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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Sep 16. 2021

육아인의 네일케어

부캐는 미국 엄마 (8화)

한 때 한 주 걸러 한 주, 꼬박꼬박 부지런히 출석하던 곳이 있었다. 바로 네일케어 숍. 방송을 하다 보니니 나도 모르는 틈을 타 카메라에 손이 포착될 일들이 잦았다. 지금이야 손톱과 발톱을 혼자서도 쓱싹쓱싹 가다듬을 수 있는 네일 스티커와 각종 장식들을 가성비 좋게 판매하지만 불과 5,6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숍에 가는 것만이 정답처럼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단순히 손톱에 색을 입히는 걸 넘어서서 ‘네일 아트’의 개념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어떤 날은 그라데이션으로 화사하면서도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냈고 또 어떤 날은 손톱에 자개를, 별을, 하트를, 구슬을 박아 넣었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누군가 힐끗 보기에 “관리했네?” 느낌 나도록 포인트 탁탁 얹어내기. 그 누군가는 시청자이기도 했고, 함께 방송하는 엔터테이너들이기도 했다. 주말만 되면 서울에 있는 단골 숍에 부지런을 떨며 예약을 잡았다. 늘 토요일 10시 예약 완료, 평일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또 다른 평일 한 주간의 방송을 네일케어를 하는 데서부터 준비하곤 했다.


방송을 할 땐 너무나 당연했던 네일케어의 날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단정한 포인트 탁탁 얹어내기. 그로부터 3년 뒤,


네일케어의 부재. 방송인일 때와 육아인일 때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손톱이 아닐까 싶다. 혹시라도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봐 임신 중에 모든 케어를 멈춘 것이야 당연한 일일 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아기를 어느 정도 키워내고 ‘엄마 본연의 일상’에 약간의 숨 돌릴 틈을 찾는다 해도 ‘네일케어’라는 단어를 머리 위로 떠올리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관리하지 않고 꾸미지 않아도 일상을 ‘망치지는 않는’ 영역이었으니까. 감히 꿈꾸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이 내 손톱, 참 많이 낡고 헤졌다. 보기 싫게 뜯어낸 자국들이 한 두 곳이 아닌 데다 몇몇 부위는 핏자국도 맺혀있다. 워낙 숍에 안 가 본 지 오래라 이 지저분한 모양새로 네일케어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민망한 수준에 다다른 것만 같다. ‘참 지저분해졌네…’라는 말만 혼잣말처럼 조용히 되뇌던 날들.


네일케어의 부재
그 사이 내 손톱, 참 많이 낡고 헤졌다



임신 출산 이후 숍에서 첫 네일케어를 받던 날, 그날은 곧 내 몸과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를 소중히 돌보겠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느낌이었다. 출산 후 1년 만이었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까지 도합 20개월 만. 여기저기 뜯고 할퀸 자국에 엉망이 된 손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나를 소중히 돌보고 싶다는 작은 표현을 그 위에 얹었다. 요란한 색감과 장식으로 누군가에게 돋보이고 싶은 ‘욕망’과 ‘사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살갗을 뜯는 버릇이 있는 터라 누구라도 내 손을 마주하면 “이 사람 그간 참 험한 날들을 살아냈나 보네…”라는 탄식을 자아낼 만했으니까. 상처투성이 손과 여기저기 찢긴 손톱 끝에 최대한 마음에 드는 색을 입히고 반짝반짝 윤기를 더했다. 팍팍하고 건조했던 약 1년의 육아 생활에도 희미한 윤이 도는 착각이 일었다. 그렇게 치유의 2시간, 모처럼 배시시 웃어보며 뿌듯해했던 날.



안타깝게도 예쁘장한 손톱은 오래가지 못했다. 뭔가에 골이 나고 성이 날 때마다 그 화풀이 대상은 늘 내 손톱이었으니, 네일 케어로 ‘일시적 화해’를 했다고 해서 그 습관 크게 달라질쏘냐. 단단하게 젤을 굳혀 만들어낸 네일 아트도 종종 성난 육아 일상 앞에선 시들시들 기력을 잃었다. 한 달은 족히 버텨주길 바랐으나 2주도 채 되지 않아 자꾸만 너덜너덜해지려던 걸… 공들여 화해한 시간이 아깝기도, 화해를 해낸 내 자신을 또다시 망친 것 같아 스스로가 마냥 밉기도 했다. 육아인에게 이러한 케어는 사치일 뿐인 걸까, 한숨 섞어 자조하기도. 그렇게 보름의 시간도 못 버티고 다시 안녕,,, 두 세 차례 화해를 시도했지만 내 손톱은 예상했다는 듯 엉망, 그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케어를 받자마자 기분 좋아 찍어뒀던 사진을 돌려보며 나만의 촉촉한 이별 의식. ‘이 색깔, 이 장식은 우리 아기도 참 좋아하면서 두들겨 보곤 했는데…’


팍팍하고 건조했던 육아 생활에도
희미한 윤이 도는 착각



24시간 틈틈이 기저귀와 물티슈를 곁에 끼고 살아야 하는 흔한 일상. 만약 그대가 육아인으로서 네일케어에 마음과 시간을 들이고 있다면 이는 잠깐의 ‘치유’를 필요하다는 증거. 그날의 아트가 마음에 쏙 들든, 생각보다 내 결이 아니었든, 이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1시간에서 2시간 남짓, 메마른 손에 기름칠을 하고 창백해진 손톱의 낯빛에 생기를 입히는 것이야말로 진 자리 마른자리 끊임없이 매만지는 일상에 아주 작은 반짝거림을 입혀주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일상이 자꾸만 더 팍팍해진다는 생각이 들수록 당당히 내 몸 가장 사소하고도 작은 부위를 보살펴보겠다는 상징적 의지가 아닐까. 네일 케어라는 것은…!


고로 육아하면서 참 팔자도 좋다고 아니꼽게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부디 거둬주길 바란다. 현실을 유유히 떠나 최대한 몽환적 세상에 퐁당 뛰어드는 느낌이고 싶을 땐 ‘라벤더’ 색, 진부하게 쳇바퀴도는 육아 일상이 미워 죽겠을 땐 상큼하면서도 평온한 ‘민트’ 색을 권하고 싶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손,,, 너무 지저분하다. 다시 내 손톱과 화해할 날을 기다려보는 어느 오후, 여기 미국.


내 몸 가장 사소하고도
작은 부위를 보살펴 보겠다는
상징적 의지


옛날 옛적(?) 나를 충분히 가다듬고 보살폈던 기억들을 추억하며, 그 언젠가 다시 내 손과 화해할 날을 소박하게 상상.
5년 전 네일케어, 촘촘하게 박힌 구슬만큼이나 내 몸도 마음도 다시금 영롱하게 가다듬어지는 날이 찾아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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