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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치료실 안 가도 괜찮아요?

[30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by 마이 엘리뷰

주거지를 바꾼다는 건 정말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오죽하면 '이사'는 인생 3대 스트레스 중 하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던가! 나 혼자, 아니 부부 둘이서만 거처를 옮기는 것이라면 짐정리나 이사업체 컨택 같은 일들을 부지런 떨며 해결해 나가면 될 텐데, 아이들과 한국에서 미국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과정에선 고려해야 할 게 많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착 장난감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택배로 부쳐두는 것도 한 달 내내 고되었는데, 신경 써야 할 게 비단 장난감뿐일까. 아이들이 현지에서 다닐 기관을 탐색하고 어찌할지 고민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걱정거리였다. 몸으로 부딪치며 해결해 나가는 육체적 투두리스트보다 '이걸 어쩌지? 저걸 어쩌지?' 아이들의 향방을 정하는 기획노동이 무거웠다. '하아, 애들 현지에선 이제 어딜 보내지?'


현지에서 치료실 세팅 어떻게 하지?


이제 아이를 어딜 보내지?
치료실은 어떡하지?


신경다양성 아이를 키워가는 엄마 아빠에게 '치료실'은 빠뜨릴 수 없는 키워드다. 물론 부모의 신념에 따라, 아이의 발달추이에 따라, 모든 발달지연, 장애 아동이 센터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종결했더라도, 아이의 발달지연 소견을 접한 적이 있다면 한 번쯤이라도 치료실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흔하다. 아동인구가 꽤 되는 지역에는 근처에서 언어치료, 놀이치료 등을 도맡아 진행하는 아동발달센터를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아나운서 이후, ABA 치료사로 일해오면서 발달센터에서 슈퍼바이저와 아동 중재를 담당해왔다. 아이의 연령이나 발달 수준에 따라 적기에 필요한 치료를 더 넣기도 혹은 종결하기도 하는데, 지역 이동이라는 변수가 생길 때 '그만둬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바로 우리가 그랬다. 미국으로 향하면, 미국에 있는 치료실을 찾아야 하니까. 아이가 그간 도움받아왔던 한국 치료실 선생님과의 케미가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아우, 선생님 덕분에 요즘 감각 조절도 잘하고 있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아이 발달이 다소 늦는 것 같다면 문 두드리게 되는 치료실


신경다양성 아이였지만 미국에서 바로 치료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나 역시 치료사이지만 대개의 치료사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 주 치료를 직접 담당하지는 않는다. 아이는 중재해주시는 선생님을 따로 찾는 편) 한국에서도 소위 '괜찮은 센터'를 다니려면 원하는 시간대 수업을 배정받기까지 '대기 리스트'에 올려둬야 하는 경우가 잦다. 역시 미국이라고 다를 리 없지. 지인에게 들으니 미국도 방과 후 시간대 치료는 인기가 많단다. 아이 일과 흐름이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시간대, 그러니까 학교 일정이 끝날 때쯤에 맞춰 오후 서너 시쯤에 딱 치료 스케줄을 넣고 싶다면 곧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의료진으로부터 공식 진단을 받았지만, 미국에선 미국법을 따라야 하니까 또다시 전문 의료진에게 별도의 진단도 받아둬야 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의료보험에서 환급이 가능한 기관을 탐색해 알아봐야 하는 것도 또 다른 미션. 절차가 수개월 길어질 것이 눈에 선하니 언어치료든, 작업치료든, 바로 시작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이쯤 하면 미리 체념해 두는 편이 마음이 편하긴 하지! 이래저래 적응기간도 필요할 테니 이김에 석 달 정도는 아예 '치료실' 생각을 고이고이 접어 넣어두기로 했다.



그래! 우리 딱 석 달은
'치료실' 생각하지 말자



"미국에서 다닐 치료실은 정해놨어요?"

