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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여행 Sep 16. 2021

Prologue

장기간 여행을 하기로 한 결심

"Who is someone you look up to?"

"존경하는 사람이 누군가요?"


뉴욕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면접을 봤을 때 받은 질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입 밖으로 나온 내 말을 듣고 오히려 내가 지금 뭘 원하는지 알게 된 경우가 있나요? 여기서 난 내 20대의 가장 잊을 수 없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여기가 IT 스타트업이어서 왠지 스티브 잡스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반대편에는 두 명의 면접관이 앉아있었다. 두 명 다 캐주얼한 티를 입고 있었는데 한 명의 팔에는 멋진 타투가 그려져 있었다.


"아니야, 굳이 IT 관련 사람이 아니어도 돼!"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꿈을 찾아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이야."


그리고 되레 면접관들한테 물어봤다. 


"너희는 롤모델이 누구니?"


그 두 명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더니

"넌 있어?"

"아니 난 딱히 없는데, 넌?"

"나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닌가. 나한테 애초에 왜 물어봤는지 의아했지만 그때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 저거였어!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자기 꿈을 찾아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이었어! 난 지금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돼!라는 갈길이 뚜렷해졌던 순간이었다.




이때 난 20대 중반으로 미국에서 돈 없는 유학생이었다. 운 좋게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를 다녔는데 3학년이 되자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점점 흥미를 잃어가 학점을 빨리 채워 한 학기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하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았던 때였다. 그렇게 졸업하고 워싱턴 D.C. 의 여성인권센터에서 인턴을 하며 취업의 문턱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미국 대학교에서 졸업하면 1년 기간의 OPT란 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계속 미국에 머물기 위해서 취업 비자가 잘 나오는 분야에서 일을 찾을 건가 아니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하나 고뇌하고 있던 때이다.


그렇게 몇 달을 이력서를 넣으면서 좌절하던 때에 왔던 단비 같은 면접 소식이었다. 운 좋게 뉴욕에서 잘 나가는 IT 스타트업 회사에서 면접이 들어왔고 난생처음으로 면접을 위해 그 회사에서 비행기와 호텔까지 다 예약해줬다. 이게 미국의 자본력인가? 어쩌면 뉴욕에서 영화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로망으로 가득 부푼 채 새 생활을 꾸려나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날 아침, 회사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나의 설렘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확 가라앉았다.


숨 막히는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 3대 앞에 앉아서 미친 듯이 코딩하고 있는 직원들, 최첨단이라는 수식어만 붙어있지 산업시대에 막 진입해서 미친 듯이 일꾼을 돌리는 공장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때는 공장에서 물품을 만들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뇌를 원천으로 삼아 서비스를 뽑아낼 뿐. 


그 순간 내가 계속 무시해 왔던 내 마음이 요동을 치면서 나를 깨우려 했다. 


"지금 너의 인생 이 시점에서 이걸 원하는 게 아니잖아!"

"내 말 좀 들어봐! 이걸 원하는지 이게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


그것 때문이었을까 엄청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4시간 동안 네 번의 다른 형태의 면접을 통해 신기한 체험을 하면서 미국 회사들이 인력을 중요시하고 또 인성과 이 사람의 철학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경험이기도 했다. 


첫 번째 면접은 두 명이 들어와서 내가 여태 어떤 일들을 했는지, 무엇을 즐겨하는지, 어떤 인생 목표와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얘기했다. 두 번째 면접은 내가 직접 앱을 구상해보는 일종의 시험? 같은 면접이었다. 칠판 앞에 서서 지금 내가 관심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앱을 한번 그려보라고 했다. 인풋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아웃풋은 뭐가 되어야 하는지. 마지막 면접은 나의 사상,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을 존경하는지 등을 물어보는 심리적인 부분이 가미된 면접이었다.




면접을 다 보고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여성인권센터 PR 부서의 디렉터가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원래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여성인권센터의 PR 및 미디어 업무를 총괄하고 계신 분이었다. 내 마음에 불을 지를 수 있게 하늘에서 보낸 천사 같은 분이자 지금도 생각하면 제일 감사한 분이다. 나한테 단독 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면접은 잘 봤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국의 NGO는 정규직 T/O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특히 국제학생한테는 기회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기에, 내가 미국에서 취직을 잘하길 바래서 친구처럼 자주 앉아 이런 얘기를 나누곤 했었다. 


디렉터한테 솔직히 말했다. 면접을 보러 들어갔을 때 그저 소를 키우는 공장 같은 느낌이었다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분위기와 사람들이었다. 내가 지금 진짜로 원하는 건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거라고 했다.


디렉터의 이 한 마디가 왜 이렇게 힘이 됐을까? 

"You're so young! Go! Go! Go travel! You need to live your life! Have fun!"

"너 어리잖아! 제발 나가봐! 여행도 많이 해보고! 인생을 재밌게 만끽하면서 살아봐!"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번에 미국을 떠나게 되면 내 발로 내 기회들을 차는 게 아닐까 같은 불안과 걱정이 말끔히 없어졌다. 그때 나는 마음을 먹었다. 여행을 갈 거다. 긴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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