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BA하는 아나운서 Aug 27. 2020

코로나 이전, 보스턴 등굣길 (2)

사진으로 돌아보는 보스턴 유학 풍경

 개강을 딱 일주일 앞두고 있다. 매일 같은 풍경,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타국 일상인데 (특히 코로나 발 집콕 라이프가 이어지면서 더더욱이) 오늘만큼은 바깥의 늦여름 오후 풍경이 좀 더 아련하고 애틋하다. 육아와 유학을 병행을 라이프가 '느긋할 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이 참 길기도 긴 미국 특유의 학제 시스템 덕분에 출산을 하고도 장장 150일 가까이를 육아에 집중하며 보낼 수 있었다. (앗, 정정한다. 중간에 여름학기를 7주 수강했기 때문에 100일이구나.) 하지만 이제 일상의 방점을 '육아'보다는 '유학'에 찍는 시기, 그 시동을 걸 때가 찾아오고야 말았다.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오기를 바랐지만 결국엔 올 것이 왔다.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여러 가지 신호들이 있는데, 난 그중에서도 '교재 구입'을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꼽는다. 새롭게 이번 학기를 이어갈 수강과목들이 나란히 나열된 것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 가볍게 들끓는 느낌이 드는데 관련된 책을 기꺼이 사야만 하는 일련의 '의무'가 주어지면 그 설렘은 빠른 속도로 최고치를 찍는다. 책 안의 내용이 어떻든, 이 분야에서 축적해온 평이 어떻든, 원서의 압박감이 어느 정도이든, 나와 약 넉 달간 애증의 관계를 이어갈 그 책을 손에 쥐기만 해도 때론 이미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처럼 뿌듯할 마음이 떠오르는 거다. 나 이번 학기 이런 책으로 야무지게 '공부할 거야'라는 설레발 목표를 이미지로 딱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괜히 신난다. (정말 완독 할 자신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고.)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이번 학기 듣는 수업 중 하나, 교재구입만으로 벌써 기분 들썩들썩. 표지만 봐도 흥미진진해


코로나바이러스가 끌어낸 대학 사상 초유의 위기, 전 수업 온라인 리모트 클래스. (비자 정책이 잠시 왔다갔다한 탓에 기묘한 형식의 하이플렉스, 하이브리드 클래스가 대안으로 제시되었었지만 다시 완전히 '온라인 클래스'로 전환된 상태.) 불행 중 다행인지, 유학생활 중 육아를 하고 있는 내게 온라인 클래스는 더없이 좋은 형식의 수업일 수밖에 없다. 타국의 문화와 소통을 있는 힘껏 적극적으로 한정된 기간 안에 체험하고 부딪쳐야 하는 유학생의 신분으로서는 안타깝기만 한 시국이지만! 만약 이번 학기 수업이 캠퍼스에서 주 4일 대면 수업으로 진행됐다면... (원래는 당연한 거지만) 육아와 수업을 어떻게 병행할 수 있었으려나. '한다면 한다' 정신으로 어떻게든 버텼겠으나 올 겨울쯤 완전히 지쳐있었겠지.


그러나 육아맘으로서 몸이 살짝 편해진 것 빼면, 대면 개강이 불발될 수밖에 없는 이 위기의 순간들이 여전히 밉고 한스럽다. 너무도 당연했던 작년 이맘때 가을학기 시작의 순간들이 그립고 보고 싶은 8월의 마지막 주가 흐르고 있다. 작년 오늘은 학교에 있었지, 아마도? 사진으로 보스턴 등굣길의 소소한 (소박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돌아보는 두 번째 이야기. 그리고 8월 마지막 주간, 가을학기 수업을 기다리는 마음.


보스턴 작년 이맘 때 하늘. 첫 학기 시작을 앞두고 마냥 떨렸던 날. 늦여름 더위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하늘은 맑고 투명해서 힘 번쩍.
미국에서의 뚜벅이 생활은 커뮤터레일과 함께. 보스턴 근교와 도심을 연결해주는 고마운 기차. 언제 다시 타보나.
등굣길에 빠져서는 안될 귀여운 도시락. 한창 입덧이 극심할 때 새학기를 시작해서 자칭타칭 소식가인 나도 도시락을 필히 지참하고 다녀야했다는 사실. 남편이 싸준 도시락은 사랑.


