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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Sep 14. 2021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스카’ 갑니다

부캐는 미국 엄마 (7화)


“어머, 나랑 똑같네”

몇 주 전,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을 보면서 내심 반가웠던 순간이 있었다. 배우 박하선 씨가 아이를 등원시킨 뒤 어디론가 총총 향하는 장면. 풀메이크업 상태도 아니었고 공식적인 일정을 행하기 위해 드레스업을 마친 모습도 아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여대생 같은 모습을 하고 발을 디딘 곳은 바로 ‘스터디 카페’. 과거로 따지면 독서실과 같은 공간, 요즘 트렌드에 맞춰 카페 같은 분위기로 탈 바꿈하고 있는 ‘구, 독서실’들이 많아지고 있다. 공간의 목적을 암시해주는 듯한 명사 ‘스터디’가 앞에 악센트를 주듯 붙어있지만 사실 시험공부 같은 ‘공부’만 하는 공간은 아니다. 박하선 씨처럼 때때로 온라인 장보기부터 유튜브 감상, 시시각각 필요한 정보 구글링까지 많은 일들을 이곳에서 ‘밀도 있게’ 해결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구, 동네 독서실, ‘스카’가 많아지고 있다. 중고생과 대학생, 고시생 등등이 주를 이루지만 실은 육아맘에게도 중요한 곳.


한국에서 아기를 어린이집 보냈던 기간, 나는 스터디 카페 (줄여서 ‘스카’)에 발도장을 찍었다. 아니, 마치 출퇴근하듯이 일련의 회사처럼 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같은 시간 입실해 같은 시간 퇴실하는 일상을 반복했으니 회사를 다녔던 지난 시절과도 다를 게 없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스카에 들어가면 9시 30분, 아기를 하원 시키기 위해 서둘러 나와 어린이집에 다달으면 3시 30분쯤. 아나운서로 일하던 내내 12시 출근해 생방송하고, 뉴스 마치고 9시 퇴근하는 12 to 9 루틴을 살아냈던 걸 생각한다면 업무를 위해 특정 공간에 머무는 시간만 좀 줄었을 뿐이다. 9시간에서 6시간으로.


대부분 미국 박사 대학원을 지원하기 위한 공부를 했다. 지원자격을 갖추기 위한 공식 시험, GRE를 치르기 위해 영어공부와 (철 지난) 중학교 수학 공부를 번갈아 했다. 때론 미국 석사 시절 교수님과 함께 진행하는 리서치의 보조업무도 수행했다. 미국 언론학회 (AEJMC)에 제출할 내 리서치를 진행해 논문을 제출해보기도 했으니 돌아보자면 뿌듯한 ‘근무 현장’이었다. 물론 나 역시 아기 필수품을 새벽 배송 예약해두기도 하고 블로그의 육아정보도 틈틈이 읽었다. 오디오 플랫폼 클럽하우스에서 영어로 하는 아기 동화구연 콘텐츠를 흥미롭게 경청하기도, 아기 첫돌 파티를 계획하느라 이곳저곳으로부터 산더미같이 날아들어오던 이메일에 꼼꼼히 답신하기도 했다.


스터디 카페에서 해낼 수 있는 일들은 가히 무궁무진.


코로나 때문에 어딘가 공공장소에 짧지 않은 시간 머무는 게 처음엔 마뜩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스카’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카페가 아니니 마스크 필착이 제1의 원칙. 누군가와 자리를 공유해야 하니 소독제를 상시 휴대하고 다녔고 최대한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기 엄마로서 늘 생활 속 방역수칙 지키기에 초예민했기에 나 홀로 마스크 두 장씩 겹쳐쓰기 기술을 발휘했던 순간들. (고백하건대 때론 세 장을 겹쳐 쓴 적도 있다.)


