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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Sep 18. 2021

여기 ‘문센’ 없어요?

부캐는 미국 엄마 (9화)

‘추석맞이 송편 만들기 클래스’.

명절 연휴가 다가오니 내 눈에 한번에 딱 들어온 홍보문구 중 하나. 결혼 전엔 이런 원데이 클래스 찾아다니기 참 좋아했다. 어떤 기념할 만한 이벤트가 다가올 때면 그에 걸맞은 클래스를 뚝딱 잘도 찾아내곤 했다. 어버이날이 되면 카네이션 장식이 들어간 미니 떡케이크를 만들고자 애썼고, 빼빼로 데이쯤이 다가오면 최대한 독특한 장식이 들어간 나만의 프리미엄 클래스를 찾겠다며 몇 시간을 공들여 맘에 쏙 드는 클래스를 찾아냈다. 대부분 주말 뉴스 당직을 맡지 않은 주의 주말 오후가 소위 ‘원클’을 듣기 최적의 시간. 현 남편, 당시 남자 친구와도 장거리 연애 중이었으니 주말 휴일은 늘 ‘원클’과 함께하며 시간 보내기 딱이었던 셈. 카페 디저트는 카페를 찾아가 먹으면 되고 선물할 일이 있다면 대형마트에서 할인 구매해 적당히 소분해 나눠드려도 됐을 텐데, 난 마치 ‘원데이 클래스’에 중독된 것처럼 자칭 타칭 클래스 마니아를 자처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때로부터 정확히 3년 후의 나, 이번엔 또 다른 클래스를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다. 바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키즈 클래스’. 물론 팬데믹 상황 속에서 주제가 뭐가 됐든 그 어떤 ‘클래스’ 찾기는 쉽지 않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코로나 상황에 대한 안전성이 여전히 담보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보니 당연하다. 허나 한 때 이런저런 클래스들을 섭렵하기에 매혹돼 있던 습성 어디 가겠나. 늘 궁금했다. 문센 키즈 클래스, 그곳의 분위기, 그 안에서 겪는 아이와의 소통. 도대체 왜 다들 문센 문센 하는 걸까.


아기와 집에서 함께 참여한 버추얼 키즈클래스. 정해진 날 꼬박꼬박 찾아 듣는 무언가의 액티비티가 간절했던 마음에 출석.



여기 ‘문센’ 없어요?
누구라도 붙잡고
간절히 묻고 싶던 한 마디


미국에서 본격적 가정보육을 시작하면서 ‘문센’의 필요성이 두드러졌다. 주 5일 어린이집 생활을 할 땐 체감하지 못했던 목마름. 마치 회사원이 매일 아침 자신의 터전을 찾아 꼬박꼬박 출근하다가 갑작스레 프리랜서의 삶을 살게 된 듯한 모양새였달까. 규칙적으로 흐르던 등원 하원 라이프의 시간이 막막하게 제한 없이 늘어져버리면서 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난감 그 자체였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같은 시간 어딘가로 출석하는 루틴만 생겨나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으니…


그때부터 틈만 나면 검색을 시작했다. ‘Kids class near me’, ‘Class for Toddler in Boston’. 이런저런 기회가 닿아 짐보리 버추얼 클래스도 수강해보았는데 집에서 나가지 않는 키즈 클래스, (그러니까 아이와 함께 zoom에 접속해 참여하는 클래스 형식) 딱히 돌파구가 되어주질 못했다. 화면에 선생님이 나오는 클래스는 유튜브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아기와 일단 ‘외출’ 해서 즐길 액티비티가 필요했다.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찾지 못할수록 한국의 그곳이 그저 아른거렸다. 소리 없는 아우성, 한번 더 질러보기. “여기 도대체 ‘문센’ 없나요?”



답답한 마음에 힐링 삼아 홀로 외출을 선언했던 날, 뜻밖의 정답을 얻었다. 바로 차로 5분 거리, 동네 도. 서. 관. 아빠에게 잠시 육아를 맡겨두고 내 공부를 하겠다며 몸을 들인 곳이었는데 여기 이곳, 아기와 함께 오기 딱인 공간이었다. 고가의 키즈 클래스도, 개강 공지가 뜨자마자 마음을 바짝 졸이며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클래스도 아니었다. 그냥 언제나 그랬다는 듯, 누구에게나 널찍이 열려있는 곳.


