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 미국 육아, 두 마리 토끼 잡기
* 어문규정 외래어 표기법상 ‘라테’가 바른 표현이지만, 최근 ‘라떼는 말이야’ 트렌드를 반영해 ‘라떼’라고 글에 담았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라떼는 말이야. 이것보다 훨씬 더 바쁘게 일했어."
"라떼는 말이야. 위에서 뭘 시켜도 딱히 불만 없었는데, 어휴, 요즘 친구들은 엄살이 좀 심한 것 같아."
방송국에 다니다 보면 일이 몰리는 시즌과 일이 조금 덜 바쁜 시즌이 있기 마련이다. 지역 방송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이 두 종류의 시기가 빈번히도 교차했다. 회사 여자 아나운서가 혼자다 보니 때때로 억울하리만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독박 뉴스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각종 스폿이랑 프로그램 내레이션도 10년간 막내 자리인 내 차지. 하지만 심드렁한 볼멘소리가 새어 나올 만하면 저 위 부장급, 국장급 선배님들로부터 이런 소리가 스멀스멀 흘러든다. 고소한 '라떼' 냄새가 곁들여진 채로. "라떼는 말이야... 이것보다 방송이 훨... 씬 많았다고. "
내가 한창 네 나이 땐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이른바, 라떼 타령. 회사에 다니질 않으면 접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나보다 연차가 낮은 후배가 입사했을 때 주절주절 추억 이야기를 하다가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새 풀어두게 될 것 같은 그 '라떼' 시리즈. 나는 '꼰대' 선배 아니거든? 나는 다른 부장님들처럼 옛날엔 이랬다우 저랬다우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거든? 자신만만 다짐해두려는 작은 시도들.
하지만 이내 직속 후배에게 따뜻한 조언을 해준다는 이유로 옆에 바짝 다가앉아서 시작하게 될 것만 같은 그 이야기.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퇴사하고 한국을 떠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라떼' 비스무레한 타령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미국 유학생의 'Latte is...'
미국 대학원 생활, 세 번째 학기를 막 끝낸 시점. 지난 가을 학기, 봄학기, 그리고 이번 주 끝난 여름학기까지 지내오면서 현장수업이든, 온라인 수업이든 늘 함께하고 있는 수업 동기들은 적어도 나보다 10살 정도 어리다. 존댓말 문화가 없고 상대방의 사생활을 굳이 깊게 알려고 드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나이에 대한 이 대단한 격차도 한 학기가 거의 지나서야 우연히 알게 됐다. (나랑 다 비슷비슷한 줄 알았지.)
이곳에선 '나이'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기가 다반사. 서로를 소개할 때도 결혼 유무나 30대 진입 여부를 캐묻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수업 듣는 학생들의 나이를 알고나서부턴 나도 모르게 '선배'가 된 것마냥 다소 어린 친구들의 '옥에 티'를 집어내게 된 것.
아니 요즘 애들은 왜 이래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가
애들이 촘촘하질 못해
유학생의 ‘라떼’ 타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국 대학원에 진학해보니 한참 전 학부 때와 마찬가지로 일련의 조모임 프로젝트도 꽤 많이 진행되는 편이었다. 지난 학기에도 팀 프로젝트를 꾸리고 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교수님의 제안 아래 주제를 정하고 예닐곱 명의 동기들이 한 팀으로 묶인다. 각자 맡은 파트에 대해서 일요일까지 팀 페이퍼 초안을 써보자고 제안했는데 알겠다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은 시큰둥한 표정들.
아니나 다를까. 일요일 밤까지 함께 보고서 진행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한 단체 메신저 창이 아주 조용하다. 마감일도 얼마 안 남았는데 다들 평온해 보이는 건 왜지? 나만 이렇게 조바심이 나나. 괜한 짜증에 혼잣말로 볼멘소리.
어우, 진짜 요즘 애들 왜 그래.
나 때는
이렇게 늘어져 살지 않았다고.
각자 맡은 부분에 대해서 서로 진행상황을 브리핑하려고 모인 자리. 서로 리서치한 자료들을 부지런히 공유하고 각자가 생각한 바를 나누는 시간.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 때마다 자꾸만 다른 친구들의 발표에 내가 '토'를 달게 되는 양상이 펼쳐진다. 다들 제 몫의 과제를 해오긴 해왔는데 뭔가 구멍이 숭숭 뚫린 듯 설렁설렁 엉성한 느낌이 곳곳에 드러난다. 아니, 이건 팀플이잖아! 잔소리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네. "그런데 말이야. 이건 좀 더 자료조사가 보완돼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 이건 너무 근거가 빈약해.", "오, 이건 신선한 시각인 것 같아. 자료조사 잘했네. 나한테 좀 더 설명해줄래?"
물론 다 같이 토론하라고 주어진 자리니, 서로의 생각에 의견을 덧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왠지 내가 말할 땐 아이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자꾸 '지적'하는 뉘앙스가 겹쳐진다. "나라면 이렇게 할 것 같은데... 이렇게 좀 더 조사해보면 어때?" "교수님이 이런이런 의도로 이 과제를 내주신 것 아닐까. 좀 더 깊은 조사가 필요할 것 같은데.", "네 의견은 좋긴 좋은데 주제에서 좀 빗나간 것 같지 않니?" 좀 오랜 사회생활 탓일까. 같은 과 동기들의 시선에 자꾸 '선배' 프레임을 얹어서 말을 하고 있는 것. 왠지 선배나 조교가 학생들 모의 발표에 첨언하는 것 같은 느낌? 자꾸 이런 분위기가 반복되자 동기들도 마치 내 앞에서 모의 발표를 하는 것마냥 조심조심 입을 떼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나 기다리는 느낌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나이 탓인가 봐.
영어는 유창할 리 만무한데
자꾸자꾸
라떼를 외치는 모양새라니
재밌는 건, 이곳이 미국이라는 것. 서른네 살이 되어서야 처음 해보는 유학생활. 영어는 당연히 유창할 리 만무한데 학교 밖에서 일을 꽤나 해봤다는 이유로 동기들의 행동과 의견 하나하나에 '어른'의 시선을 담아 잔소리를 뱉고 있다. '사회생활 경험자'의 근성으로 자꾸만 '라떼'를 외치고 있는 모양이라니. 같은 조에 속해있는 친구들은 또 얼마나 웃길까. "우리 조에 재밌는 유학생이 있어. 영어는 서툰데 지적은 또 엄청해. 예전에 일했던 거 사례 들먹이면서. (물론 이렇게 이야기는 안하리라 내 친구들 믿어보지만...)
어쩌면 좋지. 영어를 버벅버버벅 거리면서라도 라떼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만 같다. 어떤 것에든 경력과 연륜이 보태지면 고소하다 못해 꼬릿 꼬릿 한 우유 가득 담긴 라떼를 부정할 수 없는 걸까. 유학생활은 지극히 초보인데 1년 2년이 쌓여 자그마치 10여 년 방송일을 하다 대학원에 가니 갓 학부를 마치고 온 친구들의 시선이 파릇파릇 ‘새싹’인 것만 같다. 자꾸 덜 자란 나무가 새싹보다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스스로 '꼰대 라떼'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
그래도 얘들아. 라떼라떼 해가면서 잔소리 섞으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얘들아. 가끔 너희들의 과제에 덧대는 이야기들, 나이 많은 이 언니, 이 누나의 잔소리도 맛있게 음미해주렴. 너희들도 내 나이가 되면 '라떼'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