"아, 일단 적응하면서 차차 알아보려고요"


쿨하게 '일단 쉬자'라고 다짐했던 것도 잠시! 한국 발달센터에서 안면을 텄던 한 어머니의 질문에 잠시 머리가 멍해진 순간이 있었다. 상대편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계속 물음표를 던졌다. 치료의 중요성은 치료사로 일해본 엄마가 더 잘 알 텐데, 너무 느긋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미리 현지 치료세팅을 싹 다 마치고 건너가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조언도 덧대줬다. 그렇죠. 뭐든 끊김 없이 쭉 이어질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요! 자폐스펙트럼 진단까지 받아뒀는데, 아메리칸드림에 부풀어 대책도 없이 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으로 비치나 싶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한편으로는 치료실 뻉뺑이만이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엄마들의 수다 흐름에 오기가 생겼다. 언어치료든, 감각통합치료든, 매주 정기적으로 전문치료사와 만나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치료실에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게 그렇게나 중요한가. 잠시 발달센터 체크인을 멈춰도 아이가 발달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 우리 딱 석 달은 진짜 '치료실' 생각하지 말자.



일단 쉬자
어떻게 쉬면 좋을까
무엇으로 채워갈 수 있을까


쉰다고 그냥 쉬는 게 답은 아니다. 쉬는 탓에 생기는 공백은 무언가로 채워줘야 한다. 아이를 데리고 주 2,3회 치료실에 데려다주는 라이딩은 비록 쉴지라도, 가지 않아 생기는 시간이 허공에 떠돌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과정은 단연 '치료실 쉬자'고 선언한 엄마의 몫 아니겠나. 화요일과 금요일에 꼬박꼬박 가던 언어치료 시간은 역할극 하며 떠들썩하게 책 읽는 시간으로 정해보고,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를 채워줬던 감각통합치료 시간은 뒷마당 자유 뜀박질 시간으로 생각해 두었다.


한국에서 하던 언어치료는 '맥락에 맞는 대화주고받기'가 핵심이었는데, 좋아하는 캐릭터 나오는 책 한 권으로 롤플레잉 하다 보면 꽤나 재밌게 수업 아닌 수업효과 나지 않을까 상상했다. 예민한 감각을 다채로운 대소근육 활동하며 풀어주는 감통수업은 일단 '야외'로 나가 자연을 맞닥뜨리면 아이랑 할 게 많을 거라고, 자연의 힘을 믿어두었다. '엄마표'라는 그럴듯한 이름표를 새격두지 않아도 그렇게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치료실이랑 다를 게 뭐겠어?' 생각해 두는 배짱이 자꾸만 꿈틀댔다.



진짜 석 달,
치료실 안 가도 괜찮아요?


아이는 제약 없이 뛰놀았다. 오후 4시 50분 치료면 4시 30분부터 어르고 달래서 수업에 '끌고 가야' 했는데 정해진 수업시간이 칼같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시간에 너그러웠고, 아이를 재우치는 일이 일단 줄었다. 졸린 아이를 '안 졸린 척' 데려가야 했던 날들엔 결국 아이가 수업 때 졸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상했건만, 의무 치료 횟수가 없다 보니 졸린 날은 그냥 풀밭에서 뛰어놀다가 깔아 둔 피크닉 매트에 다 같이 벌러덩 누워버렸다. 느긋하게 누워있는 사이 때로는 바람결이 뺨을 간지럽히는 느낌을 그대로 느꼈고, 때로는 동생이 가져온 강아지풀 촉감에 낄낄거리면서 졸린 틈에도 맘껏 웃었다. 감각이 예민한 아이가 이토록 충만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건 그 어떤 실내 치료보다 더 값지지 않나 되묻는 순간이었다.


치료실 밖으로 나가고 원하는 만큼 뛰어놀던 날들


한국과 미국, 아이가 다니게 될 기관에서 사용해야 하는 주 언어가 달라지면 적잖이 혼란이 있겠다 싶었는데 그 또한 '기우'였다. 혹여 스트레스받아 '입을 닫아버리는' 상황이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미리 발달평가 차 들렀던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우리 애의 한국어를 어떻게든 알아듣기 위해 쫑긋 귀를 세우고 있었다. 우리 애가 무슨 단어를 이야기하든, 신박하고 친절한 어린이용 통역 앱을 써서 아이랑 소통하려고 애써주니 아이도 그 배려의 몸짓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듯했다. 영어로 스피치 테라피를 미리 해보지 못하고 학교에 왔다고 그저 부모가 먼저 겸연쩍어할 일이 아니었다.


