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 미국 육아, 두 마리 토끼 잡기
"여긴 마스크 쓰는 사람 단 1도 없어"
"한국은 점점 심해져서 어떡해.
여긴 괜찮은 것 같은데"
불과 2,3주 전의 이곳에서의 대화는 이러했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에서 지낸 지 이제 갓 2년 차. 한국에서 하루가 다르게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때, 이곳은 평온하다고만 생각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 걱정은 늘 이어왔지만, 실제로 이곳에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막연한 공포이다 보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그저 먼 이야기 같기만 했다. 말만 들어도 그 전파력이 무섭기는 하다만 나의 일은 아닌 이야기.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대중교통시설에서도 그 누구 하나 얼굴에 마스크를 얹어두지 않은 일상. 여긴 심각하지 않을 줄만 알았고, 이곳은 안전지대라는 착각이 번져왔다. 혹시 몰라 들고 다니던 일회용 마스크도 가방 깊은 곳에서 잊힌 지 오래. 하지만 그쯤 해서 다시 시작된 공포.
마스크나 손세정제는 이미 실물을 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혹시나 해서 아마존에 '핸드 새니타이저'를 검색해보니, 작은 500밀리리터 세정제 한 통이 300달러가 넘게 책정돼 있고, 그마저도 4월 이후에나 배달이란다. 다행히 지난 겨울 한국에 잠시 다녀오면서 별생각 없이 챙겨둔 미세먼지 마스크가 몇 장 있고, 며칠 전 혹시나 해서 사둔 손세정제가 몇 통 남아있다. 슬슬 불안해진다. 손만 열심히 씻으면 된다는데, 진짜로? 한국만큼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거리의 사람들이 괜히 밉상스럽게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상황이 심상치 않다 싶어서 혼자서라도 마스크를 꼭꼭 챙겨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보스턴 도심을 전철로 매일 오가는 유학생 신분이다 보니, 더 조바심이 난다. 사람 빼곡한 공공장소는 피해야 한다는데, 특히나 임산부는 고 위험군으로 분류돼 더 조심해야 된다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태평한 보스턴 도심 분위기에 오히려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 아무도 심각하지 않은 거야.
처음에는 혼자 마스크를 쓰는 상황에 혹여 인종차별을 당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눈치를 봤는데, 이젠 오히려 내가 남들에게 눈치를 주는 상황이 됐다. "왜 당신들은 이렇게 천하태평인 거죠?" 이곳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지대라서가 아니라, 그저 '알려고 하지 않는, 심각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전해 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늘 기준 (10일 오후) 매사추세츠주의 확진자는 92명이라지만, 검사 자체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고, 미국 보험제도의 특성상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들이 이미 많다. 보이지 않는 확진자는 훨씬 많을 듯싶다.
몇 시간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위험상황 긴급 선포에 이어 학교에서도 긴급 메일이 왔다. 올 것이 왔구나. 내가 재학 중인 학교를 비롯해 보스턴 및 인근 지역 대부분의 학교들이 지금 봄방학 기간인데, 그 기간을 연장한다는 것. 그리고 그 차후의 수업 방식은 온라인 클래스로 대체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것. 학교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었다. 대부분 기업들의 국내외 출장을 지양하라고 권고하고 있었고, 웬만해서는 person-to-person interaction을 피하고 telecommunication을 적극 활용하란다. 학생의 입장에서 봄방학 기간이 연장된다는 사실 자체는 첫 순간 참으로 좋았으나, 정말이지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구나! 불안해진다. 보스턴 이곳도 심상치 않아지고 있음을 직감했던 마음이 '진짜'였음을 확인받고 나니, 말문이 턱 막힌다. 모든 위험상황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 만삭의 임산부이기에 더더욱이.
이곳은 앞으로가 걱정이다. 이렇게 번진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결코 착용하지 않는 분위기이기에! 알쏭달쏭한 건, 길거리에 아무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없지만, 어디서에도 마스크 구입은 할 수 없다는 사실. 공식적인 권고대로 생일축하쏭을 두 번씩 부르며 충분히 손을 깨끗하게 씻는 데라도 집중하려 하지만, 손 세정제를 꼬박꼬박 챙겨 다니지만, 그마저도 불안하다. 매일 드나드는 캠퍼스에는 정말이지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유학생들이 함께 마주하고 있고, 심지어 봄방학 기간이다 보니 또다시 국내외 각지로 여행을 떠난 친구들이 많다. 세계 각지로 또다시 퍼져나간 학생들이 다시 캠퍼스로 모여든다면? 수업시간 다시 얼굴을 맞대고 토론을 해야 한다면? 아, 정말이지 불안하다. 공식적인 휴교령이 좀 더 길어지기를 바라볼 뿐.
공식적인 확진자 수는 이곳보다 한국이 월등히 많겠지만, 검사와 확진자의 이동경로가 비교적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에는 긍정적인 한 표를 던진다. 병원 자체에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곳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예민함마저 떨어지는 전반적인 도시 분위기.
검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아직 캠퍼스에 확진자가 없으므로 우리의 위험도는 낮다고 단정 짓는 캠퍼스 당국의 목소리까지 겹쳐지니 불안감은 더 샘솟을 수밖에. 타국에서 만삭의 라이프를 있어가고 있는 유학생은 그저 모든 게 '위기'로 느껴진다. 당장 봄방학 이후의 수업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단은 오늘, 내일의 집콕 라이프에 감사하며. 무사히 이 모든 상황을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기를 바라보며. 내 유학, 내 육아, 모두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