. 일단 그 사실을 감추고, 정말 엉큼스럽게 모안에게 물었다.


전복이 엉큼스러운 건 아니고?

엉큼한 게 아니라 요염한 거야. 섹시한 거야. 연산아, 나는 늙으면 혼자 죽어야해. 쳐다보지도 않아.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어. 누가 내 몸을 가져다 쓰겠니. 그런데 뭐야, 전북은 늙어도 다들 좋아해. 맛있게 먹어. 완전 좋아해. 살과 내장은 먹고, 껍질은 자연으로 돌아가. 나는 수놈으로 태어날 거야. 전복계의 공유처럼 멋지고 잘생긴 모습으로 태어날 거야. 내장도 버라이어티하게 만들 거야. 그래서 예쁜 암놈이 어떤 앤지 볼 거야. 로맨틱하게 살다가, 최후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선택되어 갈 거고.

그래. 모안아, 전복 많이 먹어. 전북은 음식도 아무거나 안 먹잖아.

나는 전복을 모안 앞으로 밀어주고, 먹으라며 손짓 했다. 모안은 취해서 내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자기 말만 했다. 어떤 얘기가 더 나올지 모안의 입만 바라보았다.      

연산아, 웃으면 뭐가 온다고?

복이 오지.

아니야. 복 앞에 한 글자가 더 붙어야 해.

무슨 글자?


전복. 웃으면 전복이 와. 나는 그래. 너도 내 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매일같이 웃으면 전복이 온다고 수십 번씩 말해봐. 그럼 거짓말 안하고 전복이 올 거야. 네가 정말로 필요로 할 때 말이지.

처음에 나는 모안이 비유적 표현을 사용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에서 모안이 말한 얘기를 종합해보면,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하나는 모든 복, 전체 복, 이런 의미였다. 또 하나는 전복이 가지고 있는 특성, 즉 독립심, 자립심, 즐거움, 품격 등을 말한 것이었다. 웃으면 이런 전복의 특성이 따라온다는 의미다. 두 가지 의미 모두를 가졌다고 해야 하나. 신선했다.

모안은 나보고 많이 웃으라며, 그래야 심장도 좋다며, 무엇보다 그건 삶의 진리라며, 전복 이야기를 계속 했다. 모안이 내일 깨어나서 지금을 기억하기 바라면서.  


내가 전복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기가 없잖아. 연산아, 우리 다음 생에 전복으로 태어나는 거야. 그래서 조용필 오빠가 노래 잘하는지 들어보는 거야. 원빈이 연기 잘하는지도 보는 거야. 그때는 다른 이름 모를 가수고, 배우겠지만 말이야. 내가 전복이 되어 있을 때, 내가 있는 곳을 알려줄게. 그때 네가 찾아와. 어디든 있으면 네가 찾아와. 아니다. 장소를 정하자. 어디가 좋을까. 그래. 완도도 좋고 제주도도 좋아. 하지만 양식은 싫어. 자연산 전복으로 태어날 거야. 양식 전복은 완전히 닭장 같잖아. 그렇게 살다 죽는 건 싫어.  

이렇게 말하고 나서, 모안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연산아, 내 친구들은 전복을 보면 징그럽다고 해. 남자들은 전복을 보면 이상한 상상을 한다며, 정말 그래?

글쎄. 일단 생김새가 야릇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건 이런 거와 비슷한 거지. 너는 송이버섯 보면 이상한 상상이 들어?

내 질문에 모안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난 그런 거 없는데.

모안의 대답을 통해서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아, 역시 여자와 남자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안아, 사실 나도 전복을 엄청 좋아해. 그런데 말이지, 전복의 삶을 배울 만 하지만, 전복으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아.

나는 시치미를 떼고 모안의 반응을 보기 위해 물었다.

왜?

대부분 바다생물이 그렇지만, 전복이 체외수정 하거든.  

그게 어때서?

그 즐거운 것을 한 번도 못하고 살다 죽잖아.  


연산아, 너는 아직도 멀었어.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 만큼 해봤으면서, 뭘 거기에 집착해. 그것 때문에 전복으로 태어나기 싫다고. 너는 아직도 욕구만 생각하는 하등동물이야. 내가 지금까지 하등동물하고 얘기한 거네. 급 실망이다. 정신을 깨워. 정신을 차려.     

나는 말 빨에서 모안을 당할 수가 없다. 본전도 못 찾은 질문이었지만, 모안의 전복사랑을 끝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완도 앞바다에서 전복으로 태어나자고 했다.

모안아, 알았어. 다음 생에서 전복으로 만나면 내가 반드시 백허그 해줄게.  

와우, 역시 너는 내 친구야. 우리 언제까지나 전복을 사랑하자. 웃으면 전복이 와, 전복이.

모안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래도 오늘 전복과 대화를 했다는 소리는 차마 하지 못했다. 모안이 아무리 전복을 좋아해도, 아직까지는 너무 앞서가는 얘기 같았다. 여하튼 오늘 모안과의 술자리는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완도 바다 깊숙한 곳에 전복으로 태어난 나의 모습을 떠올려 봤다. 모안이 잘생긴 수놈으로 태어난다고 했으니, 나는 예쁜 암놈으로 태어날 거다. 일단 모안은 전복계의 공유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전복계의 에일리로 태어나기를 희망해보았다. 가수로 태어나서 모안과 전복들에게 기쁠 때나 슬플 때,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오늘 모안을 안 만났으면, 행운의 전복이 내 삶을 비켜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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