그럴 거면 그냥 집에 다시 와서 공부하지 왜 그리 호들갑 (?) 이냐는 비판을 받을 법도 하. 지. 만… 아이를 등원시켜본 자는 알 것이다. 집에 와서 엉덩이를 잠시 붙였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코앞이라는 것을. 육아와 집안일은 ‘케바케’ (경우마다 다름), ‘사바사’ (사람마다 다름)이겠으나, 내 경우, 집에 오면 그냥 ‘쉬고 싶은 마음’에 주저앉게 될 때가 잦았다. 집에 ‘주저앉을 게’ 아니라 내 목표와 꿈을 다잡고 ‘바로 앉아야’ 했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집 5분 거리의 스카는 최고의 파라다이스. 혹시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거리라 심리적 불안감도 덜했다. 원래는 안된다는데 내 공부하는 사정을 들으신 스카 사장님께서 친히 직원용 주차자리도 내어주셨다. 월간 주차권을 사야 하는 회사도 있을진대 주차비까지 지원해주신 셈이니 이보다 더 좋은 육아맘 업무 공간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스카 사장님 만세, 이 기회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루틴의 기록. 마치 아나운서 출퇴근하던 시절만큼이나 규칙적이고 단정했던 일상.


‘키카’ 아닌 ‘스카’로 향하는 엄마들의 발길이 좀 더 많아질 날을 상상한다. (물론 코로나 시국이 진정세 국면에 접어든 뒤 얘기다.) 아기와 함께 추억을 쌓고 웃음을 나누는 키즈카페 공간도 소중하지만 아기가 잠깐 내 곁에 부재하는 틈엔 ‘엄마’인 내가 꿈을 쌓고 내 삶의 가치관과 내 목표, 내 업무를 나눌 공간도 필요하므로. 아, 물론 그곳에 앉아 나처럼 영어공부나 수학 공부를 악바리처럼 다 같이 해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누군가는 엄마 본인의 마음관리를 위한 독서를 할 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코로나 시국 이후의 가족 여행을 꿈꾸며 여행 블로그를 탐독하고 있게 될지도 모를 일. 가벼운 잡지를 읽어도 좋고 앱에 접속해 보고 싶기만 했던 영화를 ‘집중력 있게’ 스트리밍 해내기도 딱일 거다. 중요한 건 ‘나를 위해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일.


미국 우리 동네에도 엄마들이 자주 찾기 좋을 ‘스카’가 있다면 좋겠다. 집에서 걸어 5분 거리라면 더 좋겠고… 물론 이 넓은 땅, 미국 내에도 공동 업무공간 형태의 사무실 공유 시스템이 운영되고는 있을 거다. 하지만 코시국 이후 빈번해진 ‘재택근무 (work from home)’ 직원들을 겨냥한 형태일 테고 좀 더 캐주얼한 느낌의 ‘구, 동네 독서실’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러자니 비용도 꽤나 상당할 테고). 그렇다고 일반 카페를 스카의 대체제로 찾자니 낯선 언어와 문화가 오히려 더 소란스럽게 느껴질 것만 같아 ‘몰두’와 ‘집중’은 아마도 불가능하겠지 싶다. 당연히 맘 놓고 수 시간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니 이 옵션은 패스.


이 글을 쓰는 내내 괜히 한국 엄마들이 샘나기 시작한다. 요즘 한국에는 한 동네에만도 건물 하나 건너 마다 스카가 어찌나 많던지! 부럽다. 다시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보낸대도, 나는 아마 같은 일상을 데자뷔처럼 반복할 것 같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꿈을 놓지 않아서 ‘행복한 엄마’ 곁의 너를 위해서.


저는 아기 어린이집 보내고
 ‘스카’ 갑니다

“엄마 ‘스카’ 잘 다녀오세요. 나도 어린이집에서 잘 있을게요.”


온전히 나를 위한 몰두와 집중의 공간. 육아맘에게도 맘 편히 출퇴근할 스터디 카페가 있다면, 그곳이 최고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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