그 후로도 아이는 자꾸 학교에 가겠다고 졸랐고, 이웃들과 마주쳐도 그냥 지나치질 않고 뭐라도 말하고 싶어 눈을 맞추고 나섰다. (이웃 분들은 아직 앱을 준비 못했대, 아들아!) 언어치료실에서의 주 루틴이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호명에 반응해 가며, 맥락에 맞는 대화연습을 하는 것일진대, 학교 선생님들과 잠깐의 기분 좋은 소통을 경험한 아들은 그 어떤 값비싼 치료 세션을 다녀온 것보다도 '의사소통'하고 싶어 했다. 그래, 이런 게 찐 변화고 찐 효과지!


일상에서 찐 변화 찐 효과 찾아가는 재미


네. 안 가도 괜찮았어요
중요한 게 뭔지
알고만 있다면요


때때로 신경다양성 아이를 키우면서 '오기'와 '배짱'은 결국 괜찮은 정답을 이끌어낸다. 고백하건대 치료실을 바로 컨택하지 못하는 상황에 반강제 주어진 '아이의 휴식기'였지만 결국 위기는 기회였다. '알맞은 수업을 바로 찾지 못했던' 위기가 치료실에 안 가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기회. "치료실 안 가도 할 수 있는 건 많아!" 선언해 두고서도 때때로 반신반의하고 남몰래 불안하기도 했던 치료사 엄마가 아이의 성장요소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 단단한 바탕의 시간.


바로 치료에 돌입하지 못하는 해외 이동 변수 앞에서, 결국 위기는 치료실 밖에서 가능성을 찾아가는 기회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잘 아시는 분이 그러세요


현지 치료 세팅을
미리 안 해두면 어떡하려 그래요


어쩌면 잔소리를 덧대어준 치료실 건너 건너 아는 엄마 덕분일 지도 모른다. 그 귀한 간섭이 결국 치료실이라는 환경에 아이를 시간 맞춰 구겨 넣지 않더라도 내 나름대로 아이의 여백을 의미 있고 풍성하게 채워줘야겠다고 더 단단하게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니까. 성냥갑 같이 다닥다닥 붙은 실내 공간에 아이를 들어가게 하는 것만이 아이 감각과 언어발달에 '풍성함'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야겠다고 다시 생각하게 이끌어줬으니까.


치료실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그걸 알면 충분히 괜찮았다. 실력 있는 선생님과 장기간 소통의 합을 맞춰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말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환경을 놓치지 않는 게 실은 더 중요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각과잉과 감각 예민의 징검다리를 왔다 갔다 하는 아들에게는 감각통합 치료실 안의 전문교구를 쓰는 것만큼이나 꾸며지지 않은 자연환경에 직접 부대껴보는 작업이 귀했다. 부들부들함과 미끌미끌함, 까칠까칠함과 퍼석퍼석함을 아이 손으로 체감해 보며 좀처럼 풀기 힘들었던 감각이슈를 스스로 헤쳐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어 더 반가운 풍경이었다. 치료실은 아무래도 엄마 아빠의 기획과 선생님의 실행이 개입된다. 깔린 판에 아이를 입장시키는 게 아니라, 함께 깔아나가는 판이라는 점에서 치료실의 부재는 어떻게 보든 새로운 막의 시작일 수밖에.




치료실에서 '치료사'라 불려 온 엄마가 치료실의 부재에서 희망을 찾았다는 스토리는 앞에서 봐도 뒤에서 봐도 좀 이상하긴 하다. 치료사 엄마가 치료실 없이 괜찮았다면, 이건 치료실 다니라는 소리야, 종결하라는 소리야! 하지만 내가 앞으로도 치료실에서 꾸준히 만나게 될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도 감추지 않을 고백이기도 하니 미리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한 회기 빠지고 엄마랑 아빠랑 바깥에 나가 더 다양한 감각 느끼고 더 많이 깔깔 댈 수 있다면, 긍정적인 에너지 한껏 충전해서 더 나아갈 힘을 얻는 셈이니 말이다. "어머님! 아이가 길을 잃고 멈춰서만 있는 것 같다면 한 주쯤은 잠깐 쉬어가도 괜찮아요. 잠깐 치료실 쉬어도 정말 괜찮아요."


꼭 치료실 세팅에 가만가만 앉아만 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 브런치북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는 1편과 2편, 총 33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국행 이전, 신경다양성 이야기의 시작이 궁금하시다면 1편으로 놀러와주세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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