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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Sep 04. 2020

미국 유학, 테라스 개강

미국 유학 + 미국 육아, 두 마리 토끼 잡기

이런 풍경이 진짜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고 하지만,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 미국 유학 중 이토록 믿기지 않게 현실로 파고들었다. 미국 유학을 준비한답시고 생방송 틈틈이 토플 시험공부에 올인하던 때나, 작년 이맘때쯤 긴장감 한 보따리 이고 지고 첫 등굣길에 나섰던 그날에나 '팬데믹'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게 일상이 된 하루를 그 어느 누가 감히 그릴 수 있었을까. 올해 초, 봄학기를 시작하면서 마스크를 써야 하나, 써도 되나, 안 써도 괜찮은가,,, 긴가민가의 심정으로 강의실에 들어섰었는데, 결국엔 올 가을 학기, 우리 집 테라스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마스크 필수 착용의 날들이 이어지는 일상, 학교를 가기 위해 보스턴 전철을 탈 필요도, 우버나 리프트를 애써 부를 일도 없어진 셈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교통비를 아끼게 된 건 반가워 해야 할까.

미국유학을 집안 테라스에서 시작하는 학기.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일명 테라스 개강.


마스크를 꼭꼭 챙겨 써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날들이 반복되고 있다. 고로 가을학기 개강 역시 각자의 집에서 맞이하게 된 오늘, 교수님도 학생들도 화상회의 앱 ZOOM을 이용한 강의는 여전히 어색하고 머쓱하다. 누군가는 접속만 해둔 채 다른 웹사이트를 뒤적거리며 딴짓을 할 테고, 또 누군가는 랩탑 아래 핸드폰을 깔아 두고 메신저 메시지를 뒤적거리고 있을 테지. 아무래도 강의실에서보다 멀티 플레잉이 좀 더 쉬어진 환경, 집중력을 바짝 죄어보려고 안간힘을 써보는데 제 아무리 힘을 줘도 틈틈이 시선은 분산된다. 강의를 듣는 사이, 아기가 심하게 보채면 어떡하나 자꾸만 불안 초조. 바이러스로부터 최대한 안전히 우리 각자를 방어하고 보호하자는 취지인데 집콕 수업, 수업 효율을 높이는 면에선 학생들 열이면 열, 안전하지 않은 듯.


나의 테라스 강의실은 보란 듯 실패했다. 신선한 기분으로, 상쾌한 마음으로 가을 학기 첫 시작, 에너지 업 해보고자 의기양양 집 테라스에 나만의 강의실을 차려두었던 것. 내 호기로운 전략은 개강 이후 일주일을 채우기도 전에 훠이훠이 힘을 잃었다. 해가 너무 일찍 저물었고 (저녁 7시 10분쯤) 생각보다 바람이 찼다 (벌써 9월이랍시고). 그리고 결정적 한방, 정체모를 벌레들에게 무방비 노출되어버리는 야외 수업의 맹점. 아아, 미국 대학원 마지막 학기의 첫날부터 한국판 '버물리'를 찾게 생겼다. 허벅지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는 사이, 심지어 눈앞에서 다람쥐도 뛰놀던 걸. (너 청강 허락은 받은 거니?)


저녁 6시부터 꼬박 3시간 이어지는 수업, 집콕 강의라고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미국에 와서까지 원격 강의 듣는 것도 심드렁한데 '야외수업'으로 힘 좀 얻어보려다가 벌레만 왕창 물린 날. 빨갛게 달아오른 살갗도 간지럽고, 현장수업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도 마음이 간지럽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 아래 몇 달째 모든 게 집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대부분의 것들에 그저 간질간질할 따름이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예기치 못한 손님까지 '청강생'으로 등장. 다람쥐가 희번득 나타나서 놀랐던 순간.



미국 유학과 미국 육아,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 잡기. 대학원에서의 수업은 졸업 전 마지막 학기지만 육아와 유학을 실전 병행하는 본격 첫 학기이기도. 육아맘으로서 강의 들으러 학교까지 안 나가도 되는 거니까 ZOOM강의는 매력적. 오며 가며 길에서 시간 낭비 안 해도 되니까 그런 면에서도 상당히 효율적. 하지만 집콕 육아와 집콕 유학, 수업에도 육아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면에서 어쩔 수 없는 혼돈의 심경이 노트북 위로 번져 오르는 순간들. 오늘부터 이러한 혼돈은 14주를 꼬박 이어가겠지. 반갑지 않은 뉴 노멀의 일상에 꾸역꾸역 적응해야만 하겠지.


모두가 팬데믹의 '종료'를 원하지만 'DELETE' 버튼을 시원스레 눌러주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수업을 들으면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것만큼이나 누를 수 있는 자판을 꾹꾹 눌러가며 바이러스의 종식을 선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홉 달 가까이 이어져 온 쉽지 않은 순간들은 미국 유학의 마지막 학기, 그 새로운 출발의 시점에도 또다시 잔혹하게 피어오르고야 말았다. 테라스에서 그럴듯하게 '소풍' 가듯 수업을 듣겠다는 의지는 산산이 흩어지고 일찍 해저문 하늘만큼 마음도 깜깜하게 저문 느낌.


한밤중을 향해 달려가는 시각. 결국에 집안으로 컴백. 야심찬 테라스 수업 기획은 이렇게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가을 겨울에 접어들수록 해는 더 짧아질 거고 하늘은 더 일찍 어둑어둑 해질 테지. 그래도 종강 지점쯔음에 마음은 거꾸로 조금이라도 환해지길 바라는 바. 팬데믹 '종결'은 멀었을지라도 '완화'와 '둔화'와 같은 소멸로 향해가는 어휘를 자주 언급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 그럴 수만 있다면 미국 유학을 ZOOM으로 버티고 있는 날들에 대한 마음도 조금은 밝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상상만큼은 꼭 현실이 되기를 바라본다.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되듯이 말이다.


엄마 수업듣는 거 기다리다가 지쳐 잠든 아들. 네가 자라서 대학원에 가면 엄마의 고충을 이해할까.


하루하루 아기가 자라나듯, 저도 한발짝 한발짝 걸어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꿈, 구체화된 목표를 향해 묵묵히 뚜벅뚜벅
인생 제2막 마흔열기. 이제 5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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