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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여행 Sep 17. 2021

1. 돈이 먼저

여행 경비 어떻게 모으지?

워싱턴에서 인턴쉽을 끝내고 OPT 비자가 얼마 안 남은 상태였다. 그 당시 친구들이랑 집을 구해 살고 있었는데 월세와 생활비를 내야 되는 상황이었다. 매달 1000불, 100만 원씩을 쓰면, 만약에 10,000불을 모았을 때 6,000불이 남는데, 여행을 가서 매달 1000불을 쓴다고 가정하면 6개월을 여행할 수 있겠지? 한 달 넘는 장기 여행 그리고 또 남미는 난생처음이라 정말 단순하게 계획을 한 거 같다. 나한테 남은 건 시간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여행을 가면 시간은 돈과 반비례한다 것을 알기 때문에 좀 더 오래 머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3개월 남은 시점에서 어떻게라도 천만 원을 벌어보자라는 목표를 잡고 닥치는 대로 일을 알아봤다. 


유명한 책 연금술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When you want something, all the universe conspires in helping you to achieve it.”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


말 그대로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알바가 하나씩 계속 잡혔다. 목표를 잡은 다음날 친구랑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는 길에 초밥 뷔페집이 있었는데 창가에 알바를 고용한다는 게 아닌가. 바로 들어가서 일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사장이 중국인이었는데 대학교 때 중국어를 조금이나 배운 점을 어필해봤다. 아무래도 고용한 모든 아르바이트생들이 중국인이어서 사장 입장에서는 중국어를 조금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눈치였다. 그렇게 1차 관문 통과! 아침 9시에서 오후 9시까지 평일에 일할 곳을 찾았다. 진짜 운이 좋았던 게 뷔페식당은 식사 자체가 1인당 최소 30,000원이었는데 20프로 팁을 계산해서 한 사람당 6불 정도의 팁을 준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100 넘게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알바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 거 같아 다른 알바들을 짧게 얘기하자면 주말에는 백화점에서 악세사리 파는 판매원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온라인으로 만화 번역 알바를 구할 수 있었다.




알바는 많이 해봤지만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하는 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미국에 있는 식당들은 중국인들이 꽉 잡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은근히 차별도 있을 때도 있다. 서로 중국어 하면서 나는 잘 사는 한국에서 왔는데 왜 알바를 하고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기서 웃긴 얘기 하나,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 중에 특정 나라 사람들이 오면 여기저기 서버들이 탄식을 한다. 어디 나라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일본, 인도, 한국인이 팁이 제일 짜기로 서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팁을 잘 받아본 적은 없다. 특이하게도 중국인과 베트남 사람들이 팁을 정말 많이 줬다. 다들 요식업계를 잘 알아서 그런 건지 항상 웃으면서 20프로 넘게 줘었다. 었쨌든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서버들끼리 속으로 제발 나한테 오지 마라 빌고 있다. 


심지어 내가 한국인인걸 알면서 미국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기특하다고 한 8명 단위의 가족이 나한테 남기고 간 것은 눈물의 50센트였다. 미국의 팁 문화에 대해서 솔직히 불만은 많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때가 꽤 있었다. 


하루 일이 고됬지만, 일이 끝나고 근처 ATM 가서 꼬깃꼬깃 접힌 달러 지를 앞치마에서 꺼내 정성껏 펴서 입금하는 게 그렇게 행복했다. 통장에 꿈이 쌓아가는 게 보이는 게 이렇게 기쁠 줄이야. 목표가 있다는 게 이렇게 충만하게 느껴질 일이라는 것을 지금 와서도 두고두고 떠올린다.


그렇게 매일 100불씩, 한 달에 3000불을 벌어 3달 동안 9,000불, 거의 천만 원을 벌 수 있었다. 월세와 생활비를 빼서 내 목표대로 6000불이 어느덧 모여있었다. 


날씨가 선선했던 그 해 9월, 뉴욕에서 남미로 가는 제일 싼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콜롬비아. 편도가 200불. 그렇게 나의 여행이 드디어 시작됐다.


가끔은 계획보다도 무작정 뛰쳐나가는 힘이 필요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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