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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Sep 12. 2021

‘미 타임’ (Me Time)에 관한 호소

부캐는 미국 엄마 (6화)

 ‘엄마는 00이 필요해’


일전에 발행한 매거진 <아나운서 미국맘 성장기>에 ‘필요해’ 시리즈를 5회 연재한 적이 있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에게 절실한 것들을 끄적여보았던 글들. 실로 기저귀와 물티슈가 필요하고 따뜻한 물을 조달해 줄 분유 포트나, 분유 메이커, 요즘엔 이유식마저 편하게 만들어 주는 데 일조한다는 이유식 마스터기도 필요하다. 여기에 덧붙여 아기가 신생아 시절을 막 지날 무렵, 내게 필요했던 다섯 가지는 ‘산책’과 ‘간식’, ‘공부’와 ‘관리’,,, 그리고 나의 ‘엄마’로 압축되었었다. 그리고 아기가 17개월을 넘어서고 있는 요즘, 한 가지가 더 절실해졌다. 바로 ‘미 타임 (me time)’. 나를 위한 시간.


미 타임 (Me TIme), 마미 타임 (Mommy TIme) = 나를 위한 시간


* <2020 미국맘 성장기> 바로가기

   ‘필요해’ 시리즈  : 엄마는 ‘산책’이 필요해 

                                엄마는 ‘간식’이 필요해

                                엄마는 ‘공부’가 필요해 

                                엄마는 ‘관리’가 필요해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태클을 걸자 하면, 한도 끝도 없겠다. 정서적 사치라면서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적당한 휴식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게 아닌데 굳이 무슨 ‘미 타임’ 타령이냐고. 실제로 동 제목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이 유모차를 밀며 카페를 찾았을 때 뒤편에서 들려오던 수군거림이 있지 않았나. 햇살 아래 커피 한 잔 마시며 숨 돌리고 싶은 간절함을 사람들은 ‘맘충’이라는 단어를 언급해 가며 히죽거린다. 하루 종일 육아해보지 않은 사람의 오만한 시선이다. 집에서 사랑스러운 아기랑 있는 게 뭐가 힘든데 ‘힘들다’고 호소하는 거냐며, ‘다들 못 쉬고 살긴’ 마찬가지인데 나만을 위한 휴식을 찾겠다고 집을 나서는 거냐며 비난한다. ‘육아’라는 개념, 그토록 표가 나지 않는 헌신이고 투자라는 걸 눈치챌 수 있다.


한 생명을 열 달 남짓 ‘품고’ 상상을 초월한 고통으로 (혹은 무통주사로 내리눌러가며) ‘낳고’ 엄마 특유의 애틋함을 담아 ‘키워낸다는 것’엔 어마어마한 품이 든다. 여자 일생에 커리어를 일시적으로 멈춰둬야 하는, 혹은 조금 느리게 가야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사랑’이라는 무기로 전쟁을 치른다. 아기가 예뻐 ‘죽겠고’ 내가 힘 달려 ‘죽겠는’ 가히 전쟁과도 다름없다. 근데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고, 곁에서 지켜봐도 ‘엄마’만큼은 알 수 없는 거다. 티도 안나는 전쟁이다. 기가 막힌 아이러니.


함께 걷는 것도 좋다. 너와 내가 공유하는 아침 산책은 소중하고 귀하다. 하지만 나 혼자 사색할 혼자만의 ‘미 타임’도 때때로 절실하거든.


사랑이라는 무기로 전쟁을 치른다
아기가 예뻐 죽겠고
내가 힘 달려 죽겠는



때때로 억울한 엄마들이 많겠다. 집안일 역시 잘하면 중간이고 조금이라도 빈틈 생기면 티가 팍팍 난다고들 하지 않던가. 요즘이야 무개념 발언을 접할 기회가 다소 줄었겠으나 ‘집에서 살림하고 애 보는 게 뭐가 힘드냐고, 나도 밖에서 일하느라 죽겠고 힘들다’는 드라마, 영화 속 가부장적 캐릭터들이 때때로 눈에 띄던 시절도 있었더랬다. 혹여라도 여전히 이런 생각을 힐끗 넘보고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확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조곤조곤 일러주고 싶다. 미 타임은 나를 위해 여유를 부리는 ‘사치’의 시간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꼭 붙어지내며 고단함을 차곡차곡 쌓아온 엄마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고 선물이라고. 넋 놓고 앉아 ‘놀멍 쉬멍’ 하고픈 게 아니라 잠깐 숨 돌리고 앉아 충전하고 싶은 육아맘의 간절함이라고.