요일별로 아기와 엄마 (혹은 베이비 시터)가 같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각각 달랐고 시작 시간은 매일 10시 30분. 아기 아침 먹고 슬슬 몸과 마음에 ‘놀고 싶은’ 시동을 걸기 딱 좋은 시간. 어느 집이나 미국 이곳에서도 10시 30분의 마법이 필요했던 거다. 미리 예약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궂지 않다면 아기와 그냥 편히 나오란다. 코로나 때문에 인원 제한이 당연히 있겠거니 했지만 모든 활동은 야외 잔디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충분히 거리두기가 가능하단다. 오히려 나를 애써 안심시키려던 키즈룸 사서. 팬데믹 이후로 아기 물품은 위생적 면에서 ‘대여’하기를 꺼림칙해했는데, 아기들이 쓸 화장실만 둘러봐도 깔끔하고 청결했다. 이 정도면 책이든 장난감이든, 아기들 손 닿는 곳곳의 위생도 어느 정도 합격점. 그저 나의 늦은 발견을 탓해야 했다. ‘나 왜 진작 여기 올 생각을 못했나.’


고가의 키즈 클래스도,
마음을 바짝 졸이며
수강신청해야 하는 클래스도 아니었다.
 여기, 이곳. 미국 도서관


미국은 각 주의 지역적 특성과 그 지역민의 구성, 수요에 따라 생활 분위기 많은 게 다르다. 육아 분위기도 마찬가지. 하지만 다르지 않은 것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어느 지역에 가나 ‘공공도서관 (Public Library)’가 존재한다는 것. 공공으로 운영되다 보니 지역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에도 비용 부담이 없는 게 당연 지사. 동네 하나쯤 들어서 있는 자그마한 공공도서관이 바로 내가 그토록 찾던 ‘문센’이었다.


주차권이 지급되나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고 키즈 클래스가 끝나고 아기랑 갈 만한 식당이나 카페가 있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도서관 앞 뒤 옆 널찍한 공간엔 아기랑 뒹구르르 하며 피크닉을 즐기기에 충분할 잔디밭이 있었고 한국의 주차난을 완벽히 잊을 만큼 충분히 주차 친화적 공공장소였으니까. 내가 챙겨야 할 건, 아기와 함께 오전 10시 집을 나서겠다는 ‘바지런한 의지’와 잔디밭 위에 깔 소녀소녀 한 ‘피크닉 매트’, 자주 들르는 동네 단골 카페의 ‘커피 쿠폰’과 아기가 좋아할 ‘까까’ 정도. 이따 그룹 클래스 끝나고 아기랑 한 바탕 잔디밭 위 광합성을 즐길 생각에 마냥 설레 주면 그만이었다.


여기 ‘문센’ 없어요
대신 여기 ‘도서관’ 있어요


말로만 전해 듣던 문센의 마력, 이젠 ‘도서관’에 빠질 차례. 한국에선 다들 ‘문센, 문센’ 하니 ‘도서관’을 찾아볼 생각을 미처 못했던 거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나운서로 근무했던 춘천 지역엔 무려 ‘춘천 시립 어린이 도서관’이 있었다. 아, 맞아! 진짜 그랬다. 시립도서관이 리모델링을 거쳐 아이들을 겨냥한 ‘장난감 도서관’ 형태로 재개관했던 것. 어디 춘천뿐일까. 시, 군, 구마다 자리 잡고 있는 도서관들엔 어린이 열람실이 꽤나 잘 갖춰져 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경쟁 센 인기 문센 클래스를 굳이 찾지 않아도 늘 우리 곁에 자리 잡고 있던 공간. 앗, 심지어 미국에선 원하지 않아도 모두 영어 클래스네. 극성떨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중언어 노출이 가능하니 일석이조. 진작 알아채지 못했던, 그러나 알고 나선 도저히 놓칠 수 없는, 이 좋은 ‘도서관의 힘’.


우리 동네 도서관, 이 좋은 프로그램이 다 공짜였다고?


그러니 지금 육아가 힘든 자들,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내 주변 도서관 찾기’ 해볼 것을 권한다. 엄마 혼자 나가면 잠깐의 ‘독서 힐링’이 가능하고, 아기랑 같이 나가면 정기적인 ‘문센’ 참여가 가능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서 의도적으로 힘주어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진짜다. 어딜 가나 ‘도서관’은 정답이라는 것. “네네, 여기 미국엔 아쉽게도 ‘문센’ 없어요. 그래도 더 좋은 ‘도서관’이 있어요. 동네 도서관.”


문센 없어도 괜찮아. 도서관 밖에 저토록 널찍한 놀이터도 있는 걸!
이따금씩 엄마 혼자 나오면, 나를 위한 독서 힐링 클래스를 듣는 셈.
그러니 속는 셈 치고 오늘은 ‘문센’ 말고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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