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니다. 안심하고 적당히 풀어두고 살아도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짝 조여야겠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한 생활 이야기다. 보스턴 도심을 매일 오가며 마스크를 꼭 손에 쥐었던 게 1월 중순 무렵쯤. 아무도 쓰지 않는 마스크, 진짜인 듯 아닌 듯, 흐릿한 바이러스 시국 속에서 임산부라는 신분을 기억하며 혹여 부당한 차별당하는 일은 없을까 전전긍긍, 눈치 보며 마스크 살살 쓰고 다녔던 시절. 그로부터 꼬박 7개월이 흘렀다. 내 곁에 130일을 넘긴 아들이 바짝 붙어 자리하고 있고, 사람들과의 간단한 대화에서조차 코로나바이러스 화제가 단 한 번도 빠질 줄을 모르는 요즘이다. 한국도 잠잠한 줄 알았다가 다시 들끓고 있는 걸 보면서 새벽녘 다시금 되새기고야 말았다. There is no way we are going back to NORMAL.
NORMAL했던 일상 풍경들이 가끔 아련하게 다가온다. 1년 전 모습이라는 알림이 뜨며 과거 사진을 짠,,, 하고 보여줄 때면 종종 남편과의 첫 데이트를 했던 그날의 기억을 꺼내 두는 것처럼 짠하고 찡하다. '아,,, 이런 시절이 있었지.' 영영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의 모습들에 적응했지만 어쨌든 그 당시와 똑같은 마음과 태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결혼과 연애 이전 썸'을 상상하는 것과도 닮았다. 코로나 이전의 삶을 되돌려본다는 것은 말이다.
9월 가을 학기 개강 전까지, 몇 장의 사진을 꺼내보려 한다. 이번 학기 미국 대다수의 대학들은 리모트 클래스 개강이 원칙이다. 잠시 학생비자 정책을 뒤흔든 이슈가 '번쩍' 있었지만 To make a long story short,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거의 모든 학교들은 '대면 개강'을 자제하려 하고 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1년 전 모습이라고 사진을 짠 내놓는 걸 보니 뜨겁고도 청량했던 보스턴 늦여름 풍경들에 다시 한번 울컥. 코로나 이전 보스턴 등굣길을 되짚어 보는 포토에세이. 가을학기 온라인 개강 전까지 실컷 그리워해 보자.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옛 풍경들을.
매일 아침, 남편의 출근 시간에 맞춰 따라 나가기. 남편의 '데려다주기' 찬스권을 획득하곤 했던 가을학기 나날들. 강원영서지방 못지 않게 어마무시한 눈의 규모. 종종 눈이 많이 오면 보스턴의 대학들도 '스노데이'를 선포한다. 눈이 '정말' 많이 내리면 그날은 땡땡이 칠 수 있다는 이야기. 자칭 타칭 '집순이', 집콕생활이 좋았던 것도 잠시, 이젠 학교로 향하던 기차도, 그 기찻길 선로도 그저 그리울 뿐. 과제가 산더미, 수두룩할 땐 종종 커뮤터레일 안에서 학술논문들을 읽거나 내 페이퍼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대중교통을 타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던 그 시절.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보스턴 전철 T를 타야한다. 나는 주로 그린라인만을 애용. 우리나라 2호선과 닮았다. 오후수업만 있던 날은 학교 등굣길조차 어두컴컴. 벌써 수업 다 끝난 분위기. 여름엔 저녁9시가 다되어서야 해가 지는데 겨울엔 정반대. 오후 4시만 넘어도 깜깜해지는 보스턴 도심. 학교 건물에 들어서기 전 가장 필요한 건 무엇? 바로 카페인. 스타벅스 커피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춘천에서나 보스턴에서나 사랑. 강의실 입장 전 늘 들러야 하는 참새방앗간. 수업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면 도서관에서 유유자적 나만의 시간 갖기. 대학원 수업은 주로 저녁, 오후 늦게 가면 북적거리지 않아 좋은 여기. 살짝살짝 군것질도 허용돼서 북카페스러운. 같은 수업 듣는 친구들과 팀플. 학부 때나 대학원 때나 조모임은 늘 부담스럽지만 지나고나면 다 좋은 추억. 결국엔 혼자 하는 과제보다 꼭 무언가 더 큰 배움이 남는 작업. 하루 일정이 조금 일찍 끝난 날엔 좋아하는 보스턴 디저트 카페에 들러 남편과 같이 먹을 예쁜 디저트 픽업. 보기만 해도 설렘. 중간고사가 끝났던 날. 2시간 가량 영어로 시험을 치르고 나오면 해야할 건? 당충전. 밤9시가 가까운 시각이라 먹을 게 자몽주스밖에 없었다. 임산부 학생의 서러움. 미국에선 참 정전이 흔하다. 하굣길, 정전 때문에 출발하지 못하던 기차 안. "집에 보내줘요! 기차역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학교 가기 전, 예쁜 밥상을 차려두고 출근한 남편. 당시 입덧이 심할 떄라 전복죽과 불고기는 그저 꿀맛이었다. 중요한 발표가 있던 날이라 남편밥 먹고 바짝 힘내서 에너지 충전. 학교로 데리러 와주기로 한 남편을 기다리며. 근처 애정하는 카페에서 발표준비하던 어느 가을 날. 대학원 생활, 그 기억의 1/3은 학교를 분주히 오가며 보스턴 곳곳에서 먹은 기억들. 가장 좋아하는 카페 TATTE 점심시간, 사람 북적북적한 카페에서도 집중 잘하는 30대 언니 스타일. 이젠 붐비는 카페와 식당은 꿈도 꿀 수 없을 테지만. 대학원 마지막 학기의 시작 D-10. 모든 수업은 온라인 화상채팅으로 이뤄질 테지만 마치 학교에 있는 듯 상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