핸드폰으로 따지자면 ‘미 타임’ (me time)은 100% 완충하려는 욕심이 아닐 테다. 1%에서 5% 사이를 오가는 배터리처럼 바닥까지 곤두박질 친 엄마의 에너지를 적어도 20% 정도까지만이라도 채워보고픈 가냘픈 시도다. 아기의 아침식사를 챙김으로 시작해 아기의 밤잠을 토닥토닥 재우는 일과는 육아맘을 때때로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5분의 1만이라도 채워보겠다는 거다. 잠깐 앉아있다가 고개를 들면 해야 할 집안일이 눈에 밟히고 순서대로 챙기다 보면 아기는 어느새 깬다. 단순히 회사에서처럼 업무 능률과 생산성을 접목시킬 분야가 못 되는 것이다. 따뜻한 배려와 이해 없이 육아를 ‘밖에서 행하는 일’의 신속함만큼이나 비례하길 바라는 것은 무례하다. 최소한의 충전을 완충하려는 사치와 동일시하려는 자, 이른바 ‘미 타임(Me Time)’의 중요성을 콧웃음 치는 자, 설마 아직도 지구 상에 존재하는 걸까.


엄마 ‘휴업’하고 밖에 나가 놀고 싶다는 반항과 치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저 바닥 끝까지 내려간 기운을 20%까지만이라도 충전해보고 싶다는 가냘픈 호소라는 것을.



미 타임은 100% 완충하려는 욕심이 아니다
20%까지만이라도 채워보겠다는
가냘픈 시도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심드렁할 무렵, <미국 엄마의 힘> 한 권에서 반가운 구절을 만났다. 미국에서 아기를 키우면서 도움이 많이 됐다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주저 없이 구매해온 책. 여기에 바로 ‘미 타임’에 대한 언급이 세심하고도 담백하게 담겨있었다. 전직 언론인이자 미국맘인, 저자 김동희 씨에 따르면 미국에는 각종 ‘타임’이라는 게 많단다. 대디 타임과 마미 타임, 패밀리 타임…


아빠가 아이들과 대디 타임을 가질 때 엄마는 마미 타임을 갖는다.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뜻으로 ‘미 타임(Me Time)’이라고 한다. 뉴욕에서 전업맘으로 아이를 돌보는 친구가 있는데, 그녀에게 토요일은 하루 종일 마미 타임이다. 남편이 오후 늦게까지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주중에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친구도 만난다. 한 달에 몇 번은 찜질방에 가서 쉰다며 자랑했다.

(김동희, 미국 엄마의 힘, 41쪽)


물론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획일화된 특징은 아닐 것이다. 미국 안에서도 주에 따라 가족별 문화에 따라 ‘타임’이라는 것의 모양새는 결을 달리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타임 (Me Time)’이라는 하나의 표현이 ‘마미 타임 (Mommy Time)’을 대변하고,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는 뜻이 됐다는 건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수긍하고 공감한다는 얘기이기도 하지 않을까. 어린 꼬마들도 엄마가 ‘미 타임’을 갖는다는 뜻을 이해하고 기꺼이 엄마를 놓아준다는 것. 가족 구성원 모두 그 시간이 확보되도록 노력하는 경향성을 가진다는 것. 엄마가 커피 한 잔 마시며 바깥공기 쐬고 숨 돌릴 여유를 ‘사치’라고 해석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따뜻한 배려고 진심 어린 협조다. “나만큼 같이 도와주는 사람이 어딨어?” 말로 소리 높여 강조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멋진 오라 (Aura)를 뿜어낸다.



미국에는 각종 ‘타임’이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디 타임은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말하는데,
마미 타임은 엄마가 아이들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을 뜻한다.


(김동희 저, 미국 엄마의 힘, 40쪽)



소박한 ‘미 타임’ (Me Time) 한두 시간은 엄마에게 바닥까지 찍은 기운을 다시 채워주는 위대한 힘이 있다. 커피 한 잔 픽업해 하이힐과 요란한 귀걸이를 장착하고 거리를 활보해보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슬리퍼 신고 뒤뜰에 앉아 ‘남타커 (남이 타주는 커피)’가 아닌 ‘내억커 (내가 억지로 타 먹는 커피)’ 마셔도 잠깐 숨 돌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다. 그래야 이따 오후에 조금이라도 더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소한 본능이다. “이대로 가다간 육아하다 기절한 사람 1인으로 기록될 것만 같아” 하소연이 절로 나올 때 그 누군가 곁에서 미타임을 챙겨주는 섬세함을 발휘한다면 참 좋을 것이다.


엄마의 ‘미 타임’은 (피로에 찌들어) 죽어가는 육아맘을 살리고 (너무 예쁠 때라 귀여워서) 죽겠는 우리 아기 더 예쁘게 볼 수 있는 센스 있는 요령이니까.



그리하여 오늘의 ‘미 타임 (Me Time)’ 한 잔, 소소한 에너지 충전과 따스한 햇살 줄기 아래 광합성 잠깐.


* 이 책에서 인용한 책 <미국 엄마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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