강의실 필수템. 임신초기, 그 좋아하던 커피도 갑자기 싫었던 시절.
겨우 문 한쪽이 찍힌 사진이지만 '무수히 복잡한 심경'이 담겼다. 강의실에 입장 전, 매순간 초긴장. 10년간 매일 생방송 뉴스를 했지만 매일의 유학라이프가 더 바들바들 떨렸다는.
그래도 이런 도서관 비밀 스폿은 그야말로 힐링. 힘들 땐 잠시 앉아서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고.
그 어느 가을날, 보스턴 메트로 신문에 소개된 영화 기생충. 괜한 뿌듯함에 당당히 거머쥐고 룰루랄라.
등굣길 아이템 2. 임신 중, 시큼한 게 당긴다는 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와 등굣길을 함께해준 필수 간식들. 지금은 별로 안당기는데 신기하다. 이런 인체의 신비 같으니라고
일주일 중, 공강시간이 무려 6시간이나 나는 목요일. 근처 영화관에 총총 들러 살짝 혼영 놀이.
가을 햇살 받으며 등굣길. 책을 한 가득 낑낑 이고지고 숙연한 마음으로 학교 향해 고고. 마음 속으로는 늘 같은 말을 되새기며...잘하자. 잘 해낼거야. 그럴 수 있을거야.
좀 일찍 집에 도착한 날엔 룰루랄라 "이따 남편이랑 뭐 만들어 먹지?" 생각뿐. 무슨 수다를 떨면서 이 가을날의 오후를 보내볼까. 남편은 유학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지원군.
입덧도 힘들고, 안 익숙한 학교도 힘들 땐, 에라모르겠다 카페행.
마음이 힘든 날, 몸이 고단한 날엔 굳이 한국 냄새 팍팍 나는 한국형 카페를 찾아서! 오해마세요. 여기 보스턴 맞습니다.
격렬한 팀프로젝트의 흔적. 언젠가는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자극이 되어줄 것을 알기에.
교수님을 기다리는 순간들. 교수님, 오늘은 말 아주 조금만 천천히 해주세요. 소심하게 바라보는 수업 전 작은 기도.
작년까지만 해도 이 미니 손세정제는 그저 커플 장식품일 뿐이었는데... 1년동안 무슨일이 있었지?
토요일 오전, 안방에 누워 과제하기. 과제의 필수템은 과자라 하더라. 비루한 언어유희.
과제하다 지칠 땐 예쁜 디저트로 당보충. 살이 찐대도 난 몰라. 유학이 내게 남긴 게 셀룰라이트와 켜켜이 쌓인 지방이라 할지라도.
입덧 한창기 등굣길엔 꼭 5달러어치 귤 한봉지를 꾸역꾸역 가방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던 비밀스러운 추억. 가방을 여니 귤만 보여서 민망했던 기억은 덤. 임산부 유학생의 비애.
학교로 향하던 길 야금야금 사먹던 별다방 라떼, 그 달콤씁쓸한 추억도 이번학기는 굿바이. 집에서 캡슐커피 내려먹으며 수업들을 작정.
학교를 향해 달리는 보스턴행 커뮤터레일, 기차역
커뮤터레일과 전철 타고 창밖을 내다보던 재미. 이번 학기엔 누릴 수 없겠지만... 고이고이 마음에라도 이 풍경 담아두기.
코로나가 바꾼 유학 풍경. 그 흔한 가을 낙엽도 마음껏 밟을 수 없어.
몸은 집에, 마음은 캠퍼스에. 온갖 집중력은 인터넷에서 짠짠.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들을 내 지정석, 우리집 테라스.
집콕하며, (육아하며) 미국 유학 해봤나요?
이전 26화 코로나 이전, 보스턴 등굣길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