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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여행 Sep 24. 2021

3.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 좋은 생각일까?


누군가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혼자 여행을 하면 돌아다니다 힘들면 숙소로 돌아가도 되고, 아무 때나 먹어도 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한테 집중을 하게 된다. 나와 세상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걸 경험함으로써 뭐를 느끼는지 온전히 나의 오감에 신경을 쓸 수 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청춘과 사랑을 쫒아서 나를 세상에 던진 의미가 컸다. 한 아이와 롱디를 일 년째 하고 있었다. 매일 스카이프로 하루에 2시간씩 영상통화를 하며 우리의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그래서 결정했던 게 함께 여행을 가자였다.


하지만 동시에 고민이 많아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오래 떠나는 게 잘하는 짓일까? 싸우면 어떡하지? 여행하다가 헤어지면 여행 자체를 망치지 않을까? 이 사람과 안 맞는 걸 알게 되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나 혼자만의 여행을 해야지 더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사실 누군가와 여행을 하면 "우리"의 여행이 된다. 상대방을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여행이라는 일상 속에서 이 사람과 어떻게 맞춰나갈까에 초점을 두게 된다. 


하지만 장점도 많다. 음식을 시켜 먹을 때 더 다양하게 시켜서 나눠 먹을 수 있고, 공중 화장실을 갈 때 누군가 엄청난 냉장고 같은 내 60리터짜리 배낭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의외로 편리하면서도 또 안정감을 느낄 때도 있다. 힘든 산 오를 때 말동무가 있어서 좋고, 무거운 거 번갈아가면서 들어주는 것도 좋고,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다른 관점을 나눌 수도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많이 된다. 같이 지내면 숙소 비용이 아무래도 많이 절감이 된다. 저녁에 돌아다닐 때도 누군가 옆에 함께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할 때가 많다. 특히 하도 무서운 소문이 많은 남미에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하나를 가지면 두 가지를 원한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혼자 여행하는 게 나을까? 내가 지금 최고의 경험을 상대방이라는 존재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러다가 중간에 헤어지면 난 남미라는 광활한 땅을 혼자서 계속 여행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그러다가 여행 중에 홀로 남미를 여행하는 한국분을 만났다. 대기업을 다니는 30대 언니였는데 몇 년 동안 휴가일을 쌓아 그렇게 바라던 남미를 한 달 돌고 있다고 했다. 함께 페루에서 이런저런 여행을 함께 하게 됐는데 매우 인상 깊은 얘기를 남겨주고 갔다. 


여행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타이밍이 잘 맞는 때가 흔치 않다고 했다. 나 혼자서는 아무 때나 여행을 계획하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먹고 갈 수 있는데 둘이서 그렇게 시간과 경제여건 등 이 맞는 건 사실 어려운 거라고. 그래서 기회가 된다며 그 끝이 어떻게 되던 같이 하면 좋은 거 같다고 했다. 연인뿐만 아니라 친구, 부모님, 형제 등 둘 이상 가는 장기 여행은 사실 맞추기 어려운 건데.


언니가 또 이런 얘기를 했다. 20대 초반에 중동으로 여행을 남자 친구랑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남자 친구와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그래도 다시 20대를 돌이켜 본다면 그때가 기억에 제일 남고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라고 했다.


한 대 맞은 거처럼 별의별 생각을 한 내가 현재의 고마움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구나 하고 부끄러워졌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하면서 항상 머리 뒤쪽에서는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혼자 여행을 했으면 어땠을까? 더 많고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그냥 따로 여행하겠다고 선포해야 될까?


그러니까 혹시라도 너무 좋은 우연, 아니 인연으로 여행을 누군가와 함께 갈 타이밍이 오면 두려워하지 말고 갔으면 좋겠다. 




지금 와서 보니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그 풍경이 그 풍경이고, 그 바다가 그 바다고, 그 건축물이 그 건축물로 느껴지고 보일 때가 많다. 이제 와서 보니 장소보다 여행했을 때의 웃음과 따뜻함 누군가와의 담소들이 기억을 풍성하게 만들다는 걸 알게 됐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요즘 많이 느낀다. 내가 지금 어디에 살든 무슨 직장을 다니던 그 인생 여정을 누구와 함께 하는 게 내 삶의 질과 추억을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행하다가 잘 안되면 또 어떤가 싶다. 여행 중에 상대방과 안 맞아서 힘들 수가 있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후회도 될 때가 있었다. 근데 어차피 배워야 할 인간관계라면 맞닥뜨려 나 자신을 굳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거 같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안 보이던 내 추악한 모습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걸 경험하는 당시에는 고통스럽지만 그 후면에는 한층 유해진 내가 보인다. 


여행하다 보면 유럽에서 온 2-30대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한다는 친구들도 있고,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학업을 마치고 몇 개월 여행을 한다는 친구들도 있고, 직장 다니다가 지쳐 함께 온 친구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들 돈이 많아 호화로운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다. $6불 하는 무너져 가는 호스텔에서 하루 종일 빵 하나 먹으면서 그래도 좋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고, 저글링 같은 묘기를 하나 배워 길거리에서 선보이며 돈 벌어서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여행하다가 공예품 만들어 파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끔 주변에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 허락 없이 여행을 남자 친구와 못 간다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남자 친구랑 여행을 간다고 얘기하면 어른들은 수치스럽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은 거 같다. 그리고 그런 부모님한테 걱정 안 끼치기 위해서 자기만의 경험을 포기한다. 그런데 부모님들한테 물어보고 싶은 건 그렇게 통제를 한다고 해서 자식이 과연 원하는 방향대로 잘 될까이다.


만 19세가 넘으면 성인이다. 성인이면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이 따르는 만큼 자신의 선택들도 존중받아야 된다. 물론 책임을 져야겠지만. 왜 유독 남자 친구랑 여행 간다고 하면 반대를 하는 걸까? 같이 여행 간다고 해서 다 성경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안 간다고 해서 성경험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한국에 있는 숙박 시설들은 이미 다 문을 닫아야 되는 것 아닐까? 오히려 책임감이란 무엇인지 성인으로써 무엇을 중요시해야 되는지의 가치관들을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현재 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교육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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